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가득 채운 한 주를 보내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여행들로 나는 많이 회복되었다고 느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생활 속에서 안정을 찾고 행복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었고, 사람에 지쳐 아주 잠깐 다른 곳으로 도피했을 뿐이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보통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씻다가 느닷없이 선배 작가가 했던 말이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갔다. ‘너 친구들은 너랑 말 안 통한다고 안 해?’ ‘왜 이것도 못 해’ ‘나랑 장난해’ 나를 몰아세웠던 말들이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고 선배 작가의 얼굴과 표정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들었던 그 장소로 되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사람은 분명 이곳에 없는데,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져 무서웠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분명 그녀의 톡도, 연락처도, 그녀와 연관된 사람마저 다 끊어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미 끝난 일이라고 무시하기도, 지워버릴 수도 없는 당시의 일들은 내게 잔상으로 남아 오랜 시간 머물렀다.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갑작스럽게 기억들이 떠올랐다.
카페에 가서 개인적인 볼일을 보다가도 그녀의 말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내 가슴은 쿵 내려앉았다. 한 번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전화 통화를 하며 핸드폰 너머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이름이 선배 작가의 이름과 같았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 아니겠지, 말도 안 돼, 동명이인이겠지, 그럴 일은 없어’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벌벌 떨 수 있다니. 이 사실이 어처구니없었고 이렇게 될 때까지 내가 나를 방치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미워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가 안쓰러워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은 스스로가 무척이나 가여워진 날도 있었다. 혼자 운동을 하고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갑자기 혼자 우주에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무중력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고 어딘가로 흡수되어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에 놀라 친구 Y에게 전화했다. 그 친구는 나를 걱정했고, 나는 한참 전화 통화를 한 후에 곰곰이 생각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수는 없겠구나. 겪었던 일이 나에게 큰일이었구나, 당분간은 힘들겠다.‘ 이런 생각이 자리를 잡으면서 억울한 마음과 함께 나쁜 마음도 같이 자라났다.
아무리 내가 잘못했다고 해도, 내가 문제였어도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지 말았어야 한다는 분노의 마음으로 '선배 작가가 가장 행복할 때 가장 불행한 일이 일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되뇌었다. 나만큼 그 사람도 힘들기를 바랐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주변에서 어떤 말을 하든 들리지 않았다. 그냥 나의 잘못,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벗어나고, 휴식의 시간을 갖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여유가 생기니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잘못이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폭언을 받을 만큼이 아니었고,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은 그냥 이상한 나쁜년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