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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an 26. 2023

노산이세요.

나이 마흔에 병원 갈 때마다 노산노산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수많은 검사를 받으며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요가도 꾸준히 하고 체중도 변함없이 잘 관리했고 영양제도 잘 챙겨 먹어서 나름 동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젊은 산모들만큼 건강을 자신했기에 자꾸 노산이라고 할 때마다 웃으며 '네~' 대답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부정했다.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었는지 아이를 낳고 나서 알았다.



노산은 겉으로 보이는 신체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세포나이를 말하는 것이라서 아무리 애를 쓴다 한들 나이가 드는 대로 세포도 나이가 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늦은 나이 임신은 여러모로 위험요소가 많아 검사도 많고 힘들다. 자신만만하던 나도 임신하고서부터 건강한 아이만 태어나기를 고대하며 불안한 열 달을 보냈다.


때가 되어 취업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나는 그냥 거스르고 싶었는지 모른다. 잘 다니던 직장도 별안간 때려치우고 훌쩍 일본으로 공부하러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자리 잡고 잘 적응하며 지내던 직장도 혼자 오랜 시간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 그만두었다.


당연히 결혼도 늦어졌고 나이가 되었으니 해야 한다는 결혼에 대한 생각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을 때 평생 같이 살고 싶은 사람과 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결혼이란 걸 한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나 긴 한 건데 얼마나 다행인지. 아차 했으면 아직 엄마는커녕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욜로족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배짱인지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가져도 늦은 판에 남편과 나는 둘만의 시간을 좀 더 갖고 아이가 예뻐 보일 때 아이를 갖자는 생각이 서로 통했다. 이 생각도 그때는 행복한 임신임이 확신에 가까웠지만 아이를 갖고 열 달 후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그리고 얼마나 무식하게 용감했는지 알았다.


혼기를 넘겨 결혼을 한 것, 늦은 나이 아이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한 것 모두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란 걸 지나고 나서 알았다. 그럼에도 조금의 후회도 없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냥 늦게 결혼하고 늦은 출산을 택 할 거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보통 결혼 적령기엔 남자를 보는 시각이 대충 옆에 있는 사람이 적당히 나와 맞고 무난한 사람이면 결혼을 결심했을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늦어지면서 소위 말하는 눈이 높아지는 단계도 있다. 기왕 늦어졌는데 대충 맞는다고 결혼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현실적인 점들을 고려해서 결혼 후의 모습을 그려보며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다 더 늦어지면 두 부류로 나뉜다. 딱 맞는 조건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과 다 필요 없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드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생각.


나이가 들면서 든 생각은 결혼생활이라는 게 힘든 과정도 겪어내야 할 텐데 보통의 사랑으로는 절대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희생해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그나마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노산으로 아이를 낳아 힘든 육아를 하면서도 아이가 예쁘고 내가 온전히 모성애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내 젊음을 아이가 뺏어갔다는 생각보다 젊은 시절에 대한 후회가 없기에 나를 닮은 또 다른 아이가 나를 빤히 보고 쳐다보고 있는 눈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 때문인 것 같다.

아이를 보는 눈에 여유도 생기고 아이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참을성도 생겼다랄까. 



'애들 놔두면 다 알아서 큰다.'

어른들의 말은 이미 다 키워보니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아이는 제때 잘 자란다는 걸 알게 되어하시는 말 같다.


그래도 엄마가 공부해서 자라는 시기에 맞춰  잘 알려줘야 그냥 자라는 게 아니라 바르게 잘 자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지나고 보니 아이 어린 시절 끙끙대던 고민은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어쩌면 정말 그냥 사랑만 주면 다 알아서 크는 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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