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와 떠나는 해외출장 필살기 (12)
<너무 가깝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게>
당신의 상사가 진정으로 본받을 만한 사람이고 팔로우하고 싶은 그런 선배라면 그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부하들의 말라버린 수건을 한번 더 짜내고, 아이디어와 실적을 가로채 자기 것으로 포장하는 상사도 왕왕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떠한 캐릭터이건 간에, 수많은 경쟁과, 사내정치, 권력투쟁, 성과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올랐고, 그는 이미 상사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교수의 "Asshole Survival Guide"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서는 "참아주는 건 그만하겠습니다"로 번역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장 내의 지긋지긋한 인간(asshole)'을 주로 상사로 타겟팅한 서튼교수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예시한다. 인신공격, 프라이버시 침범, 언어적인 협박, 냉소, 관대한 척하면서 뒤에서 깎아내리기, 불필요한 신체접촉 등 다양하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직장 내 괴롭힘과 상사는 스트레스의 1순위인 것 같다. 특히나 우리의 직장문화에서는 "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혼자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사실 별로 없는 것이다.
나는 상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한 태도가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본다. "불가근(너무 가깝지 않게) 불가원(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게)"스럽게 상사와 나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 말이다. 저 카툰에서도 서튼 교수는 상사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상사가 무조건 asshole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해 없기를!) 나는 상사는 난로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추운 겨울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으면 온기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데어버린다.
상사에게 먼저 다가서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이미 겉과 속이 다른 상사 편에서 얘기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까불면 곤란하다는 점이다. 방만 따로 쓰지 단둘이 깨어있는 며칠을 오롯이 함께 지내는데 친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상사도 밖에 나가면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광에 스윽 풀어진다. 또 아무래도 준비는 내가 다하고 본인은 몸만 오다 보니 부하직원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상사가 출장 중 발표라도 하면 긴장 상태가 이어지지만, 중요한 공식 일정이 무사히 끝나고 나면 상사도 나도 홀가분 해진다. 저녁에 술도 마시며 때로는 상사의 개인적인 성장기, 가족 이야기, 자식 이야기, 고생한 경험,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자기 자랑 등 온갖 종류의 라떼를 듣는다. 귀가 따갑기도 하지만, 출장이기에 나만이 알게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같이 떠들고 맞장구치고, 자신의 경험과 솔직한 생각도 나누고 다 좋다. 그 순간만큼은 즐거운 저녁을 보내자.
그러나 다음날이나 출장을 다녀와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조심해야 한다. 친밀감을 빌미로 방자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상사는 나의 가족도 친구도 아니고 직장이라는 현실의 인간관계일 뿐이다. 아침이 되면 다시 반듯한 부하직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다녀와서는 출장 중의 모든 일정과 대화는 함구하는 것이 좋다.
출장 후 회식자리에서 안주거리를 내놓으라는 동료들의 압력이 있게 마련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동료들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이를 함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누가 들어도 상사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 (알고 보니 이렇게 훌륭한 분이더라)는 본인도 전파하고 싶어 할 테니 얘기해도 된다. 그런데 이런 스토리는 안주거리가 안된다. 괜스레 그렇게 출세하고 싶냐는 핀잔을 듣기 쉽다. 그래서 난 모든 요청에 "나중에 따로 얘기해 줄게"하면서 피한다. 물론 나중에 따로 얘기해주는 적은 없다.
<출국 당일 현지 공항 도착>
일부 후진국의 경우 공항 출입국 프로세스가 많이 늦거나, 교통체증이 심각하게 유발되거나 할 수 있다. 호텔 컨시어지 등을 통해 몇 시에 출발하는 게 좋을지 전날 물어본다.
<PP카드가 필요한 것인지>
라운지 무료입장이 가능한 Priority Pass 일명 PP카드는 경유 편에서 위력이 크지만, 직항 시에도 현지 공항에서 유용하게 활용된다. 출장 갈 일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면, PP와 연계된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기 바란다. 혹자는 쓸 수 있는 라운지가 별로 없다고 하던데, 필자의 경험으로는 PP앱을 다운 받아서 미리 어느 라운지로 갈지 생각해 놓고 움직이면 이용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가 위치한 터미널이 출국 편 게이트와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환승시간 또는 대기 시간이 긴 경우 일부러라도 PP라운지에 찾아가서 앉아 있는 것이 덜 피로하다고 본다.
가끔 항공사에서는 상사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라운지 이용권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한번 물어보도록 한다. 무료면 앗싸! 아니면 PP.
<세관 심사 시>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간혹 세관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 한번 지적을 당했는데, 선물 받고 어쩌고 하다 보니 주류 1병 이상 반입 금지 원칙을 어기게 되었다. 겁먹지 말고, 세관원에게 적당히 물건 가액을 얘기한 후 세금을 그 자리에서 내고 물건을 챙겨 나오면 된다. 생각보다 신속히 처리된다. 명품 쇼핑으로 걸리는 경우는 당연히 없어야 하겠다.
<회사 출근과 출장 보고서>
중요한 회의였다면 출근 첫날 아침 일찍 회의 결과를 1장으로 정리하여 아침 일찍 상사에게 드린다. 상사도 자신의 상사에게 성공적인 출장이었다는 점을 세일즈 하고 싶어 할 수 있다. 피곤하더라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일찍 나와서 작업하도록 하자. 출장 보고서는 가급적 빨리 결재받는 것이 좋다는 점은 이미 앞선 글에서 전했다.
TIP: 복귀 후 출근 첫날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길 권한다. 시차 적응도 안되어 있고, 잠도 부족한데 평소보다 일찍 나가라니?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더구나 임원들은 조찬모임도 많고 경영진 미팅 등으로 아침 일찍 출근하지 않는가? 그보다도 더 일찍 나오라고? 내가 권유하는 것은 딱 1장짜리 메모다. 1장에 출장 성과를 간단히 정리하고 상사의 출근과 동시에 내밀어 보자. 장담한다. 효과 만점일 것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출장 결과를 현지 호텔에서 노트북으로 밤새 정리한 후 귀국 편 비행기 안에서 상사에게 드리는 회사가 있다. 실화냐고? 그렇다. (나는 아니다. 오해 없기를) 당신이 그런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않음에 감사하며 일찍 나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