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만 원짜리 김치찌개

Geneva, Switzerland #06: 제네바의 한식당

by Jeannie

여행자라면 왜 굳이 스위스까지 가서 한식을 먹냐고 물을 것이다. 나도 여행을 할 때는 한 끼라도 더 현지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출장을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출장 중에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는 한식을 먹어줘야 힘이 난다. 이때쯤 되면 한식은 식사가 아니라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버티게 해주는 약이다. 밥이 약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시점이다.


제네바 출장은 보통 이틀의 사전 회의, 이틀의 본 회의, 그리고 하루의 마무리하는 날로 구성이 됐다. 본 회의를 하기 전에는 호기심에 식사시간이 될 때마다 스위스 음식이나 근처 맛집들을 찾아다녔지만, 본 회의를 하는 날에는 모두가 너무 긴장이 돼서 속이 풀리고 힘이 나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본회의 첫날을 마치고 두 번째 날의 전략을 짜며 한참 고민을 하고 있던 팀장님이 이번에도 역시나,


"오늘은 한식 드시죠."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옆사람과 일 얘기를 하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급하게 구글맵을 켜서 팀장님이 제네바에서 제일 좋아하는 한식당 위치를 검색했다. 팀장님은 일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걷고 있었지만, 다행히 한식당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렇게 구글맵을 켜놓고 뒤를 따라가다가 방향을 꺾어야 하는 시점에 내비게이션처럼 '좌회전입니다', '우회전입니다'라고 얘기를 하며 한식당에 도착했다.


퐁듀를 한국에서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스위스 현지에서 먹는 맛이 안 나듯, 스위스에서 아무리 김치찌개를 잘 만들어도 김치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만큼 맛있기가 힘들다. 맛은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2프로 부족하다. 내가 더 잘 끓일 수 있겠다는 거만한 생각도 잠깐 해본다. 하지만 밥이 아니라 약으로 먹는 것이니, 지금은 이 정도 맛으로 충분하다. 며칠 전까지 한국에 있었던 우리를 만나는 바람에 이런 억울한 소리를 듣는 것이지, 사실 제네바의 한식당들은 현지에서 인정받는 맛집들이다.


긴장된 상태에서 먹은 거라 사진 찍을 정신이 없었지만, 한국 식당과 똑같이 공깃밥과 뚝배기에 담긴 찌개가 나오고 시금치, 콩나물 등 밑반찬이 나온다. 모든 것이 한국과 비슷한데, 가격이 한국 돈으로 삼만 원이 넘는다. 삼만 원짜리 김치찌개는 처음이라 열심히 뚝배기를 기울여가며 바닥까지 긁어먹는다. 이렇게 한식이 소중한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도 밥 남기지 말고 잘 먹을걸. 김치찌개와 팀장님이 추가로 시켜준 이만 원짜리 잡채까지 먹으니 호랑이 기운이 솟는다. 이 밥심으로 일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Tips on Geneva


제네바의 한식당


가야(Gaya)

: Rue Ferrier 19, 1202 Genève


메종 드 꼬레(Maison de Corée)

: Rue des Corps-Saints 4, 1201 Genève


서울(Seoul)

: Rue de Zurich 17, 1201 Genè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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