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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나심플
Oct 13. 2019
살은 안 빠지고 식욕만 느는 운동
수영
최근에는 멀어졌지만, 한 때 수영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나에게 수영은 운동 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운동이었다.
나는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하는데, 땀이 주르륵 나오는 느낌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땀범벅인 내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중에서야 알게된 거지만
땀은 안흘려도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고,
눈가는 수경자국이 진하게 남게되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밌다! 운동인데 말이다!
운동이 재미있을 수가 있다니!
처음엔 물속에서 음, 일어나면서 파를 반복하며 걸으면서 시작된 나의 수영 정복기가
자유형으로 넘어가면서부터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자, 점차 수영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더 빨리 나가기 위해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먹게 되었으니, 일석이조였다.
나는 모든 영법 중에서도 배영의 그 유유자적함을 제일 좋아한다.
언젠가 인피니티풀 같은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수영을 하고 싶어 열심히 배우기도 했다.
(인피니티 풀에서 자유형을 하기 위해 수경을 쓰는 것은 '폼'이 안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유로운 배영은 까딱 잘못하다간 부딪히기 쉬운 영법이었다.
수영장 천장의 선들을 놓쳤다가 사선으로 가다 맞은편 사람과 부딪힌 기억,
빠르게 가다가 끝에서 멈추지 못해 수영장 벽과 부딪힌 기억들로 가득한 수업이었다.
내가 똑바로 간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기에,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쯤이면 벽에 왔겠지, 하고 조심조심하며 속도를 늦추어봐도 맞은편 초보자들이나 뒤늦게 출발을 한 같은 초보반 친구들에게 부딪히기 일쑤였다.
그렇게 이따금씩 부딪히면서 점점 피하는 법도 익히며, 나의 수영실력은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평영을 배우면서부터 물살을 가르기만 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을 알게 되었고, 고비가 시작되었다.
나는 평영을 배우기 전까지 '중급반'에서는 에이스였다.
여느 에이스와 마찬가지로, 수영의 에이스들은 제일 앞자리에 서기 마련이다.
그래야 속도를 늦추지 않아 전체적인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늘 '못 이기는 척' 다른 급우들에게 등 떠밀려 제일 앞자리에 섰었다.
아휴 잘하는 사람이 제일 앞에 서야지! 하는 말에 우쭐했던 것도 사실이다.
평영의 발차기를 물 밖에서 옹기종기 배운 우리들이 처음으로 물속에서 시도하는 날, 그날도 나는 뒤로 가려던 사람들 속에서 자신 있게 제일 먼저 시작했다.
선생님이 말한 대로, 물 밖에서 매트를 깔고 열심히 연습한 대로, 부응하고 다리를 휘저었다.
음?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다시 한번 부웅 다리를 휘저었다.
그렇게 여러 번을 휘젓고 올라왔는데, 나는 아직도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를 내버려 둔 채 다른 사람들이 먼저 출발했고, 그 뒤로 나의 에이스 역할도 막을 내렸다.
발차기뿐만 아니라 웨이브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만회하지 못한 채 단박에 우등생에서 열등생으로 떨어져 뒷줄을 벗어나지 못했다.
성인이 된 뒤로 본격적인 수영을 시작했지만, 물놀이만 즐기던 어린 시절과 똑같았다.
어렸을 적 물놀이를 끝내고 나서 먹던 육개장의 꿀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여전했다.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아 잘 먹지도 않는, 덜 익은 왕뚜껑조차도 그리 맛이 좋은 것을 보면 아마 수영은 살 빼는 운동은 아닌 게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연수반의 할머니들로 구성된 '돌핀즈'들의 다양한 체형을 설명하기 힘들다.
초급반의 우리가 아기오리처럼 두 바퀴를 돌 때, 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바퀴를 돌곤 하는데도.
돌핀즈들이 주로 중장년층으로 구성된 것은
그만큼 무릎에 부담도 안 가는 운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상의 위험이 적으니 다칠까 봐 움츠러드는 것도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수영은 장비 등에 부담은 없지만, 조금 배우다 보면 화려한 수영복, 김 안서리는 최신형 수경, 핏이 잘되는 오리발을 사고 싶어 지기 때문에 장비에 대한 부담은 없어도 욕구는 넘쳐나게 만든다.
수영의 좋은 점은, 내가 만약 가끔 빠지게 되어도 진도가 엄청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친구 J는 초급 스페인어 수업을 듣다가 2회를 빠진 뒤 선생님으로부터 진도를 따라가기 힘드니 그만두는 것을 권유받았다.
수영은 그럴 필요가 없을뿐더러, 처음에 시작할 때에도 내 레벨에 맞는 반으로 들어갈 수 있다.
수영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수업이 끝난 뒤 굉장한 허기를 겪는데, 모두가 그렇기 때문에 끝나고 삼삼오오 식사를 하러 가는 것을 보면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을 수도 있다.
나는 한 번도 참석한 적 없지만.
수영은 크게 새벽 수영, 아침 수영, 저녁 수영으로 나뉘고 각각의 특색도 다르다.
새벽 수영은 직장인들 위주이고, 우리 수영장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선생님도 피곤하신지 흔히 말하는 '뺑뺑이'를 자주 시켰다.
한쪽 팔로 1바퀴, 양팔로 1바퀴, 부표 들고 1바퀴 등등.
수업 자체도 굉장히 조용하고 사람들끼리도 크게 말이 없다. 그저 팔과 다리를 휘저을 뿐이다.
아침 수영은 조금 더 활기차다. 애초에 주부들이 많이 때문에, 서로 워낙 친하게 얘기해서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처음 만난 사이 같은 경우가 많다. 선생님이랑도 더 친하고 같은 반 사이에서의 교류도 많다.
같은 반뿐만 아니라 샤워실이나 탈의실을 함께 쓰며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힌 사이들이 많아진다. 하루는 다른 반의 분이 고구마를 나눠주셔서 같이 먹기도 했다.
좋은 쪽으로 발현되면 이처럼 상부상조지만, 안 좋은 쪽으로 교류가 늘게 될 경우에는 텃세 등으로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장점은 당시 내가 백수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아침 수영 때문인지는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하루를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10시 수업이라는 애매한 시간이라 시간의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좋지 못했다.
저녁 수영은 회식이나 야근의 문제로 인해서 빠질 경우가 많지만 하루의 고된 스트레스를 날리는 데에는 저녁 수영만 한 것이 없다.
새벽이나 아침 수영은 샤워 후 다시 선크림이나 화장 등을 하는 것과 달리, 씻는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오후 수영이 왜 분류에 포함되지 않았냐면, 내가 다닌 수영장들은 오후 수영이 어린이들의 차지이기 때문이다.
수영장의 스케줄은 수영장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수영장은 오전 수영 대신 아쿠아로빅이 있는 곳이 있고, 오후 수영이 그런 곳이 있다.
일정기간 동안은 파도풀을 운영하여 아예 수영강습을 못 받는 곳도 있으니 주변의 수영장의 스케줄을 꼭 확인할 것!
여러 가지 커다란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수영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직장 때문이었다.
'혹시나 회사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운동을 할 때에는 그래도
와! 부장님 여기 다니세요?
라고 빈말이라도 해보겠지만..
수영만큼은 차마 그 말이 입에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마 우리 회사 근처에는 여성전용 수영장이 있어서 고려해 보고는 있지만,
정시에 시작해서 50분 정도의 수업이거나,
혹은 30분에 시작하는 등,
시간 선택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망설여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수영장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뚜벅이
취미 수영인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된다.
소도시는 1~2개 정도만 있고,
그
마저도 한 레인에서 한 가지 수업만 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한다면 초급 수업을 기다려야 할 수 있다.
특히 수영 수업은 굉장히 인기가 많기 때문에, 신규 진입자들에게는 때로는 높은 벽이 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집 근처의 한 수영장은, 21일~24일까지는 기존 회원들에게 먼저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25일부터 신규회원들을 받는데, 이 경쟁률이 얼마나 치열하냐면, 새벽 5시 반부터 나눠주는 대기표를 받기 위해 3시 반부터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나도 몇 번 그 수영장에 가기 위해 도전했지만, 당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놓친 적이 있다.
수영장의 락스 물은 또 어떠한가.
아는 동생 L이 수영장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내게 수영장도 청소를 하는구나, 하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지만, 락스물 때문에 머릿결이나 피부가 상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들려오고는 한다.
나는 이러한 염기성을 중화하기 위해 산성인 헤어식초를 뿌리고 영양제를 먹어보았지만, 점차 푸석해지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샤워시설은 왜 그리도 적은 것인지. 수업이 들어가는 사람과 나오는 사람의 시간이 겹치는 것을 생각해서 2배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놈의 샤워시설은 전체 수강인원의 0.5 정도만 유지되어 항상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이 사람이 몸을 씻길래 줄을 섰는데, 다시 머리를 감을 때의 그 기분은 마치 지하철에서 한참을 서 있는데,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내 앞의 사람이 일어서지는 않고 자세를 고쳐 앉았을 때의 허무함과 비슷하다.
그래서 조금 덜 붐빌 때 빨리 씻기 위해 차라리 수업을 꽉 채우지 않고 빨리 나온 적도 있다.
이러한 나의 투덜거림에도, 수영은 재미라는 장점이 압도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굉장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전국에 더 많은 수영장이 생기길!
<수영>
가격: 월 5만원~10만원
난이도: ★★
접근성: ★★☆
지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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