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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권 Apr 28. 2020

[인도 여행이 뭐길래?] #4

#4 버스에서 만난 '작은 인도'


"I want A/C!"


힘겹게 도착한 터미널에서 티켓을 살 때 유일하게 한 말이었다.


마날리로 가는 버스는 아무거나 다 좋으니 에어컨이 있는 버스로 달라고.


돌아오는 대답은 "Yes, Yes. with A/C. My firend"


왜 만나는 사람마다 'My friend'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만에 그 부름에 익숙해졌다.


뉴델리 역에서부터 수많은 그 friend에게 속고 속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마침내 버스 티켓을 샀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첫 끼를 먹어 긴장이 풀렸던 건지, 별 의심 없이 마날리행 티켓 두 장을 갖고 승차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때 다시 한번 확인했어야 했다.

'진짜 이거 타?'

"진짜 이거 타?"


승차장에 마날리 행 버스는 두 대가 있었다.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고속버스 같은 것''굴러는 갈까 싶었던 마을버스'


두 버스의 차이는 외관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로컬 사람들과 누가 봐도 관광객들인 사람들이 타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에 올라타려 하자, 기사가 티켓을 보여달라고 했다.


정말 당당히 티켓을 보여줬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귀를 의심하게 했다.


"너희 버스는 이게 아니야"


티켓을 확인해보니, 정말 우리의 버스는 '저걸 타면 진짜 로컬이다~'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던 그것이었다.


승차 시간이 코 앞이라 다시 매표소까지 올라갈 수도 없었고, 그냥 타자니 약 20시간을 타고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My friend'에게 당한 우리는, 이것도 경험이라며 A/C 버스 티켓을 들고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정류장은 있는 거 맞아?

"이거 정류장은 있는 거 맞아?"


흔히 말하길, '인도를 느끼려면 기차를 타봐라'라고 했다. 기차를 타보지 않은 우리가 비교할 길은 없었지만, 우리는 버스에서도 작은 인도를 겪고 있었다.


출발 후 4~5시간은 괜찮았다.


근데 이게 정류장은 있긴 한 건지, 길가다 사람들이 달려와서 타고, 아무리 봐도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내리는 일이 잦았다.


닭을 들고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명이 타야 할 자리에 셋이 타는 것도 모자라, 서서 가는 사람들이 생기기까지 했다.


인도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 외국인이라곤 우리 둘 뿐이라, 인도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덤이었다.

6시간 후

인도 사람들의 순수한 관심을 받다가도,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먼지들은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낼 때마다 우리를 놀라게 했다.


창문을 닫자니, 찜질방 같은 더위를 참을 수가 없었고, 6시간이 지나 멈춘 첫 휴게소에서는 마치 사우나에 온 것처럼 손이 저렇게 되어 있었다.


한 가지 장점은 외국인은 우리 둘 뿐이라, 우리가 타지 않으면 버스가 출발하지 않았다.

쉬는 것도 힘들다

"여기 우리 자린데.."


휴게소에서 쉬고 다시 버스에 탈 때면, 항상 우리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인도의 버스에서 '내 자리'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냥 엉덩이 붙인 자리가 '내 자리'였다.


덕분에 버스 안에서도 다양한 자리에 앉아본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관심의 눈길을 받을 수 있었다.

15시간 후

"몇 시간 남았어?"


버스는 '과연 여길 차가 지날 수 있을까?'싶은 길을 지나도, 인도의 첫 해 질 녘을 감상해도, 마날리에 도착하지 않았다.


구글맵을 보아하니 마날리에 가까워지는 것 같긴 한데, 15시간이 지나도 마날리에 도착하지 않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제각각이었고, 그 대답을 해준 사람들조차 하나둘씩 먼저 내려, 바글바글했던 버스에는 어느덧 5~6명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는 우리가 눈에 띄었는지, 기사님께서 마날리로 가는 버스고, 종착역이 마날리니 편하게 쉬면 된다고 해주셔서 그때야 안심이 되었다.

늦은 저녁

"이거 이름이 뭐예요?"


안심을 하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몇 번 휴게소인지 세는 것도 잊을 때쯤,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메뉴가 그리 탐났다.


부부에게 다가가, 메뉴 이름을 물어보니, 친절하게 '쵸민'이라 알려주고 주문까지 도와줬다.


점심때 허겁지겁 손으로 먹었던 카레와 난이 전부였던 우리에게 쵸민은, 어느덧 사소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비포장 도로에 있는 가게라 볶음 면에 후추인지 흙먼지인지 모를 것이 있었지만, 너무 배고파서 신경 쓸 틈도 없었다.


배를 채우고 다시 버스에 타고,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적응했을 때쯤, 올드 마날리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새벽 5시.


21시간, 약 하루를 버스에서 보냈다.


긴 시간 동안 땀과 먼지 두 가지와 싸웠지만, 다른 버스를 탔으면 느끼지 못했을 '작은 인도'를 느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예상치 못함'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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