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여유로웠던 마날리
길었던 21시간의 버스 이동 끝에 도착했다.
새벽 5시가 넘었지만, 버스에서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서는 잠깐이라도 머무를 숙소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먼지와 땀으로 뒤덮인 몸을 씻고 싶었다.
터미널 바로 앞의 숙소에 들어가, 아무도 없는 로비에서 애타게 기다리니 직원이 내려왔다.
"1,000루피!"
체크 아웃까지 4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여기서 굳이 흥정을 할 힘도, 다른 숙소를 찾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인도 도착 후, 첫 샤워, 첫 침대, 첫 와이파이 등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처음'이라는 단어를 붙이며, 길었던 이틀을 회상했다.
약 3시간의 쪽잠을 뒤로하고, 체크 아웃 시간이라며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덜 깬 채로 숙소 밖을 나섰다.
'이럴 땐 왜 My friend가 아닌 건지'
하지만 마날리의 아침은 이런 투덜거림조차 잊게 만들었다.
델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쾌한 날씨에, 모든 사람들이 친절해 보이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한껏 여유로워진 우리는 뉴 마날리 쪽으로 새로운 숙소를 잡기 위해 이동했다.
날씨도 좋고, 가진건 두 발뿐이라 조금 긴 거리를 걸어서 이동했는데, 가는 길에 친구를 사귀었다.
한국인을 좋아하는 건지 외국인을 좋아하는 건지 계속 우리와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갔다.
짧았던 동행을 뒤로하고, 뉴 마날리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린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윤 카페로 갈 계획이었는데, 이미 이 곳 지리를 꿰고 있는지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뉴 마날리는 오르막이지만, 길이 일자로 쭉 뻗어 있어 양 쪽으로 펼쳐져 있는 가게들을 보며 걷는 재미가 있었다.
수많은 배낭 여행객들을 보며, 우리 또한 그들 중 일부라는 생각에 괜히 설레기 시작했다.
출국 전에는 '인도 가면 매일 카레만 먹자', '한국 음식은 절대 먹지 말자'와 같은 얘기를 주고받았었는데, 이튿날만에 한국 음식점을 찾게 되었다.
결국 힘들면 찾게 되는 것은 집밥인가 보다.
전날 버스에 대한 악몽이 남아 있었지만 윤 카페에서 바로 다음날 '레'로 가는 버스를 예매했다.
그리고 패러글라이딩도 예매했다.
나에게는 먼 얘기였던 패러글라이딩을 인도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낯선 배경을 뒤로하고 날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괜히 설렜다.
패러글라이딩은 다음날이라 그전까지 다른 일정이 없었던 우리는 여유롭게 마날리를 활보했다.
공 튀기는 소리가 나자, 본능적으로 둘 다 반응해서 소리를 쫓았다.
들어가 보니, 학교에서 배구 수업을 하고 있었다.
전공이 배구인 나는 인도에서 배구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 반가워 앉아서 구경했다.
어린 학생들이 배구하는 모습이 많이 서툴렀지만, 실점해도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다 보니, 어린아이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낯섦과 호기심 사이에서 직접 말을 하진 않고, 힐끗힐끗 우리를 쳐다보다가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는 모습에서 아이들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방인으로서, 잠깐이나마 아이들의 일상에 머무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마날리 거리 구경을 마치고, 새로운 숙소를 찾으러 다녔다.
둘 다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터라, 아무 방이나 제일 싼 곳으로 달라고 했다.
들어보니, 1층은 벌레가 자주 나와 저렴하고, 윗 층으로 갈수록 비싸진다고 한다.
"그럼 1층 주세요"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레와 하루 함께할 생각으로 가장 저렴한 1층 구석방을 얻었다.
침대 위에 침낭을 깔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기 위해 낮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