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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파파야 향기 Mar 30. 2022

당신만의 querencia(께렌시아)가 있습니까?

querencia : 스페인어로 피난처·안식처


스페인어를 공부하다가 우연히 querencia(께렌시아)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querencia는 스페인어로 피난처·안식처라는 뜻이다. 원래는 투우 경기에서 투우사와의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숨어 숨을 고르거나 쉬는 영역을 말한다. 이 장소는 경기장 안에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투우 경기 중에 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곳을 말하며 투우사는 querencia 안에 있는 소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투우장의 소가 querencia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것처럼 누구나 인생을 열심히 살다가 숨을 수 있는 자신만의 querencia가 필요할 때가 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거나 위로해 줄 수 있는 장소, 즉 나만의 공간도 querencia이지만 장소가 아닌 어떤 일들로 나만의 querencia를 만들 수 있다.


나만의 querencia는 


#첫째, 제주다. 

제주는 비가 와도 좋고 햇빛이 나도 좋은 사시사철 나에게 행복을 주는 곳이다. 언제 와도 넉넉하게 나를 품어주고 위로해 주는 나만의 querencia다. 초록 초록한 제주 땅을 한 걸음 한 걸음 걷을 때도 위로를 받고, 푸르디푸른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볼 때도 토닥토닥 나를 위로해 준다. 그리고 깊고 험한 산이 아니라 누구나 올라와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탁 트이게 해주는 오름이 있어 좋다. 오름은 마치 어린아이가 잘 볼 수 있게 살짝 들어 올려 주는 아빠의 목마처럼 지금 처한 현실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나의 세상을 다시 한번 사랑스럽게 내려다볼 수 있게 해 주는 곳이다. 언제나 제주는 나에게 '어서 오라고, 잘 쉬었다가 가라고, 그리고 언제든 힘들면 오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여건만 되면 무조건 제주도로 간다.


#둘째, 드라마나 영화다. 

나는 드라마에서 다양한 인생을 접하고 삶의 태도나 지혜를 얻을 때가 많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나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준 드라마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 드라마들은 내가 그 속에 빠져서 잠시 해피 또는 회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들에 감정 이입하며 간접 경험을 하게 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진 드라마들은 나에게 삶의 지혜도 주고 감정 해소도 하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넋 놓고 드라마 속 삶들을 들여다보면서 나의 문제들을 다소 객관화시켜 보기도 한다. 물론 나의 이런 도피처 같은 드라마 몰아보기를 주변인들은 시간 낭비로 보거나 한심하게 볼 때도 있지만 나에게는 나의 생각을 멈추고 쉴 수 있는 나만의 querencia다.


#셋째, 서점이다. 

나는 서점에 가면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내리는 정보들이 덩어리 덩어리로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려는 것 같아 흥분된다. 서점에 들어서면 많은 사람들이 서거나 앉아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헤매며 노는 조용한 놀이터 같다. 한참을 놀다가 다리가 아프면 바닥에 털석 주저앉아도 좋다.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 서점에서 흘려 나오는 음악 소리 그리고 주변의 다양한 소음까지도 모두가 하나의 배경이다.


나만의 장소 querencia로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 같다. 나를 위한 삶을 먼저 살다 보니 때로는 이기적이고 무계획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살기로 했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서 성취하는 것도 보람 있겠지만 내가 이렇게 나를 보듬어 주고 토닥이며 살기로 했다. 그게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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