part 2. 그때 하지 않았다면 다행이었을 말들
보고를 잘함으로써 우리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보자.
조직의 혁신적인 변화에 기여하는 것? 모든 사람이 당신을 우러러보는 시선?
아닐 것이다. 그저 보고받는 사람으로부터 “내 생각이 바로 당신 생각이야!”라는
말 한마디 듣는 것일 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김범준 지음, 21세기북스, 72쪽, 150~153쪽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에서 보면, 직장 내에서 상사에게 보고를 할 때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사실은’, ‘제가 원래...’ 그리고 ‘어차피’.
‘사실은...’은 뒤에 나올 부정적인 말이 예상되어서, 제가 ‘원래...’로 시작되는 자기 비하는 겸손이 아니라 자기의 성장을 깎아 먹는 요소이기에, 그리고 ‘어차피...’는 사안과 조직을 가볍게 여긴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이 셋은 권장할 만하지 않다. ‘사실은’이라는 말은 ‘사실’, 비교적 솔직한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마치 사실과 사실이 아닌 내용이 따로 있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제가 원래...’는 손쉬운 변명이 되기도 하고, ‘그래,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며 상대방과의 대화를 가위처럼 싹둑 끊어버리는 대답이 되기도 한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내뱉는 ‘어차피’는 “어차피 이렇게 하려던 거 아니야?”라며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모두의 사기를 꺾어버리는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시니어들의 모임 명인 ‘어차피’의 ‘어차피’는 달관과 관조의 의미라 그 성격이 다르겠지만.
나는 어찌 이리 잘 알까? ‘사실은’, ‘내가 원래’ 이런 말들을 달고 살았다. 남자 친구와 이런 말들 탓에 작은 싸움을 크게 만들고는 했기 때문이다. 당시 남자 친구는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실은’, ‘내가 원래 이래’, ‘어차피’ 등의 말을 대화를 단절시키는 말이라며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그만큼 감추고 싶은 게 많았고, 시니컬했으며, 행여 여린 속내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좁고 단단한 보호막을 만들어 그 안에 꼭꼭 숨어 있으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어차피’ 통렬히 겪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을 일이다. 미숙한 20대의 내가 현재의 남편이자 그때의 남자 친구에게 자주 써서 사달을 부추겼던 “사실은”, “내가 원래 이래.”, “어차피 그러려던 거 아니야?”는 현재, “정말?”, ‘아, 내가 그랬어요?’, “좋은 생각이네.”로 바뀌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은’ 뭐 대단하게 그런 건 아니고 그럭저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