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
아기포대기
아기포대기를 친정엄마에게 선물 받고도 요즘은 포대기 안 쓴다고 투덜대던 나이 마흔이 넘은 철없는 엄마. 기어이 육아카페를 뒤지고 뒤져서 '아기힙시트'라는 간편하고 스타일도 사는 물건을 구매했다. 아기를 안고 눈도 마주칠 수 있고 아기등에 땀도 덜 차고 정면을 보게 해 줄 수도 있고...
스타일 사는 힙시트는 남편이 매도 어색하지 않을 거라 주말 외출땐 남편이 주로 매고 다녔다. 앞에 아기를 앉혀서 매는 거라 덕분에 우리의 허리는 뒤로 또 뒤로 활처럼 휘고 있었다
그렇게 지낸 육아시절 덕분인지 남편과 나는 지금까지 허리가 성치 않아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다. 스타일이 뭔 소용인가. 아기를 등짝에 찰싹 붙여 포대기로 업고 키웠으면 업고서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쯤은 낮에도 돌릴 수도 있었을 텐데... 업고 재우면서 아기 이유식도 야채 쫑쫑 썰어가며 쉬엄쉬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유명하다는 외국작가의 육아서를 읽다 보니 아기를 업고 재우면 내 손목은 영영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수면교육이라며 안았다 눕히는 '안눕'의 과정을 반복하며 아기도 울고 나도 울었던 12년 전 그 시절.
아기가 찔끔찔끔 먹다 잠들지 않고 충분히 먹고 자게 하려고 수유시간까지 기록하며 정확한 간격으로 수유했었다.
아기 낳고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는 아기를 재우고 나면 쓰러질 것 같은 저질체력에도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고 하나씩 하나씩 적용해 봤다.
그때는 분명 잘 키우는 줄 알았다. 날 희생해 오로지 내 아이는 행복하게 바르게 잘 키워내겠다는 그 생각 하나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였으니까. 어린 시절 식당을 하는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돌봄을 내 몸 구석구석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내 아이는 잠시도 홀로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생각이 항상 의무감처럼 들었다.
그렇게 의무처럼 철저하게 완벽한 육아를 목표로 하루하루 공부하며 더하고 더했다.
지나고 나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어찌해도 아이는 자연스레 자라는 것 같다. 엄마가 행복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봐주고 아기가 잠들 땐 같이 눈 붙여 자고, 등짝에 업어 흔들거리며 죽을 끓여도 아이와의 시간이 무심히 흐르는 건 아닌데...
아이와 눈 맞추고 놀아줘야 오감이 발달할 것 같았고 내 등짝에 업혀있는 시간이 바보같이 아무 의미 없이 흐르는 시간 같았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읽어주고 손에 쥐어주고 귀로 들려주고.
더하고 더하고 또 더하고...
그러다 지쳐서 정작 웃어줄 수 없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는 분명 완벽한 육아를 한다고 여겨졌던 게 세월이 훌쩍 흘러 지나고 보니 애처롭다.
그리고 내게 해주고 싶은 말.
"애썼다."
나 돌아갈래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온전히 느끼고 즐기고 싶다. 그냥 아이에게 뭘 해줘야지 하지 않고 그냥 손잡고 웃고 안아주고 싶다.
다 빼고 그냥 바라만 보며 웃고 싶다. 지금 다 키워보니 그것만 해도 되겠다 싶네.
물론 그때의 내가 있었으니 지금 행복하게 자란 아이도 있는 것이겠지만 또 그냥 자라는 모습만 지켜보며 키웠다 해도 아이는 또 다른 모습으로 행복하게 자랐을 것 같다.
애쓰는 엄마가 애처로워 '옛다!' 하고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대로 자라준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똑똑하고 책을 많이 읽고 밝고 예의 바른.
그냥 커가는 대로 자유롭게 뒀어도 엄마의 웃는 얼굴과 사랑이면 지금의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자랐을텐데... 그러니 다시 돌아간다면 다 빼고 웃으며 즐기며 보내고 싶다.
이 또한 다 키운 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소리겠지. 하하하
지금 까꿍이들 젖먹이며 재우지 못해 울고 있을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잘 크니 육아카페 전전하며 잠못자며 더하려고 하지 말고 다 빼고 그냥
"웃는 엄마가 되세요."
그래도 아이에게 천천히 즐기며 예쁜 그림책은 꼭 다시 읽어줄 것이다.
이건 지금 와서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 다시 돌아가도 꼭 했을 내가 가장 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