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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Apr 25. 2021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알고 있다.

‘암묵지’ 채굴작업 이야기


발견에 대한 열정이 선진으로 향하는 지름길  

암묵지라는 개념을 처음 만난 건 오래전 대학원 '교육철학' 수업에서였다. 장상호 교수의 아티클을 읽고 합평하는 시간이었다. 장상호 교수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책 <암묵적 영역>, <인격적 지식>의 저자 마이클 폴라니와 견주어지는 분이다.


그는 '암묵지'에 대한 설득적 열정과 지식의 가치를 알고 있는 부류를 선진(先進), 아직  그 가치를 모르는 부류를 후진(後進)으로 정의했다. 현재보다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후진들의 발견적 열정이 결국 후진을 선진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 ‘나는 선진일까? 아님 후진일까? 어느 부분에선 선진인데 어느 부분에선 후진....?’ 이러저러한 생각을 해보다가 스르륵.... 이 개념을 잊은 채 살아오고 있었다.


최근에서야 다시 이 단어를 여러 번 접하고 있다.


직접 구르며 찾아낸 암묵지들을 쌓아가는 여정에는 실무자들의 피와 땀이 담긴 듯 하다. 열심히 굴렀던시절의 오래된 메모를 가끔 들여다보다 '아니! 이런 값진 생각을 내가 했었다고?' 하며 놀라기도 한다. 그 기록은 완전하지도 않을뿐더러 흩어져있어서 복기가 안 되는 형태로 망각 세계의 문턱을 오락가락한다. 이처럼 암묵지는 깨닫고 건져 올려놓아도 또 잊히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망각의 동물답게 노력의 시간을 통해 얻은걸 잊으며 살아간다.


깨닫고 건져 올린 것은 정리하여 지식화해야 함을 늘 깨닫는다. 마땅한 기술력이 없이 버티는 직장인이라면 부지런한 일상생활에서 암묵지를 의식 위로 끌어올려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많은 분들이 강조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망각의 세계로 떠난 기억들을 상기시켜주는 자극이 된다.

 


그럼 다시  '암묵지'에 대한 개념부터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정리해보도록 한다.


- '암묵지'의 정의는 무엇인가?

-  일과 삶에서의 ‘암묵지' 사례

- '암묵지'와 축적 지향의 패러다임

- '암묵적 지식'을 '명시적 지식'으로 코딩하기



암묵지의 정의는 무엇인가? 

형식적 지식과 암묵적 지식


암묵지(Tacit knowledge)란 암묵적인 상태의 지식으로 학습과 경험으로 체화되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노하우(know-how)를 말한다.  흔히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지식을 의미한다. 대비되는 개념으로는 외부적으로 표출되는 지식인 '형식지'가 있다. '형식지'는 문서나 매뉴얼 등을 통해 외부적으로 표출되어 여러 사람에게 공유될 수 있는 지식을 의미한다.


즉,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빙하의 아랫부분은 ‘암묵지’, 빙하의 윗부분은 '형식지'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마이클 폴라니는 1958년에 발행한 책 <개인적 지식>에서 암묵적 지식은 공유되기 어려운 노하우이자 드러나지 않는 지식으로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알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일과 삶에서의 ‘암묵지’ 사례

암묵지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예는 '안면인식'이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인식할 때 눈, 코, 입 등에 대한 개별적 특징을 의식하기보다는 얼굴 전체를 보고 자동적으로 인식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인지 과정을 통해 얼굴을 인식하는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또 다른 예로, '자전거'를 떠올려보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무척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핸들과 브레이크를 잡았는지, 페달을 어떠한 속도와 방향으로 밟고 있는지, 안장에 닿는 신체 부위에는 어떤 힘이 가해지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며 느끼는 여정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아름다운 한강의 풍경, 시원한 바람의 촉감, 방해물과의 간격 등에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안면을 인식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일처럼 우리에게 학습되어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지식들이 실제로 많이 존재한다. 암묵지 형태의 경험은 지금 막 나타난 학습으로 인식하기 어렵거나 기능의 과정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지식이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뿐, 우리는 몸으로 감각으로 다양한 지식을 학습해 일상에 활용하고 있다.


알고 있지만 모른 채 암묵지화 되어버리는 지식들이 많다


일터에서도 수많은 암묵지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고객을 끌어들이고 감정을 흔드는 핵심 단어, 잠재 고객이 영업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정확한 시점, 앱 사용자들의 숨겨진 pain point, 우리 사업에만 해당되는 의사결정 프로세스 등이다. 대부분의 팀들이 무형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가 그것이 노하우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갖추지 못한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 못함으로써 암묵지화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습을 거듭한 다양한 암묵지는 연차가 쌓일수록 힘을 발휘한다. 이를 형식지의 형태로 끌어올리는 능력은 소속한 곳에서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 보이지 않은 힘이 되어준다. 문서화 혹은 콘텐츠화 할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암묵지'와 축적지향의 패러다임

제조업에서 일하던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의외로(?) 대기업에서는 암묵지에 대한 인식이 깊게 뿌리 박혀 있는 것 같다. 사회 초년생 당시에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해외 명문 MBA 출신의 경영 컨설턴트나 고급 인력들에게 '감히 함부로 조언하지마.'라고 공격적인 말을 쏟아내는 경영진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의례 높은 자리에 있는 임원의 당연한 태도인가 싶을 정도였다.

수많은 암묵적 지식이 존재하는 영역들이 있다


하지만 그 분들을 공장에서 마주했을 때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공장 노동자들에게 겸손한 태도로 한없이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것이었다. 근속연수가 20년이 넘는 현장 직원들은 오랜 기간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이었다. '명장'이나 '장인'으로 표창을 받을 만큼 기술을 몸으로 직접 부딪혀가며 체득한 분들이기도 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암묵지의 영역에서 수많은 시도와 반복을 통해 지식을 익혔고,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지식화하여 다시 동료들에게 나누는데 열정을 쏟는 분들이었다.


자본이 없는 시기에 무언가를 쌓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가다가 필요하고, 암묵지를 발굴하는 작업이 더 더디고 힘들었을 것이다. 고생을 거쳐 기업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에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을 폄하하는데 조금 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 업계에 잔뼈가 굵은 경영진들은 암묵지를 끌어올리는 에너지에 얼마나 깊은 진심이 담기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암묵적 지식을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지식으로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그렇게 축적된 노하우가 한 번이라도 더 전파되어 고급 경험 지식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경영진들의 축적지향의 패러다임인 것이다.


빠르게 성장해온 스타트업들은 축적지향의 패러다임에 대한 공감대가 비교적 잘 형성되어 있다. 특히, IT업계에서는 회고와 공유의 조직문화가 빠르게 패치되어 있다. 소프트스킬을 많이 사용하는 문과생들 역시 축적지향의 패러다임을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회고 문화도 일종의 축적지향 패러다임인 셈이다.


  



‘암묵적 지식’을 ‘형식적 지식’으로 코딩하는 방법

우리가 암묵적 지식을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마치 치밀한 과학자가 된것 처럼 일의 과정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기록이 필요하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반복하며 암묵적 지식을 쌓고 이를 나누고 구체화하고 변환시키며 형식적 지식으로 코딩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쌓인 결과가 조합되면 마침내 자신만의 프로토타입이 구체화되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힘이 생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서화의 중요성은 두 번 말해 입 아픈 이야기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상황이라면 기록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 생길 것이다.


기록과 성장 중 양자 택일 해야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의식적으로 자기만의 효율적인 주기에 맞춰 강약을 조절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접 실천해보지 않으면 자신에 맞는 강도와 루틴 설정 조차 어렵다. 기록하는 일에 몰두하느랴 오히려 성장이 발목 잡히고 있다면, 마음 속의 불안에 대해서도 살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노나카 타케우치 SECI 모형을 참고할 수도 있다. 조직에서 지식이 탄생하는 시스템을 모델화 한 것으로 암묵지와 형식지의 4가지 지식 변환 과정이 지속적으로 상호 순환하면서 나선형으로 변화해간다는 내용이다.


SECI 모형 (출처 : hermes.webster.edu)


각 변화과정의 특징도 함께 살펴보자.


1. 공동화 (Socialization : 암묵지-> 암묵지)

개인의 암묵지를 다른 조직 구성원(혹은 회사 밖 동료)들과 경험을 통해 공유하는 단계

(예 : 현장 업무연수, COP(communities of practice), OJT, 멘토 멘티, 티타임, 회고 모임)


2. 표면화(Externalization 암묵지-> 형식지)

암묵지를 은유, 비유, 모델, 대화, 이미지화 등을 통해 가능한 한 분명한 개념과 언어의 형태로 형식지화 하는 단계

(예 : 보고서, 매뉴얼 생산, 브런치에 글쓰기, 레쓴런 챌린지)


3. 조합화(Combination 형식지 -> 형식지)

여러 개의 콘셉트를 조합시켜서 지식 체계를 만드는 단계

(예 : IT기술을 통한 지식의 시스템화, 백서, 리포트, 논문)


4. 내면화(Internalization 형식지 -> 암묵지)

암묵지를 조직 전체에 퍼트리며 새로운 암묵지를 형성해 나가는 단계

(예 : learning by doing, 콘퍼런스, 타운홀 미팅)




알고 있는 것들이 새로운 가치로 재탄생

암묵지를 형식지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속적으로 학습중심의 환경에 자신을 놓고 암묵지를 수집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동료들의 참여를 유도해 암묵지를 축적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유지시킬 '넛지'를 활용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주변인들과의 연결과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하는 것이 새로운 가치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무형 지식의 특성에 의해 암묵적인 지식을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흘려버리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진 않은지? 특정한 지식에 매몰되어 숲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등.. 누군가를 좇아가는 '후진'의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선진'이 되기 위해서는 늘 성찰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할 것 같다.


정리하자면, 암묵지를 적용시킨 콘텐츠를 꾸준히 쌓으며 자신의 경험을 가치 있는 지식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일하는 상황에서 암묵지 채굴작업(!)에 공을 들이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다. 문과생 출신이라면 수많은 암묵지의 난립 속에서 자신의 가치마저 의심해본 적 있을 것이다. 광부의 마음으로 채굴한 암묵지들을 모아 보석 같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일상에서 배운 것들을 회고하고 기록하는 일부터 꾸준히 실천해 나가야겠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알고 있으며, 성장을 위해서는 아는 것을 제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함을 다시금 각인시켜 본다.




참고자료 다운로드 (KDB미래전략연구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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