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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후회를 부를 것 같아서(1)

by YUN

단기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2달 동안 입봉 작가(막내작가에서 서브작가가 되는 것을 의미)를 모집하는 공고가 있는지 자세히 살폈다. 그중에서 ‘입봉 작가 지원 가능’이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고민하다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부랴부랴 준비해 제출했고, 이른 시간 안에 면접 연락이 왔다.


나는 낯선 길에 잔뜩 긴장하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곳의 메인 작가님은 팀의 작가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급하게 그만두게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이제 면접을 그만 보고 싶다며 지친 기색을 나타냈다. 메인 작가님은 VCR 구성을 해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고, 나는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 고민하는 얼굴에 나는 괜히 더 긴장되어 애꿎은 손만 잡아 뜯고 있었다. '막내일도 같이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구성 안 해봤다고 안 뽑으려나' 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메인 작가님은 지금 팀에 막내 작가가 있으니 그 친구를 도와주면서 서브의 일을 배우는 건 어떠냐고 물어왔다. 지난번 입봉에 실패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난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전 프로그램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당시에는 막내 작가가 아예 없었으나 여기는 이미 자리 잡은 막내 작가가 있었고, 나는 그의 일을 돕는 역할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출근하라는 말과 함께 면접은 끝났고 나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겨울이었음에도 땀이 흥건하게 났다. 긴장과 더불어 다시 작가들 속에 섞여야 한다는 사실이 꽤 부담이 됐다. 단기 아르바이트는 '짧으니까'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내게 의미가 달랐다. 이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아닐지 결정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첫 출근 날은 사무실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좁은 공간 탓에 막내 작가에게 아이템(주제) 전달만 받고 옆방으로 넘어와 취재를 진행했다. 첫 아이템은 ‘핫플레이스 빵집’ 핸드폰을 들고 숨을 크게 내뱉은 후 연락을 했다. 극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모든 취재는 항상 높은 산처럼 넘기 힘든 일이었고, 그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진정시키며 일을 하곤 했다. 취재를 끝내고 첫 구성을 한 후 메인 작가님께 드렸다. 메인 작가님은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내가 한 취재나 구성, 가편 영상 등 대부분의 과정을 보면서 피드백을 자세히 해주었다(피드백을 잘해주는 선배를 만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입봉 자리에 뛰어든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고, 그 역할을 메인 작가님이 해준다는 사실에 무거운 마음이 점차 가벼워졌다. 다만 팀의 작가들은 같이 일한 지 꽤 되어서인지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고(여기엔 내 성격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 어쩌면 최대한 사람을 멀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딪히지 않도록, 상처 받지 않도록,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내가 담당한 코너는 메인 작가님의 피드백에 따라 수정을 거듭하며 어렵사리 시사까지 끝내고, 녹화 전날 밤이 되었다. 녹화가 24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그때까지도 수정된 영상을 받지 못했다. 녹화는 점심쯤이고, 처음 쓰는 내레이션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나는 점점 불안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안은 커졌다. (녹화 당일에는 코너의 성격과 영상에 따라 내레이션을 써서 그 내용을 직접 출연자가 읽어주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내가 속해있던 프로그램은 한 번에 2회분을 녹화하기 때문에 내레이션 2개를 써야 했다) 결국 영상은 녹화 날 아침에서야 받았고, 녹화장에서 내레이션을 부랴부랴 쓰는데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져 갔다.


첫 시작부터 이렇게 시간에 쫓기게 된다니, 대상 없는 원망의 말들이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결국 나는 멘붕에 빠졌고, 그 뒷수습은 메인 작가님과 세컨 작가님이 해주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기본적인 것조차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고,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냐고 녹화 내내 스스로를 다그쳤다. 녹화가 무사히 끝나고 작가님들은 시간 내에 어떻게든 써야 한다며 나에게 당부했고, 그 이유가 너무 타당하고 납득이 되었기에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입봉 작가로서 첫 VCR과 함께 주눅이 들어버렸다.


팀에 합류하고 2주가 안 되었을 때,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합류한 7년 차 작가님 한 명을 제외한 4명의 작가가 프로그램을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메인, 세컨드·서브 2명, 막내 작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제 겨우 말을 트기 시작했는데, 또 새로운 작가들에게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고,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VCR은 누가 봐주지 ‘라는 걱정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괴로워할 틈도 없이 프로그램에 남아있는 작가 중 막내였기에 녹화장 세팅 방법부터 배워야 했다. 나도 나를 못 챙기는 상황에서 뭘 챙겨야 하는지 정신도 없고, 영혼은 이미 반 정도 탈출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의 두 번째 녹화를 마지막으로 작가들은 떠났고, 새로운 작가진과 함께 프로그램은 개편을 맞이했다.


새로운 작가들이 합류했으나 막내 작가는 공석이어서 결국 내가 막내 역할을 병행했다. 새로 합류한 작가진은 방송 준비를 모두 함께해주었고, 그중 새로 합류한 4년 차 서브 작가님은 정도 많고 따뜻한 성격으로 나를 잘 챙겨주었다. 집에 가는 방향도 비슷해 퇴근하면서 저녁도 같이 자주 먹었다. 서로 이야기를 하며 그녀가 점차 편해지고, 마음도 열게 되었다. 소소한 일들이 있어 힘들지만 나름 버틸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4년 차 서브 작가님이 메인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고 들어오더니 ‘나 오늘 마지막 날이야’라며 프로그램을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서브 작가님과 새로 온 메인 작가님은 일하면서 서로 스타일이 달라 충돌했고, 메인 작가님은 다른 프로그램이 더 맞을 것 같다며 그곳으로 부르려고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본인과 맞지 않아 해고한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루아침에 유일한 내 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믿고 의지한 건 4년 차 서브 작가님 한 명뿐이었는데, 강 한가운데 혼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결국 4년 차 서브 작가님은 떠나게 되었고, 나는 막내 일까지 병행하며 체력도 심적으로도 계속 지쳐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막내 작가가 들어왔다. 방송작가의 일이 처음이고, 적응을 어려워하는 언니였는데(나보다 나이가 3살 많았다), 나는 팀을, 프로그램을 떠날까봐 최선을 다해 도왔다. 막내 작가의 일 중 건강 CG(건강 코너에서 출연자들의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드는 그래픽)를 만드는 작업이 있는데, 경력이 아예 없어서인지 CG 자체를 어려워했다. 건강 코너를 담당하는 작가님 두 명(한 주씩 나눠서 대본 작성을 한다)은 막내 작가에게 시키고 내가 한 번 수정을 한 상태로 넘겨달라고 했는데, 처음으로 받은 CG는 거의 백지였다. 사용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상태, 나도 건강 코너 CG는 만들어보지 않았기에, 넘겨받은 순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건강프로그램에서 쓰인 CG를 하나씩 찾아가며 수정해 건강 코너 작가님께 보냈다.


그리고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일어나 아침부터 가편본(1차 영상 편집본)을 받아 자막을 치기 시작했다. 분량이 작지 않았고, 자막을 해본 경험이 없어 나도 매번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다. 보통 오전 9-10시 사이에 시작하면 오후 8시 이후까지 진행되는 작업.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해도 시간을 단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평일에는 회사에서 모든 시간을 쏟고, 주말에는 막내 CG 수정과 자막 작업까지. 매주를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풀 근무를 서고 있었다.


건강 코너 담당 작가님은 평일에 출근한 후 막내 작가가 한 CG와 내가 수정한 CG를 비교하며 확인했고, 나에게 ‘고생했다’라는 말과 함께 막내 작가를 소환했다. 건강 코너 담당 작가님은 막내 작가에게 ‘이건 윤이한테 다하라고 맡긴 거야, 다음부터 이렇게 주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고 말하며 CG 설명을 다시 한번 해주었다. 칸막이 넘어 건강 코너 작가님의 말에 위로를 받았고, 고생했다는 말이 그렇게 따스한 건지도 처음 알게 됐다. 막내 작가는 그 뒤로도 실수가 반복됐지만, 나도 그렇게 막내 작가 시절을 보냈기에 벅차더라도, 조용히 막내 작가의 뒤에서 일을 도왔다.


프로그램 시청률이 바닥을 치면서 개편이 시작되었고, 나는 담당 코너가 한주 또는 2주를 기준으로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맛집, 아이디어 관련 코너 그리고 건강 코너. 건강은 스튜디오 대본을 서브 작가님들이 쓰고 VCR은 내가 담당했다. 언니들은 좋았지만, 일은 상상 이상으로 너무 힘들었다. 특히나 사례자를 찾는 일이 너무 고되고 부담스러웠다. 카페, 밴드, 인스타, 과거에 나왔던 사람 등 사례자를 찾을 방법을 총동원했지만,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해 하루하루 피가 말라갔다. 섭외하지 못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퇴근 후 집에 와서 새벽에 SNS를 뒤적이며 찾아놓고, 출근하면서 연락을 취했다. 사례자를 찾는 것도, 자택 촬영 허락을 구하는 일도, 디테일한 취재도, 협찬 건에 대해 이해를 시키는 것도, 출연료를 이야기하는 것도 버거웠다. 한 번씩 장시간 통화를 하고 나면 온몸에 진이 다 빠져나갔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조금만 더 참아보자’ 정말로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내가 따랐던 4년 차 서브 작가님의 자리에 2년 차 새로운 작가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 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느라 관심을 보일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작가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줬고,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줬다. 자신의 몫의 일과 아닌 것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알았고, 타당성을 제기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막내가 하는 건강 CG가 다른 작가님들의 코너인데, 그것을 왜 자신이 봐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건강 코너 작가님들과 충분한 이야기를 통해 나는 막내 일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주말 중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새 작가는 1-2주 정도 봐주기로 한 후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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