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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Oct 31. 2023

소인국에서의 강의

어린이집 물건은 모두 작다.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면 집으로 바로 들어갈 수 없는 날씨다.

나도 아이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보내던 시기에는 요즘처럼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에는 노란 유치원버스에서 내린 아이를 바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했다. 얼마 있지 않아 금방 쌀쌀해져서 그네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손이 시리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 엉덩이가 차가워지는 날씨가 오기 때문이다.


수강생에서 강사로


일산에서 하남시, 마천, 강변으로 어린이집 부모교육 특강을 다녀왔다. 정말 멀다.

그래도 아이를 등원시키고 커피 한잔 하며 늘어지고 싶을 텐데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급히 세수하고 달려올 엄마들을 생각하면 더 먼 곳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나도 그랬으니까.

육아가 너무 힘들어 방법을 찾다 찾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육아서를 읽다 보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제일 쉬운 육아 같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책을 읽어주다 보니 힘든 점도 생기고 궁금한 점도 생기고 이유가 알고 싶어질 즈음 부모교육을 한다고 하면 어지럽혀진 집안 꼴을 뒤로하고 무작정 달려갔었다.


교육을 받고 온 날은 아이도 예뻐 보이고 육아도 안 힘들고 이대로 쭉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소인국에 도착했다.


어린이 집에 도착하고 보니 아이 어릴 적 등하원 시키며 보았던 어린이집 실내가 떠올라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소인국에 온 것 같다.



아이들 신발이 정리된 신발장은 어른 신발 한 짝이 들어갈만한 공간에 두 짝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여자아이들은 블링블링 핑크색에 큐빅이 쪼르륵 박힌 공주구두가, 남자아이들은 유행하는 로봇이 그려진 운동화가 촘촘하게 이름표를 달고 정리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과 만들기 해놓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른들이 오르기엔 촘촘하고 낮은 계단을 총총총 걸어 올라갔다.


어떤 어린이집은 넓은 강당이 있기도 하지만 공간이 협소한 국공립 어린이집도 많다. 




그곳에 작은 아이들 의자가 비치해 강연장으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몸집이 커질 만큼 커진 엄마들의 엉덩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아기의자지만 1시간 반은 거뜬히 버텨주었다.




화장실은 또 어떤지.

세면대는 허리를 한참 숙여야 손을 씻고 거울을 볼 수 있을 만큼 낮다. 똑바로 서면 가슴아래부터 볼 수 있다.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화장실문에도 저절로 웃음이 나고 세면대옆 작은 수건에 이름이 오버록이 되어 걸려있다. 


수건을 고르고 골라 이름을 오버록을 주문하고 칫솔이며 양치컵에 이름을 일일이 다 붙이고 보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 순간 좋기도 하면서 가슴 한편엔 힘들었던 그 기억이 동시에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상기된 얼굴로 급하게 들어와 자리에 앉는 엄마들을 보며 아침시간 얼마나 정신없이 보내고 오는지 알 수 있다. 아이 등원시키고 세수라도 하고 옷이라도 챙겨 입고 나오려면 많이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아이 교육을 위해서 하나라도 귀담아들으면 아이 키우는데 도움이 될까 하고 앉아 있는 엄마들이다.

그런 마음을 나도 겪었으니까 더 많이 더 친절하게 이 시간이 아깝지 않게 보답해 드리고 싶었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 겪었던 웃지 못할 경험담에 모두들 같은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한다. 지나고 나서 후회되는 점들을 이야기하면 낮은 한숨으로 본인들도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그렇게 엄마도 커가고 있다.


긴 시간 웃고 떠들며 강의가 끝나도 엄마들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둘째와 터울이 많아서 책 읽어주기가 힘든 엄마들의 고민부터 만화책만 읽어서 고민인 엄마, 첫째 아이는 책 읽어주기가 되었는데 셋째는 힘들다는 엄마까지 고민들도 다양하다.


가지고 오신 책에 사인도 해드리고 초등입학을 앞둔 7세 엄마들에게 깜짝 선물로 준비해 간 책에도 사인을 해드렸다. 이름석자 쓰는 게 뭐라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배시시 웃는 엄마들을 보니 내가 다 어쩔 줄 모르겠다.



참 다행이다.


아주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힘든 육아를 이해해 주고 궁금한 걸 조금은 해소해 줄 수 있는 경험을 한 사람이어서.

한참 세상에서 자기 능력을 뽐내고 있어야 할 젊은 나이에 육아라는 숙제를 해나가고 있는 엄마들의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 나이 든 엄마여서.


작은 소인국 같은 어린이집 강의를 마치고 뒤돌아 나오니 애 아이 어린 시절로 잠시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집에 돌아오니 나도 강의를 들었던 예전 그날처럼 학교 끝나고 돌아온 아이를 보니 너무 예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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