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해서 잠깐 눈을 붙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드디어 가는구나...’ 씁쓸하면서도 설레는 여행 전날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분명 퇴사 후에 약 일주일 정도는 집에 머물렀을 것이다. 워낙 집을 좋아하고, 일을 1년 이상 하고 나면 몸 상태가 안 좋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여행을 가는 스케줄로 계획을 짰다. 길지 않더라도, 잠시 이곳을 떠나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고 싶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여행을 가는 당일, 한시라도 빨리 그곳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항상 불안함 반, 설렘 반으로 떠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저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문자가 오지 않을까, 전화가 오지 않을까 불안했고, 초조한 마음으로 습관처럼 핸드폰을 자주 들여다봤다. 그래서 연락이 닿기 어려운 곳으로 가고 싶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낯설고도 신기한 나라였다.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곳곳에 적혀있었고,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곳이었다. 이만큼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도 없었다. 딱 필요한 말만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사람들은 친절했고, 건물들은 호기심을 일으켰으며, 밀크셰이크는 내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 3박 4일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금각교, 등대, 섬, 전망대 등의 여행지를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새롭고 신기한 탓에 홀린 듯이 움직였고, 빽빽한 일정으로 다른 생각들이 들어올 틈조차 나지 않았다. 저녁때 들리는 마트 구경은 재밌었고, 숙소로 돌아갈 때 건물에서 반짝이는 빛들은 아름다워 보였고, 구름이 잔뜩 낀 날이면 아쉽기도 했고, 추운 날이면 더 두꺼운 옷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순간순간이 내게는 축복이었다.
자책하는 마음 외에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추운 것도, 다리가 아픈 것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무엇보다 언니가 함께해서 든든하고 안심이 됐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어떤 행동을 하던 나무라지 않고 포용해줄 사람. 그래서 이 시간이 더 소중하고, 아주 오랜만에 행복했다.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 역 앞에 있는 핫도그를 마지막으로 맛있게 먹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와 언니는 여독을 풀기도 전에 다음날이면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가족 모두의 스케줄에 맞춰 일정을 짜다 보니 바로 연결해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나는 공백 없이 어딘가로 또다시 간다는 사실이 꽤 좋았다. 캐리어에 들어있던 겨울옷을 빼고 부모님과 언니, 나의 짐을 쌌다. 블라디는 추웠지만, 이곳은 5월의 따뜻한 날씨로 옷이 가벼워 짐이 훨씬 가벼웠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처음 가는 제주도, 부모님은 20여 년 만에 가는 제주도인지라 기분이 묘했다. 일만 하며 바쁘게 살았던 부모님의 제주도 여행, 뭉클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마음이 더해졌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고민에 빠졌다. 너무 오랜만에 오기도 했고 어디가 괜찮을지 판단도 서지 않았다. 어디든 괜찮다고 가고 싶은데 가자는 말에 부모님의 말씀에 여러 장소를 얘기하고 때에 맞춰 움직였다. 갈치와 회도 먹고, 녹차밭도 가고, 송악산 둘레길도 걸었다. 송악산 둘레길은 걸을 때 흐리기 시작했지만, 운이 좋게도 날이 금방 개었고, 바람도 불었다.
바람을 느끼면서 걷고 있자니 모든 근심과 걱정이 날아갈 것 같았다. 바람에 맞춰 흔들리는 갈대들과 웃으면서 걷는 사람들, 맑은 하늘, 귀여운 송아지까지 기분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문득 여기는 나를 사랑해주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편안해졌다. 한참을 불안 속에서 떨었는데, 그 떨림이 잦아드는 느낌이었다. 안정감을 느끼면서 어리광도 부려보고 한껏 웃어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