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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과장 Oct 26. 2024

이븐하게 상상하기

상품기획자가 바라본 셰프 콘텐츠

너무 맛있어서 출연자를 째려보던 강레오 셰프, 구수한 사투리로 멋 부리지 말고 정직한 요리를 하라는 김소희 셰프. 숨은 요리 고수만큼이나 매력적이었던 심사위원들. 재미있는 짤과 브로맨스로 챙겨 봤던 마스터셰프코리아가 벌써 12년 전 프로그램이라니, 살짝 소름 끼친다.


셰프 텐츠는 상품기획에 가장 먼저 고려되는 요소이다. 시중에 출시된 셰프를 내세운 수많은 상품들 중에는 메뉴부터 조리법까지 개발단계부터 참여해서 출시된 상품도 있지만, 완성단계 직전에 표류하던 상품에 구원자처럼 나타나 맛만 몇 번 보고 속도전으로 출시되는 상품도 있다. 만든 과정이 뭐든 고객은 유명 요리사를 신뢰하고, 화제성과 매출은 비례한다.


유통상품이 많은 셰프들은 요리사의 소신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그렇진 않다. 직접 만드는 요리와 유통상품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맛있는 HMR도 엄마 된장찌개맛을 따라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공장의 제조 여력, 품질 여건, 수급 및 배합가능한 원료, 대량 생산 원매가 등의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다 보면, 결국 대표자의 이미지와 요리 콘셉트 차용으로 타협하는 게 대부분이다.


당신이 요리사라면, 일생일대 몇 번 주어질지 모를 인생의 빅 이벤트를 외면할 수 있을까? 돌아서면 더 멋지고 실력 있는 셰프들이 치고 올라오는 경쟁시대인데, 인생에 기회는 많지 않다.


카메라에 비춘 적도 없는 요리사들까지 다들 흑백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고 있는 요즘, 조용히 자취를 감춘 최강록 셰프의 행보가 독특하다.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이다.

잠잠하던 셰프 열풍이 다시 일어난 건, 흑백요리사 덕분이다. 프로그램이 잘 되는 만큼 요새 곤란한 바이어들이 많았을 테니, 우리에겐 흑백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흑백요리사는 콘텐츠의 재미와 파인다이닝과 외식에 대한 소비자 관심 증가, 시기적절한 상품화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최근에 가장 잘 만든 셰프 콘텐츠이다.


콘텐츠를 만든 분도 상품을 만든 분도 잘한 건 맞지만, 우리도 방송을 보고 일주일 만에 상품을 출시했다는 개구라 인터뷰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아이디어가 상품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을 거친다. 최초 보고와 의사결정이 떨어지면 콜라보 계약, 여러 번의 샘플 테스팅, 맛 컨펌이 되면 품목제조보고서 수령, 디자인, 인쇄, 생산까지.  1회 수정도 연구소 피드백이 빨라도 1주일, 평균 2주일이 지나야 하고, 상품당 평균 5번 정도는 반복해야 맛이 잡힌다.


많이 양보해서 1회 차 샘플로 그냥 출시까지 간다고 해도 품목제조보고서를 의뢰하고, 그 기관에서 승인받는데 만해도 꼬박 3주가 걸리는 식품법상 절차인데, 방송보고 1주일 만에 출시했다는 말은 상품을 안 만들어본 자의 망상이거나 업적 과장을 위한 무리수 홍보이다. 라리 방송 몇 개월 전부터 단독으로 컨텍해, 상품화를 협의를 하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린 없냐? 윗분이 물으셨다. 정말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보시는 거라면, 대형 콘텐츠와의 콜라보는 바이어 개인이 해결할 만한 사이즈가 아닌 점을 먼저 짚고 가야 하며, 마케팅팀 구조과 예산 편성의 경쟁사와의 구조 차이부터 설명해야 한다. 물론 경험상 그럴 땐 입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최선이다.


보통 상품은 기획부터 출시까지 평균 3~4개월이 소요된다. 맛에 대한 기준치가 높고, 콜라보에 비용 지출이 많은 경우는 6~8개월까지 걸리기도 한다. 흑백요리사급의 대규모 콘텐츠와의 콜라보라면, 회사 대 회사, 팀 대 팀으로 많은 사람들이 수개월 전부터 달라붙어서 기획하고 수정하고 추진하는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이다. 그걸 몰라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겠지만.


뭣이 중헌가?


기획자로서 그리고 미식을 사랑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흑백 식당들이 궁금했다. 화제성이 높았던 셰프의 식당은 예약 대기조차 불가한 상황이지만, 존버의 정신으로 알람 맞춰놓고 여러 차례 들락 거리면 얻어걸리는 것들이 있다. 소문대로 재료와 음식의 퀄리티가 좋았던 곳도 있었고, 매우 실망한 곳도 있다.


한 군데에서는 운 좋게 셰프님도 만나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 말씀이 본인은 소속사가 있어서 상품화는 소속사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했다. 그래도 협업을 한다면 이런 방향으로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셰프보다는 사업가로서의 면모가 엿보였다. 성장해 가시는 것 같아 좋아 보였지만, 한편으론 아쉬웠다. 열심히 예약한 보람도 없이, 음식 맛이 그저 그랬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보고 싶고, 먹고 싶고, 오고 싶은 이유는 맛있는 음식 그 자체가 아닌가?

재야의 고수 무명요리사를 가려낸다면서?!


흑백요리사의 가제는 '무명요리사'였다. 숨은 요리 고수를 찾는 게 프로그램의 핵심인데 비해, 이번 시즌엔 요리와 관계없는 프차 사장님들이 좀 많아서 아쉬웠다. 특히 흑 요리사 중에는 예전에 너무 맛이 없어서 '최악'으로 네이버지도에 저장을 했던 식당의 오너셰프도 있었다.


그분 말고도 요리보다는 내 브랜드 알리기에 뜻을 둔 사장님들도 많이 보였다. 물론 브랜딩에 방점을 둔 분들은 1차 미션에서 많이 탈락했지만, 그들의 식당도 흑백요리사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성업 중이다.


넷플릭스 유료 구독자로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시즌2에는 진짜 고수들과의 숨 막히는 대결보여주길 바란다. 소속사가 밀고 싶은 셰프 말고, 뒷짐 지고 직원이 요리에 플레이팅만 하는 연예인 아재 말고, 찐 요리 고수들의 숨 막히는 대결 말이다.


만약 내게 흑백요리사 시즌2를 기획하라고 한다면, 요리에 관심 없는 사업가들은 애초에 100인의 흑 요리사로도 참여하지 못하게 배제하고 싶다. 흑 요리사 구성은 최근 6개월 이상 캐치테이블 예약 100% 레스토랑 오너셰프로만 구성한다. 무조건 예약 대기해야 갈 수 있는 요즘 가장 핫한 레스토랑이어야 한다.


백 요리사는 안성재 셰프님, 백종원 사장님, 마셰코 심사위원이었던 두 셰프님과 중식 이연복 셰프님, 서울 탑 호텔 조리장님들까지. 심사위원은.. 고든램지와 해외 활동 미슐랭 3스타 한국인 셰프, 미식 평가 깍두기로 더들리와 비밀이야 아저씨까지ㅋㅋ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제작진이여, 소속사와 윗사람, 브랜드가 지르는 돈에 휘둘리지 않기를.

심은 맛있는 음식이야.


by. M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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