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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시 한번

by YUN

퇴사 후 나의 삶은 단조로웠다. 시간이 되면 밥을 먹었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친구를 만나고. 일을 할 때는 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이 살아서, 쉬는 동안은 최대한 편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지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7개월이 흘렀다. 회사를 그만두고 ‘일을 다시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까지 걸린 시간.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필터가 장착되기 시작했고 다시 움직이고 싶어졌다. 사실 ‘이렇게 있다가는 영영 이대로 멈춰버릴 것 같아서’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방송작가의 일이 싫어서, 질려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내가 선택한 길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돌고 돌아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는데, 막내에서 끝내다니, 글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돌아서기엔 너무 억울하고,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의지와 달리 방송작가 공고를 볼 때마다 선뜻 이력서를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또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어쩌지', '한번 더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며칠을 올라오는 공고만 한없이 바라보다가 한 달 정도 단기로 막내작가를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다큐멘터리였다.


끝이 정해져 있고 기간도 길지 않았기 때문에 도전해봐야겠다 싶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메일을 보내고, 하루정도 지났을까, 프로그램 메인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시간이 촉박해 전화통화로 면접을 대신한다고, 어떤 일을 할 예정이고, 막내로 일할 때 어떤 일을 주로 해왔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내게 물었다. 나는 전화일 뿐인데도 너무 긴장해서 손이 떨렸고 가만히 앉아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침착하게 거짓을 보태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를 되물었다.


이전 프로그램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라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전화면접을 보면서도 일하고 싶은 마음 반, 이대로 면접에서 탈락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다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큰 도전이고,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잠식당해 있던 나를 끌어올려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면접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것보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더 자세히 말했다. 낮출 수 있는 만큼 나를 낮췄다. 아마 내게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메인작가님은 짧고 굵은 통화 끝에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는 종료됐다. 쿵쿵대는 마음이 주체가 안됐다. 긴장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출근날을 맞이했다.


회사 근처 지하철역 출구로 나오니 저 멀리 높이 솟은 방송국 건물이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괜찮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되풀이하면서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다, 괜찮은 사람들 일거야라며 나 자신을 다독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건물에 도착해 미리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하니 웃는 모습이 귀여운 서브작가님이 나를 데리러 왔다.


사무실은 너무 조용해서 타자 치는 소리와 간간히 전화하는 소리만 들렸다. 팀의 메인작가님은 조금 늦게 나온다는 말과 함께 서브작가님은 틈틈이 나를 챙겨주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사람. 지난번에 사람을 완전히 믿었다가 그 끝이 좋지 않았기에 나는 최대한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메인작가님이 도착해서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주된 일은 자료조사와 취재였고, 그중 가장 처음으로 할 일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취재였다. 비정규직 노동자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그에 따라 해당되는 본인 또는 그 가족의 연락처를 몇 단계에 걸쳐 힘겹게 알아냈다(우선 본인의 동의를 받은 후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는 간단한 질문지를 작성했다.


취재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일을 하러 왔으니 피할 수는 없었다. 대신 주제가 가볍지 않은 만큼 신중하게 해야겠다 싶었다. 일단 모르니 물어보자 싶어 서브작가님께 어떤 식으로 전화를 하는지를 물었고, 간단히 질문지를 작성해서 참고하며 취재를 시작했다.

첫 취재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도중 돌아가신 분의 유족분이었다. 각오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마음이 쓰였고, 안타까운 상황에 내가 그의 가족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연달아 몇 통을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금세 지쳐버렸다. 취재하고 정리하고, 취재하고 정리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해가 져버렸다.


일하는 동안 얼마나 긴장했는지 의자 등받이에 등을 대지 않고 몸을 꼿꼿이 편 채 연락을 돌렸다. 실수를 할까봐 불안하고 마음은 괜히 조급해져서 그런지 밥도 제대로 먹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같이 일하는 서브작가님은 그런 나를 알아챘는지 모르겠으나, 일하는 중간중간 산책도 같이 나가고, 식사시간이 되면 구내식당 메뉴를 보내주며 밥을 먹으러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이 소소한 말과 행동이 사람을 경계하고 있던 나에게 꽤나 큰 위안이 되었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들을 살짝씩 꺼내놓을 수 있었고, 아주 조금 마음을 열어도 괜찮겠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며칠은 계속 같은 주제로 취재를 했고, 팀 구성원이 모여서 한 회의가 끝난 후에는 주제가 바뀌기도 했다. 그때마다 주제에 맞춰 새로운 사람들과 접촉해 자료를 모았다.


보호 종료 아동,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유튜버 등 다양한 주제로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취하다 보니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나와 전혀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


새삼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고, 때로는 전화를 하고 있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의문이 들기도 했고, 내가 너무 겁을 낸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생각과는 다르게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데,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온몸의 근육들이 뭉치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로 내 안과 밖은 분주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했다. 내 단기 근무는 예상보다 빠르게 끝나 원래 기간인 한 달의 절반인 2주 정도 일을 하고 마치게 됐다.


이 이야기를 내게 전해주면서 작가님들은 미안해했고, 다른 프로그램 원하면 옮겨준다고 얘기도 했지만, 나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실 내 일이 보름 정도 빨리 끝난다는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리고 안도감이 찾아왔다.


일하는 내내 긴장해서인지 내 몸은 곳곳에 근육이 뭉쳐 스트레칭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좋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한껏 움츠러들어 있다 보니 마음이 항상 불안했다.


그래도 나는 해보길 잘했다고,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아주 조금 용기의 불씨가 자라났다고, 일을 할 때 여유를 가지는 건 참 중요하다고, 좋은 선배란 어떤 사람인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자신했다.


여기서 일한 짧고 굵은 경험과 부드러운 사람들 덕에 다시 한번 앞으로 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치유된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보름이었다. 이다음은 막내가 아닌 서브작가로 한 발자국 나아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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