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나이뿐
임신을 하고 막달쯤 되면 옆으로 누워도 바로 누워도 그 어떤 자세도 불편하다. 앉아도 걸어도 누워도...
어서 빨리 이 바구니만 한 배가 쏙 들어가서 힘차게 걷고 싶어 진다.
그렇게 기다리다 아이를 3.2kg으로 출산을 했다. 임신 전부터 출산 직전까지 꾸준히 걷기도 했고 요가도 몇 년간 했으니 출산은 문제없으리라 1도 걱정이 안 됐다.
임신과 출산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
노산이지만 자연분만을 위해 운동도 하고 체중관리도 했다. 하루에 먹어야 할 영양소에 맞춰 냉장고 문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두유, 견과류, 영양제, 과일, 야채, 멸치 몇 마리까지...
자연 분만을 위해 완벽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출산가방도 챙겨두고 출산일을 기다리다 배가 아파오자 진통 간격을 재가며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상상했던 출산은 진통이 오기 시작하면 병원으로 가고 분만실로 가서 한 시간 정도 진통을 하다 자연 분만을 하는 거였다.
진통은 10시간을 넘겼고 이를 하도 악물다 보니 머리골도 흔들리는 것 같고 온몸의 뼈가 다 따로 노는 것 같았다.
퇴근하고 피곤해하는 남편은 말도 참 잘 듣는 남편이라 위층 병실로 가서 자고 있으라는 내 말을 충실히 이행했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나중에 어찌 그리 편안하게 주무셨냐 물었더니 본인도 언제 나올지 모를 아이를 기다렸는데 올라가라는 내 말을 잘 들었을 뿐이라며 가서 쉬고 있으면 적당한 때에 누군가 알려줄 거라 생각했단다. 그렇지. 당신도 처음이지
결국 나는 자연 분만이 아닌 수술을 하고 첫 아이를 만났다.
육아 또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다가도 아주 조그만 소리에 계속 깬다.
전등 켜는 소리, 어쩌다 내려놓는 물건소리, 저 멀리 들리는 화장실 물소리, 싱크대에서 들리는 수저소리...
등에 센서보다 더 심한 귀에 센서가 달린 아이.
모유수유를 하는 나는 잘 먹어야 할 텐데 아이를 재우고 편하게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달그락 소리만 나도 깨는 아이덕에 뭘 챙겨 먹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며칠 계시다 제주로 내려가셨고 퇴근하는 남편만 기다리며 남편이 냉동실 가득 채워 넣은 떡만 우유에 먹으며 낮시간을 보냈다.
눈물이 난다.
이상과 현실사이
아기와 눈 맞추며 놀다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빠가 아기를 번쩍 안아 올리며 행복해하는 하루.
누워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며 하얗고 빳빳하게 마른 천기저귀를 접으며 웃는 엄마의 얼굴.
퇴근 후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오늘 하루 아기가 내게 보내준 신호들을 신나게 얘기하는 나의 모습.
이건 나의 이상이었구나.
귀에 센서가 달린 아이라 아이가 잘 땐 나도 발자국 소리 하나 못 내고 꼼짝 않고 눈뜨고 누워있었다. 뭐라도 먹어야 수유할텐데 하는 생각에 열걸음도 안되는 냉장고를 살얼음 위를 걷듯 한발짝 한발짝 겨우 걸어갔다. 아기가 깨는 것 보다 몇분이 걸려도 그렇게 걸어가는 게 마음이 편했으니까...
냉장고에서 떡 한 봉지를 꺼내 들고 아이에게서 최대한 더 멀리멀리 걸어가 봉지를 가위로 잘랐다. 누가보면 유난이다 싶었는데 나도 이런 내가 한심했다. 그런데 아이가 깨는 게 더 무서웠으니...
화장실 볼일을 보고나서도 물을 바로 내리지 못하고 아이가 깼을 때 다시 가서 내렸다. 절보다 더 조용한 우리 집. 그렇게 나는 아이 귀의 센서를 더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생전 처음 보는 나의 모습과 마주했다. 초여름에 산후조리를 하느라 에어컨바람을 피해 긴팔긴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씻지도 못해 노숙자 냄새가 나는 나를 그래도 기꺼이 안아주었다.
잘 먹지도 못하고 혼자 애와 씨름하느라 지쳐서 점점 웃음기가 사라지는 내가 걱정이 되었겠지.
이게 나의 첫 육아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