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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심플 Nov 09. 2019

향기에 추억이 깃들 때(feat. 이직)

캔들/디퓨저 만들기


향은 참으로 신기하다.

음악처럼 그 향을 맡았을 때의 추억을 되돌리게 해 준다.


어느 날은 내가 길을 걷다가

'예전 회사 다닐 때 맡은 냄새'를 접한 적이 있다.

굉장히 짧게 맡았지만,

내가 회사에서 1년간 머무르며 느꼈던 감정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재미있게도 그때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힘들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스스로 좀 더 분발해야 한다고 채찍질했기에

굉장히 열심히 살던 시절의 향수를 스스로에게 처방다.


그 향은

시트러스 향이기 때문에 경각심을 일으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열심히던 시절

떠올리게 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반짝이게 해주는 향이다.


어쨌든 그 향을 맡으며 회사에서 꾸역꾸역 버텼지만,

(진짜로 힘들 때마다

코카인이라도 흡입하듯이 코로 들이마셨다)

어느 순간 '현실 자각 타임'이 왔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짓까지하는가?

향수를 맡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퇴사할 수도 없었고,

한 방울 비싼 그 향수를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해결책을 찾았다.




디퓨저를 만드는 것이다.

디퓨저를 만들어서 집에서나마 행복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디퓨저를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간단하다.

1) 남향수를 마음에 드는 통에 담아 발향제와 섞고,

2) 리드라고 불리는 긴 막대기를 꽂으면 된다.


이때, 리드의 모양에 따라서 인테리어 느낌이 결정된다.

모던한 느낌을 주고 싶을 때에는 기다란 검은색 막대를,

화사하고 싶으면 꽃 모양을 선택하는 것이다.



열심히 제작한 나는

집에 들어오는 현관에 디퓨저를 배치해두었다.


그 향이 옅어질 때쯤 나의 의지력도 바닥이 났.


결국회사를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곳에서 왜 그리도 버텼나 싶다.


처음의 나는 무조건 1년은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미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했다.


1년은 버텨야 이력서에라도 쓴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면서까지,

매일을 우울에 잠기면서까지

버틸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다.



되돌아보면 솔직히 나를 그 회사에서 버티게 해 준 것은

통장잔고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보증금도 안 되는 돈을 쥐고 나갈 수는 없다며

잔고 5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를 그 회사에서 떠나게 해 준 것은 향이었다.

스스로 가장 열정적이던 시절의 향수를

매일 맡으며 이직을 준비했으니까.



예전 회사 시절의 향을 맡으며 한 번 생각해본다.

그때 만약 조금 더 버텼더라면,

나는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가버린 향처럼, 그렇게 행복도 날지.





옛 회사를 더듬어 추억하다 보니 기억나는 게 있다.

캔들 원데이 클래스를 했던 날.


수업은 크게 이론적인 설명과 실습 부분이 같이 들어다.

향초의 효능이나 종류, 심지 종류, 향초를 만들 때 주의할 점 등 개략적인 설명이 끝나고 나면 실습이 시작된다.


실습은 주로 자신의 취향대로

향초의 색깔, 향기, 심지 등을 고르는데,

사실 그때 무슨 향을 골랐는지,

무슨 색깔로 만들었는지는 기억 남지 않는다.


지금은 그 향초 자체도 이사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캔들에 붙인 스티커이다.


향초 제작의 마무리 단계에서

여러 스티커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붙일 수가 있었는데,

나는 향기를 고를 때보다 스티커를 더 신중하게 골랐다.


그때 선택한 문구가 바로 '행복을 위해'다.




그땐

행복을 집착적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어떤 한 지점을 통과하면 끝없이 행복할 줄 알았다.

긴 취준을 버텼기에 취업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끊임없이 또 다른 것들을 요구했다.





그렇게 파리(paris) 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이상 속의 파리와 현실의 파리의 괴리감에

정신 못 차리던 시절을 지나

회사 다 똑같지 뭐,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내가 있다.

(대학생활이 모두 다 논스톱 같은 시트콤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도망치듯 전 회사에서 빠져나 다른 지옥에 도착한

지금의 가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단언컨대 행복하다.


지옥은 똑같지만 덜한 지옥도 있더라.

끊임없는 행복은 없지만 오늘의 소소한 행복이라도 즐기자.






디퓨저만들기

가격: 9,000원~13,000원

(향수가 있으면 더 저렴해지고,

리드나 공병을 신경쓰면 더 비싸짐)

난이도:

접근성:

지속성:


향초만들기

가격: 15,000원(독학)~30,000원(원데이클래스)

난이도: 

접근성: 

지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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