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양갱 이야기를 쓴 지 불과 몇 달,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때는 서로 달라고 난리였지만, 지금은 각 제조사, 유통사, 점포 창고 한 구석에 어딘가 쳐 박혀 남은 수량만 소진하고 있다. 아무리 큰 붐이 일어도 라인은 새로 깔지 말라는 우스갯소리는 식품 판에선 탈무드 명언이다.
2024년을 가장 핫하게 달군 상품을 뽑는다면 많은 바이어들이 두바이 초콜릿을 꼽을 것이다. 판 초콜릿 안에 볶은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크림을 섞어 꾸덕하게 즐기는 초콜릿. 두바이 한 작은 제조사에서 만든 이 초콜릿이 먹방 쇼츠 알고리즘을 타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먼 나라, 온라인, 쇼츠, 빅 이슈.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역시즌 직구템
사실 이슈 초기 바이어들은 어리둥절했다. 지금? 해야 함? 여름에 초콜릿은 유통과정에서 쉽게 녹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운영 개수와 물동량을 줄여가는 게 정석이다. 필수 구색만 남기고 한두어 달 푹 쉬어가는 타이밍인데, 역시즌템이 세상을 점령한 셈이다.
요즘 상품의 흐름이 너무 빠르다고 느끼는 건, 바다 건너 쇼츠가 주목을 끈 지 몇 달 되지 않아 발 빠르게 움직인 몇몇 협력사들을 그야말로 수백억 대 돈방석에 앉았다.
글쎄요, 한번 볼까요? 협력사들이 제안한 상품을 선별하는 과정을 까다롭게 보던 바이어들도 두바이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저희 먼저 주세요, 조금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섭섭합니다. 그러니 조금 만 더. 아기새 마냥 줄을 서서 입을 벌리고 있는 실정이다.
너라도 먹자, 피스타치오
재밌는 건두바이 초콜릿이 품귀현상이 이어지면서, 재료로 쓰인 피스타치오까지 덩달아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자부터 아이스크림, 빵까지. 이슈 두어 달 만에 피스타치오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삽시간에 무진장 출시되었다.
사실 피스타치오 맛은 이전에도 간간히 출시는 되었지만, 아이스크림을 제외하곤 기를 못 펴던 비인기 종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귀한 몸. 원료 값도 치솟고 있다.가루만 솔솔 뿌려도 되니 일단 피스타치오만 두르면, 매출 상위권으로 직행하는 걸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풋내기들아, 이것이 요즘 소비다. B군도 빨리하는 자가 임자다.
중요한 건, 내가 아닌 너의 이슈
인친이 먹었다고 인증한 그 상품이 보이면 무조건 구매하기. 그 비슷한 것들이 보이면 일단 먹어보기. 그리고 인증하기. 간식을 소비하는 행위는맛보다는 재미과 경험, 자랑에 더 큰 비중을 두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온라인의 빠른 속도와 결합하다 보니 이슈 하나 잘 잡으면 집은 물론, 건물까지 올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기반이 있다는 전제하에.
요즘 식품 판에 소속된 자들의 게임의 룰은 무엇일까? 쇼츠 열심히 보기, 맛집 줄 서기? 가장 중요한 건 사람 관리이다. 빠르게 출시하는 자가 전체 판에 절반을 먹어버리는 게임의 룰, 어떤 이가 승리할지 아무도 모르는 도박판과 같다. 모든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대는 기업 전략처럼 작은 수입사, 공장도 허투루 보지 않는 평시 세심함이 필요하다.
작은 업체도 잘해줘라.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 요상한 상품을 들이밀어도, 싫은 내색 없이 다독이며 잘 만나주던 우리 팀장님. 그저 거절 못 하시는 사람 좋은 분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이게임의 최고 포식자였다. 역시, 팀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리스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