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른다.
흐른다는 것은 액체 물질을 주어로 사용하며 움직임을 뜻하는 동사다. 멈추지 않고 한 뱡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낸다. 붙잡을 수 없고, 앞으로 지나가버리는 시간의 특징을 빛대어 함께 표현한 것이다. 이 말을 따른다면 내가 태어나 흘려보낸 시간은 어느덧 30년 남짓이 되었다. 여전히 가혹하리만큼 잔인한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 앞에 서있다.
다양한 만남과 헤어짐 직접 경험과 또 책과 미디어를 통한 간접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나'라는 존재는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애초에 정답은 없다. 어쩌면 30년 넘게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을 나는 그 자체로 고통과 슬픔 그리고 거짓된 깨달음에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여러 가지 관계에 따른 사회적 문화적 위치로 나를 정의해 볼 수 있다. 누구의 자녀, 어디 소속의 직원 누구의 친구 혹은 선배 동료 등등. 하지만 이 것이 진정 나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유의 이름 그 자체의 나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 따라 기대되는 행동과 말을 하면서 피상적인 이야기가 주고받는다. 지금까지는 그게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서른이 되어보니 그것이 정말 나인지 조금 헷갈린다.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라지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친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을 다니고 물건을 사고 사회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존재론적 고민에 허무함과 고독함에 외로운 이유일 것이다.
앞으로의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지 생각해 본다.
상황은 해석에 따라 달라지고, 이를 바라보는 창은 수천수만 가지가 넘는다. 결국 성공에 나의 기준과 정의를 세우고 이뤄가는 것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일이라는 이유이다. 그렇게 남들이 정한 성공의 기준에 맞추고자 시간을 낭비하기엔 인생이 아깝다. 나는 이를 진심으로 깨닫기는데 30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이제는 행동으로 움직여봐야 할 때이다. 틀에서 벗어난다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가오는 2025년도에는 무엇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갈지 모르겠다. 그저 분명한 건 때가 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