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냇물_12
커피가 똑 떨어졌다.
: 허망하다
컵에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공기만 마셨다
: 허무하다
아침에 커피를 못 먹었다. 다리에 힘이 없다.
: 허전하다
믹스를 기대했는데 아메리카노를 내민 그.
: 허황되다
왜 믹스는 종이컵에 타야 맛있는가.
: 허접하다
당을 줄이고 우유맛을 더 내다니
: 허술하다
서랍 속에서 본 기억에 그 한 봉지를 찾아 뒤적인다.
: 허덕이다
그래, 무설탕 커피도 한번 먹어보자
: 허용하다
겨우 재우고 한 모금 물고 두 모금을 꿈꾸는데 울음소리.
: 허벌나다
뷰 맛집 비싼 커피, 30분도 못 있었다.
: 허례허식
육아 광야를 지났는데 아직도 아침 커피를 끊지 못하겠다.
: 헛헛하다
커피를 끊고 뱃살을 뺄 거라는 다짐
: 허풍
그럼에도 나는 가장 예쁜 컵에 가장 단 커피를 내서
나에게 대접한다.
: 호화롭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광야에 있는 것 같았다.
온전히 내 품에 있어 안정감을 얻는 아이와
온전히 내가 품어 내야 할 두려움과 경이로움의 반복.
그때 나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준 믹스커피들.
후다닥 먹은 아침은 천민의 것 같았어도
반주를 곁들이듯
커피 한잔은 나에게 잠깐의 평화, 행복이었다.
지금 나에게 커피믹스는 추억이고 그리움이고
여전한 달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