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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un 16. 2023

제주의 따뜻한 오지랖 – 검정 봉다리와 용돈 문화

제발 그냥 인사만 해요. 삼춘!

출처 불명 검정 봉다리

태어나 스무 살 초반까지 제주에서 살았다. 나는 그때 결혼해서 절대 제주에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집을 나서면 집 앞 지나가는 어르신들은 거의 엄마 아빠가 아시는 분들이라 누굴 보고 인사를 하고, 누구는 그냥 지나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누구든 그냥 얼굴 마주치면 무조건 인사를 한다.


그럼 나를 알고 계시는 분들은


"족은똘 어디감샤? 아방은 집에 이시냐?

(작은딸 어디가? 아버지는 집에 계시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안부차, 확인차 건네는 말씀이다.


행여 나를 모르는 분이라면


"누게고?"  (누구?)


"아~~ 예. 저~~ 기 퍼런대문 2층집마씸." (파란 대문 2층집이에요)


"에~~ 착하다. oo 네 집 똘이구나게. 헌저가라" (아이고 착하다. OO집 딸이구나. 얼른 가라)




이런 생활을 거의 스무 살 중반까지 했다. 집을 나서면 일단 그날 두세 분 정도는 지인을 만난다. 당연히 제주시내 번화가를 다니다 보면 친구도 만나고 선배도 만나고 뭐... 다 만난다.


집 밖뿐만이 아니다. 회사 쉬는 날 혼자 벌러덩 거실에 드러누워서  뒹굴 거리다 보면 초인종이 울린다. 인터폰으로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동네분이시라서 그냥 바로 대문 앞까지 슬리퍼 신고 냅다 뛴다.


급히 대문을 열고 나가보면 엄마나 아빠 지인분 중 한 분이 검정 봉지 또는 귤을 가득 넣은 컨테이너를 들고 서 계신다.


"아이고~ 삼춘. 어머니 안계신디마씸" (에구 삼촌. 어머니 안 계시는데요.)


"어디 간?"(어디갔어?)


"볼일 있덴 나가셔신디..." (볼일 있어서 나가셨는데...)


"이거 부엌에 갖다불라" (이거 부엌에 갖다 놔라)- 결코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명령어가 아님.


"아~~ 예. 고맙수다예. 커피라도 한잔 탕 드리카마씸?" (감사합니다. 커피라도 한잔 타 드릴까요?)


"됐져. 밭이서 집이가당 들련. 강 씻고 해사주" (괜찮아. 밭에서 집에 가다 들렀어. 가서 씻고 해야지)


"고맙수다예 삼춘. 어머니신디 잘 골으쿠다. 들어갑서예" (감사합니다. 삼촌 <제주도는 여자나 남자나 어른들은 보통 다 삼촌> 어머니께 잘 말씀드릴게요. 들어가세요)


엄마 아빠 지인들은 전화고 연락이고 필요 없다. 그냥 가며 오며 들러서 마늘, 양파, 무, 귤 심지어는 드시려고 사가시던  떡이며 빵까지도 주고 가신다.


그러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 허탕 치면 어떡하냐고? 걱정 따위는 필요 없다. 그냥 대문 앞에 놓고 가신다.


외출해서 들어가려고 대문 앞에 서면 검정봉지가 두세 개 있을 때도 있다.




누가 놓고 갔는지도 모르는 식재료는 일단 그날 저녁 식탁에 오른다. 잘 먹고 있으면 누군가 전화가 걸려온다.

낮에 들렀는데 없어서 놓고 가셨다고... 그제야 놓고 간 주인을 찾고 먹으면서 한참을 출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어릴 때는 이렇게 내 집이 네 집이고 남의 집도 내 집인 게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른 공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주문화 탓에 어른을 대하는 능숙함은 그때 키워진 듯해서 좋긴 하다. 지금은 운동하는 곳에서 나이 지긋한 어른들과도 곧잘 어울리고 아파트 청소해 주시는 분과도 간식 나누며 잘 지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아기와 함께 제주 가면 비행기티켓이 공짜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친정인 제주에 자주 내려간다. 유채꽃이 피는 봄에도 여름휴가에도 겨울에도 명절에도 수시로 자주 내려간다.


그런데 아~~ 주 불편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어린아이를 보면 돈을 쥐어주는 제주문화 때문이다.


아이를 데리고 가서 쉬고 있으면 엄마 지인 동네 분들이 가며 오며 들르시는데 그때마다


"아이고. 아이 영 커부런? 늙은 어멍 고생해신게. 마! 애기주라" (에구. 아이가 이렇게 컸어? 나이 든 엄마가 고생했네. 여기! 아기 줘)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짜리를 주시는 분도 계시고 우연히 들른 터라 현금이 없노라고 푸른 배춧잎 만 원짜리 세 개를 꼬깃꼬깃 꺼내어 주시는 분도 계신다.


이게 처음 한번 뵈었을 때는 감사하고 웃으며 받았는데 가는 횟수도 늘고 그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넙죽 돈을 받자니 죄송해서 죽겠다.


심지어는 오며 가며 들르셨던 분 말고도 일부러 찾아오셔서는


" OO어멍이 이 집 족은똘 애기돌앙 와서랜핸게. 병원갔당 집이 가멍 들런. 마! 애기 주라!"

(OO엄마가 이 집 작은딸이 애기 데리고 왔다고 하길래. 병원 갔다가 집에 가다가 들렀어. 여기! 아기 줘!)


나는 감사인사를 서너 번을 하고 엄마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다 못해 화난 듯한 얼굴로


"아이고 안 들러도 되주. 뭣허랜 들렁 줨서게. 맨날 받앙 이거 어떵 갚을거라게." (아이고 안 들러도 되는데. 뭣하러 들러서 주는 거야? 매번 받아서 어찌 갚으라고)


신랑은 처음에 엄마와 지인분이 싸우시는 줄 알았다고 한다. 제주말투가 그렇다. 고마운 표현도, 안타까운 표현도, 좋아하는 표현도 화내듯 크고 격정적이다.


엄마와 내가 둘이 인사며 안절부절 몸을 숙이며 난처해하는 사이 아기는 5만 원짜리 돈을 손에 쥐고 입으로 가져가며 침을 질질 흘린다.


그뿐인가 친구부부를 만나도 오랜만이라고 아이에게 돈을 주고 동창모임에 (다들 결혼을 제때 해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임) 나만 어린 아기를 떼어 놓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가면 여러 친구들이 돈 만원씩 손에 쥐어주고...


하... 정말 어쩔 수 없어 아기를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 그런 건데 매번 이러면 마치 아기 용돈 받으러 데리고 나간 기분이다. 나이 든 아기 엄마하기 싫다.



제주에서 돌아올 때 내 지갑 안에는 비행기티켓을 끊고도 남을 돈이 들어있다.


서울에서 아기 데리고 제주사람을 만나면

남편이 깜짝 놀랐던 적도 있다. 남편 회사 동료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나도 두어 번 만나서 식사를 했던 가까운 분이라 유치원생 아이와 함께 결혼식장에 갔다. 남편 회사에 제주가 고향인 분이 계셔서 제주 어디가 고향인지, 고등학교는 어디인지 서로 물으며 인사를 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헤어지면서 회사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제주도가 고향인 회사동료분이 황급히 5만원짜릴 아이에게 주며


"까까 사 먹어~^^"


'어... 어...' 하며 당황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돈을 받고 남편이 어리둥절해하자 내가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1층에 내렸다.


남편이 서울에서 제주사람에게 아기 용돈을 받자 진짜 이런 제주 문화가 있긴 하구나 하며 엄청 웃었다. 그런 게 제주 사람들이다.


육지에서 제주살이를 작정하고 떠났다가  텃세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다시 육지로 올라가곤 한다. 제주는 옛날부터 외지인들이 와서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이 많았고 큰 사건 없이 지내던 섬에 4.3 사건이며 이런저런 외지인들과 연관된 일들을 겪으면서 경계하는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오래 정 붙이고 지내다 보면 옆집에서 양파가 건네오고, 건넛집에서 귤이 끝없이 오고 갈 것이다.


이제는 매번 몰래 제주에 가야 하나 고민한다. 감사한 마음에 엄마 지인분들 화장품이라도 사서 들고 가면 손사래를 치며(거의 화난 듯이)


"무시것터레 이딴거 상 들렁 다념서. 됐져. 그냥 왕 어멍 얼굴만 봐랭 가도 좋주게 족은똘 오는거 막 기다리는디..." (뭣하러 이런 거 사 들고 다니냐? 됐어~ 그냥 와서 어머니 얼굴만 보고 가도 좋지. 작은딸 오는 거 얼마나 기다리는데...)


엄마가 자식들 다 육지로 보내놓고 제주에 사셔도 외롭지 않은 건 이렇게 하루에도 두세 번씩 들고나는 의지되는 동네 친구분들이 계셔서다.


겅해도 이제 아기영 제발 얼굴봥 인사만 허게마씸. 삼춘!!

(그래도 이제 아기랑 제발 얼굴 보고 인사만 해요.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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