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수업이 끝날 때 즈음되면 숙제를 받았다.
다음 수업 시간까지 약 일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마쳐야 할 과제였다. 사물을 직접 보고 그리는 드로잉 관련 숙제 일 때도 있었고 특정 주제가 주어지면 그에 맞는 작품을 완성해 오는 일 혹은 그에 대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오는 일이었다. 한 주에 한 작품을 바로 완성하는 일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경우 학생들로부터 아이디어 스케치를 충분히 도출해 낸 뒤에 이를 기반으로 해서 작업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선생님의 방식이었다.
당시 나는 섬네일 스케치(Thumbnail sketch)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섬네일 스케치는 말 그대로 손톱만큼 작은 그림을 말하는데,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다양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나열하는 과정을 뜻한다. 물론 진짜 손톱만큼 작은 스케치는 아니다. 선생님께서는 하나의 작품 콘셉트에 대해 다양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이 과정을 매우 중요시하셨다. 솔직히 간혹 이 과정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다. 그냥 마음에 바로 꽂히는 것 하나로 대충 아이디어 잡아보고 그냥 작업에 들어가도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섬네일 스케치를 게을리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좀 더 눈여겨보고 진지하게 했다면 거기서 얻어지는 것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섬네일 스케치라는 과정을 그냥 그림을 시작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여기는 것을 너머 삶에 견주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 과정은 ‘선택’이란 것을 할 때 익숙한 것을 기준으로 습관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침착하게 다양한 옵션들을 생각해보고 때론 완전히 새로운 전제하에 바라보기도 하며, 충분히 정보를 취합하고 거기에서 최선의 것을 감별해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어찌 보면 종이나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바르고 칠하는 물리적인 과정보다 더욱 창조적이고 핵심적인 과정이다. 인간의 두뇌가 동물적 습성에서 벗어나 매우 고차원적인 작동 하는 순간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최선의 것을 감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크게 보면 살아가면서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알다시피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리는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최선의 결정이었는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은근히 급한 성정을 가진 나는 내게 이런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었다. 보기보다 많이 부실했다. 일단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 차분하게 정보를 취합하고 하나하나 따져보는 차분함이나 치밀함 혹은 내적 질서라는 게 없었다. 특히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별로 알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충대충 결정해버린 것이 부지기수였고 그것들은 살면서 꾸준히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나름 야무지게 살아보며 결의를 한 적도 있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을 때가 많았다. 돌이켜 보건대 그냥 야무지게 사는 것과 지성을 가지고 사는 것은 다른 일이다.
지성은 횃불이다. 어두컴컴한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빛이다. 야무지게 살아보자는 마음은 노력인데, 노력도 뭔가 보이는 상황에서 잘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섬네일 스케치는 밝은 지성을 가지고 삶을 연구하는 한 과정, 그리하여 가장 적합한 것을 감별해내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지성이다.
인생이라는 것도 이렇게 재미있게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풀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즐거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