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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08.

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by 아난


한국만큼 대학 입시가 치열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북미의 대학입시가 널널하고 쉽다는 것은 아니다. 성적 유지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고 나같이 미술대학을 가기 원하는 사람은 미술 포트폴리오도 필요하다. 어디 그뿐이던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토플 점수도 필요했다. 고등학교의 마지막 시험이자 중요 관문인 Provincial Exam을 마치고 토플 점수도 따낸 나는 미술 대학 세 곳에 입학 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근래에는 포트폴리오 작업물을 사진으로 찍어서 학교가 지정해둔 사이트에 업로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내가 학생 때만 해도 직접 그림을 가져가서 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멀리 타 지역에 사는 학생들을 위해 이미지 파일을 CD로 구워서 제출한다던가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도록 학생들을 가이드하셨다. 그중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학교에 직접 방문해서 교수진 앞에서 포트폴리오를 펼쳐 보이며 설명하는 ‘인터뷰’ 과정이다. 입시를 그냥 대학에 가기 위한 방편이 아닌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검 승부를 하는 과정으로서 진지하게 경험하기를 바라셨던 선생님이 적극 추천하셨던 방법 이기도이다.


아직도 선생님께서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마지막으로 점검해주시던 그날이 기억이 난다. 포트폴리오 가방에 들어가기 전 그림을 최종적으로 추려내고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선 학생들의 그림을 넘겨보며 어떤 순서로 그림이 들어가면 좋을지 그 흐름을 봐주셨는데 정말 입시가 코 앞으로 빠싹 다가와 있던 때였기에 선생님도 학우들도 모두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선생님 바로 뒤에 서서 그분이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넘기는 것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선생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끈거리는 더운 열기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와 학우들 역시 마지막 작품을 하느라 몇 시간 자지 못하면서 그림을 그릴 때였다.


이렇게 다리미 열판처럼 후끈한 열정으로 그림을 정리하고 세 곳에 원서를 냈는데 그중 한 학교는 직접 인터뷰를 보러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토론토에 있는 OCAD. 원한다면 작품사진을 CD로 구워 제출할 수도 있었지만 인터뷰를 결정했다. 합격을 한 것도 아니고 입시 인터뷰를 보러 굳이 토론토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과감한 액션이지만 당시의 화실 친구들과 나는 망설이지 않고 몸소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에서 토론토로 날아갔다.


Self Portrait with light, pencil on paper

다른 학생들에 비해 큰 작품이 많았던 나는 그에 맞는 대형 사이즈의 포트폴리오 가방이 필요했다. 큰 가방을 찾던 나에게 선생님께서는 당신 대학시절에 쓰시던 포트폴리오 가방을 선물해주셨다. 인터뷰 하루 전날 토론토에 도착한 우리는 학교 근처의 낡은 모텔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다.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밤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기다리던 D-Day가 밝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때 함께 토론토로 갔던 화실 친구들 모두 합격통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뷰에서 바짝 긴장되었던 건 사실이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그리고 인터뷰 과정이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거나 까다롭지도 않았다. 정성 들여 만든 포트폴리오를 칭찬해주시는 교수님도 계셨다.


밴쿠버로 돌아온 뒤 얼마 후 나는 최종적으로 입학원서를 넣었던 3개의 모든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안될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은 없었다. 사실 득락 여부가 큰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겸손하지 못하고 건방져서 그런 게 아니었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큰 관심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꼭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냥 화실에서 이렇게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랄까.


어쨌든 나는 세 개의 대학 중 토론토에 있는 OCAD 입학을 결정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좀 더 다른 곳, 좀 더 큰 곳에 가서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선생님의 조언 때문이었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깊던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이 세상의 다른 저편도 내가 경험했던 밴쿠버처럼 마냥 따뜻하고 친절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지방도시 군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밴쿠버에서 다시 토론토로. 원하던 원치 않던 계속해서 고향 같은 곳을 등지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젊은 날의 내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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