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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un 13. 2023

아침 오픈런 스타벅스 아줌마들

이런들 저런들 하루는 같은 24시간

호텔커피 같은 3500원짜리 커피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어린이집 등록을 하고 첫 등원한 날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은 동네 카페로 달려가 아메리카노를 시켜두고 멍 때리기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첫날은 적응하는 날이라 아이가 언제 엄마를 찾을지 모르니 전화 잘 받고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집으로 갈 생각이 없었고 말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커피를 마시고 싶었기에 카페로 달려갔다.


어색하다.

쉼 없이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고 닦아주고 물 떠다 주어야 하는 그녀가 내 곁에 없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고 한 시간째 커피를 들이켤 때 빼고는 입술을 뗄 일이 없다.

어린이집에서도 전화가 없다. 


네 살까진 내가 끼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아기를 가질 때부터 했었다. 그래서 3살 겨울까지 늘 오전 산책, 점심 먹고 오후 놀이터, 낮잠도 잘 안 자지 않으니 하루 종일 동네를 돌고 또 돌았다. 어린이집 다니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또래 아이들이 네시즈음 노란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린다. 선생님과 배꼽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동경의 눈빛으로 아이는 말했다.

"제인이도~ 제인이도~"


이제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우는 아이 억지로 어린이집차에 태워보내며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될 시간. 엄마품보다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하고 싶어 지는 때.


"조금만 더 있다가 봄 되면 제인이도 가방 메고 버스 타고 선생님이랑 친구 만나러 가자~"


그래서 그런 건가? 처음 어린이집에 데리고 간 날 거침없이 들어가 친구들이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장난감을 골랐다. 선생님이 웃으며 괜찮을 것 같다고 연락을 드릴 테니 대기하시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연락이 없다.



아이와 껌딱지처럼 붙어서 24시간을 보내면서 언젠가 어린이집을 보내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란 게 고작 카페에서 혼자 커피 마시기라니. 3500원짜리 커피를 호텔 커피 마시듯 음미하며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스타벅스 안 동네 아줌마들


12년이 지난 지금은 아이를 학교 보내놓고 스타벅스에 앉아 이 글을 쓰기도 하고 책도 읽고 강의준비도 한다. 목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머리 감을 시간도 없이 지겹도록 캡모자만 눌러쓰고 지내던 10년 전 내가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그때는 이런 시절이 올 것이라는 상상도 못 하고 우울하던 시절이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육아로 자존감 바닥에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오늘 아침에 노트북과 책을 들고 아파트 길 건너 스타벅스로 가는 길.

두 명의 아줌마가 나보다 열 걸음 앞서 걸어가고 있다. 예전에 아이가 1학년이었을 때 놀이터에서 한두 번 마주치던 엄마다.


아침 9시 이전에 오픈하는 카페는 우리 동네에 스타벅스밖에 없다. 예상대로 둘은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나는데이어 들어가 안쪽 전기코드가 있는 자리에 앉아 앱으로 여름 시즌 음료를 주문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반이 넘게 마신 음료컵을 앞에 두고 열띤 회의를 하는 걸 보니 오픈런을 했다보다.


아이 학원얘기, 단원평가 본 얘기, 영어 레벨 이야기, 반 친구들 이야기, 담임선생님 이야기, 밥이야기... 

대화에 쉼표가 없다.

한때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쓰고 독서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나는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던 때를 떠올리면 부끄럽다. 그러한들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로 밥을 벌어먹는 것도 아니고 내 일상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깨에 들어갔던 힘은 자연스레 내려왔다. 그냥 내가 좋아서 자처한 하루일과일 뿐.


들려오는 아줌마들 대화에 마치 함께 앉아 이야기하듯 


'초등 고학년쯤 되면 아이는 스스로 커가는 건데... 엄마가 세팅한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는 아이 얼굴을 한 번쯤 바라봐 줘요.'


속으로만 조용히 말을 던져본다.


또 마음속 오지랖이다.

그런들 육아에 답이 어디 있나.

50이 넘게 살아오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인생에 답도 모르겠는데 지금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서 어떤 인생을 살지 어찌 알겠나.

저기 오픈런해서 열심히 정보공유하며 아이를 악착같이 키운 엄마들이 맞는지

나처럼 크게 테두리만 그어놓고 자유롭게 키우면서 '잘 키우고 있나...' 고민하는 내가 맞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도 확실한 것 하나

그런데 확실한 답은 하나 있다. 행복한 아이!



아이가 일요일이 되면 학교 가고 싶다고 한다. 친구들이랑 놀고 싶고 선생님도 보고 싶다고...

집에서 하루종일 가족과 보드게임하고 뒹굴거리며 놀아도 학교 가는 게 행복한 아이. 학교 공부가 싫을 만도 한데 그것 조차 친구들이랑 선생님과 함께라면 극복이 되나 보다. 방과 후 학원가는 친구들이 학원 가기 전 잠깐씩 비는 시간에 함께 수다 떨 생각부터 하는 아이다.


실컷 놀고 들어와 하루종일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 시간 내내 조잘대는 아이를 보면 나도 웃음이 난다. 웃는 이 아이 얼굴이 정답이지 않겠나.


오픈런했던 아줌마들이 한두 팀 씩 사라진다. 11시면 브런치카페가 오픈할 시간이다. 학교 앞 브런치카페 거리에는 11시 반만 되어도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나도, 즐거운 대화를 하며 아이 걱정을 하는 엄마들도 결국 하루가 24시간인 것은 똑같다. 어떤 시간이 황금시간이었는지는 본인만 느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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