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6살 연하 신랑
내가 32살, 남편이 26살이었을 때 우리는 같은 회사에서 만나 사귀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혼기가 꽉 차다 못해 훌쩍 넘어가던 시기였고 남편은 대학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풋풋한 청년이었다. 회사에서는 각별히 친한 오누이쯤으로 우리 둘을 보았다. 지금이야 9살 연하, 띠동갑과도 결혼하는 시대지만 그때는 한두 살 연하와 결혼하는 사람도 드문 시기였다.
오누이처럼 부족한 부분을 챙겨주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그 편안함을 서로 놓치기 싫었는지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혼기가 꽉 찬 서른두 살이었지만 남편은 그야말로 사회 초년생이다. 나는 때가 되었으니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기에 연애를 오래해도 초초함은 그닥 없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결혼에까지 이르지 않았나 싶다. 어느덧 내가 36살이 되고 남편이 29가 되던 해 이 정도로 싸우지 않고 잘 맞는다면 결혼해도 친구처럼 잘 지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혼이란 걸 우리도 하게 되었다.
나이 든 신부
'나이 든 신부'
내가 결혼할 땐 36살이나 되는 신부들을 그리 부르기도 했다. 아니 울 엄마만 그렇게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툭하면
"나이 든 신부라 어려 보이는 드레스로..."
"나이 든 신부니까 앞머리도 내리자..."
"나이 든 신부라 결혼하면 애부터 낳아야..."
그런 말들을 역행하고 싶었던 걸까? 남편과 나는 우리 둘이 실컷 같이 하고 싶은 것 하다가 아기를 갖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매일 붙어 있어도 좋았고 밤마다 영화도 같이 보고 맥주도 한잔하고 좋다 좋아.
둘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둘만 지내자는 용기까지는 못 냈지만 최대한 늦게 아이를 갖자는데 의견이 모아진 거다.
울 엄마는 우리의 그런 뜻도 모르고 내가 나이 들어 아이가 안 생기는 줄 알고 가끔 제주에 내려가 뒹굴거릴 때도 아기 얘기는 입도 뻥긋하지 않으셨다. 나이 든 딸이 상처받고 혹여 스트레스로 더 아기가 생기지 않을까 봐 그러셨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남편이 낮에 회사에서 통화를 하다가
"자기야. 지금 인천공항에 유럽인 가족이 지나가는데 아기가 엄청 귀여워. 눈이 왕방울만 해가지고 아빠한테 안겨서 가는데 나보고 웃는다. 너무 귀여워."
"그래? 외국아기는 피부도 뽀얗고 눈도 엄청 크잖아. 그래서 더 귀여워 보이는 거 아냐?
"그런가? 암튼 아기 엄청 귀엽다."
그렇게 처음으로 아기가 귀엽다고 하더니 동네 음식점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는 걸 보면서도 엄청 귀엽다고 웃음을 지었다.
때가 왔다
아기가 귀여워지다니 내가 아기를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의 출산 계획은 그때 세워졌다.
제주에 내려갔다가 엄마랑 커피를 마시다가
"엄마. 나 박서방이랑 이제 아기 가지려고."
엄마는 눈이 동그래지고서는 눈만 껌뻑껌뻑 거리시며 말을 못 하신다. 나이만 들었지 철없는 내가 아기를 갖는다니 충격이신가? 그래도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슬슬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뭐? 그럼 아직까지 일부러 안 가졌던 거야? 하~"
어처구니없다는 말투로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본인은 몇 년을 노심초사 아기가 안 생겨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 줄 아냐고 화를 내셨다. 아빠와 둘이 잠자리에 들어 서로 천정만 바라보면서 막둥이 딸만 손주 하나 낳으면 우리 할 일을 다 마치는 건데 이러다 당신이나 나나 누구 하나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냐며 한숨만 쉬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축하 아닌 핀잔을 들으며 우리의 출산계획이 시작되었다. 운도 좋다. 나이 서른아홉에 계획하고 두 달 만에 아기천사가 내 안에 들어왔다.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 나이에 힘든 일이었음을 그리고 감사해야 하는 일이었음을 알았다.
배안에 아기가 있는 동안에도 남편과 나는 룰루랄라 철딱서니 없이 영화도 보러 가고(배에 이불 덮어가면서) 홍대도 걸어 다니고 산책도 한 시간씩 하곤 했다. 엄청 걸어 다녀서 그런지 뒤에서 보면 내 앞으로 또 다른 배가 있는지 티가 잘 안 날 정도로 살도 안 찌고 아기도 잘 커갔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이제 슬 긴장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이 있다면 큰 일에도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닐 거야' 라며 의연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육아템들을 사모으며 마음 급한 어린 산모들과는 달리 거즈손수건 20장, 기저귀, 손싸개, 발싸개, 아기블랭킷 정도나 사두고 느긋하게 책이나 읽으며 출산일을 기다렸다. 그마저도 다니는 산부인과 병원 산모강의를 듣거나 임산부 출산강의를 들으러 가서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때도 아기가 어떻게 내 몸에서 빠져나오는지,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기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가 제일 궁금해서 무거운 배를 안고 강의를 많이 들으러 다녔다.
그래봤자 진통만 16시간
임산부요가니 산책이니 다 무의미하게 진통만 16시간 넘게 하다가 수술대에 올랐다. 계획대로 되는 건 나이 먹는 것 빼곤 없네.
그렇게 아기천사를 만났다.
'뽀얀 피부에 왕방울만 한 눈, 오뚝한 코에 까만 머리가 곱게 빗겨진 아기'가 아니라
날 닮아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작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마시마로처럼 가로로 긴 눈을 꼭 감은, 그리고 남편의 머리숱을 닮았다고 내가 우기는 나풀거리는 머리 몇 가닥.
그런 상상밖의 아기 천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