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미술 과제가 주어지면 남은 일주일 내내 그것 하나에 집중했다. 그냥 아이디어 스케치만 해오는 과제는 그나마 쉽지만 직접 작업을 시작하고 그것을 해내는 과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며 여기에는 많은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캐나다 밴쿠버라는 심심한 동네는 그림에 몰두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해결해야 할 학교 과제와 시험들은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입시 준비로 바쁜 한국 친구들에 비하면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철부지 같은 어린 학생이었지만 내 나름 야망과 비전을 품고 작업했다. 멋진 작품을 완성해서 들고 가고 싶었다. 뭔가 대충 해가는 것은 스스로 만족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그림, 내 방에 걸어두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이때 어쩌면 어렴풋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정말 좋은 작품은 내가 먼저 사랑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것을.
어린 학생이었던 내가 열정을 가지고 그렇게 달리게 한 것을 무엇일까 문득 돌아보게 된다. 물론 미대 입시라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지만 솔직히 그것이 내게 대단한 목표처럼 느껴졌던 적이 없다. 내게는 그저 일주일이라는 명확한 데드라인이 주어졌고, 그리고 내 작품을 봐주는 관객이라는 존재가 확실했다. 선생님과 학우들로 이루어진 단출한 관객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관객들은 그냥 멍하니 그림을 보다 지나가는 존재들이 아니었고 구체적으로 작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피드백이 있었기에 일주일 내내 붙들고 있어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환경에 있을 땐 누구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그래서 더 발전하고 싶어 진다. 새싹은 햇빛과 토양 그리고 물이라는 조건이 완성되면 성장한다. 바로 그때의 나처럼.
그래서 열정이라는 것도 무조건 아스팔트에 헤딩하듯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힘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조건이 맞아야 잘 발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반대로 열정 자체가 그러한 환경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인가 박자가 맞아떨어지고 크게 애쓰지 않아도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때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런 순간들을 예민하게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들,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그 요소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데드라인, 관객, 그리고 제대로 된 디렉션.
종합해보면 나의 열정을 타오르게 했던 이 세 가지 요소였다. 집중력을 강화시키는 데드라인, 기분 좋은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관객이라는 존재, 그리고 선생님과 학우들의 피드백. 피드백을 통해 제대로 된 디렉션을 받을 때, 그림이 ‘작품’이 될 수 있고, 그림을 완성시키는 ‘파이널 터치 (final touch)’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무엇인가 내가 열심히 노력한 것이 제대로 된 디렉션을 가지고 ‘향상’되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곳으로 한 수준 도약하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성장을 꿈꾸며 그와 비견될 수 있는 기쁨은 많지 않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 과제로 종종 아티스트 스터디(Artist Study)를 받곤 했다. 아티스트 스터디는 한 화가가 그린 완성작을 그대로 베껴서 그려오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드로잉 실력을 차근차근 길러 나갈 수 있었다. 이 그림은 한 화가의 정물화를 카피(copy)한 작품인데 아쉽게도 화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미술 잡지에 실린 정물화라는 것만이 기억날 뿐이다. 그림 안의 반쯤 벗겨진 오렌지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그렸던 것은 지금도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