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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Jun 07. 2024

30대 _ 시작

시작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고, 상황과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만 하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때마다 나는 적절한 핑계를 대며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러니 시작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무모함이 필요하다. 


나에게 시작은 새로움을 뜻하며, 이는 곧 익숙함과 편안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무언가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지는 이유는 힘들여 이루어 놓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일 수 있다. 나도 최근 새로운 시작이 두려워지는 것을 느끼는 걸 보니 그런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함과 어색함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이 많아진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지 혹시 변화가 두려워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가두려고 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지금이 그때였고 운이 좋게도 나에게 마침 이 시기에 새로운 곳으로 여행의 기회가 왔다.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사촌동생과 함께 싱가포르로 떠나게 된 것이다. 


이모들과는 명절이나 한 번씩 보기 때문에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는 아니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어른들과 가는 해외여행이라 결코 예쁘고 아름답기만 한 여행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깨끗한 나라로 가는 패키지여행이니, 내가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적당한 짐꾼의 역할과 사진기사 그리고 길 찾기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긴 했다.) 또한, 이번 여행은 나에게도 새로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 여행 후에는 정말 다녀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올해 환갑이며 함께 간 세분의 이모들은 40대에서 50대 사이이다. 사촌동생은 이제 막 졸업한 20대이고 나는 서른 직장인이다. 모두가 싱가포르는 처음 가보는 여행지였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모두 저마다 여행을 통해 얻어가고 싶었던 혹은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을 터이다. 예를 들면, 나는 일상의 새로움을 얻고자 했고 사촌 동생은 인생사진을 건지고자 했으며, 엄마는 자매들과 떠나는 여행 그 자체로 만족했다.   


과연 여행 이후에 각자가 원했던 부분이 충족되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촘촘한 일정이 힘들다면서도 내내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었던 이모들과 엄마의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싱가포르의 멋진 자연과 건축물들 가이드의 설명 하나하나에 감탄과 놀라움을 숨기지 않는 소녀 같은 모습들을 보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지면서 뭔가 몽글몽글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무언가 마음속에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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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솔직히 여행을 가는 것 자체로 부담감이 있었고, 여행의 중간중간 힘들었던 부분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가면 느낄 수 없는 책임감과 감정들 그리고 엄마와의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었던 너무나 감사한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 나를 데려다 놓으며, 실제 그곳의 온도와 바람 그리고 분위기를 직접 온몸으로 느낄 있었던 것이 너무나 좋았다. 문화나 환경은 달라도 결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이를 공통점으로 하는 일정한 패턴을 발견해 보기도 하며 나는 나름대로 나만의 여행을 즐겼다.

 

나는 아직 익숙함과 편안함이 주는 안정감에 나를 맡기고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기에는 너무나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아깝다는 표현은 결코 안정감이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안정감이 일정 부분 갖추어져 시작이 주는 새로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아직은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서른의 나에게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 너는 충분히 잘해왔고, 잘하고 있으니 너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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