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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없는 세상 02화

by 이현성

수도에 눈이 내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사람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꼈다. 인도에서 여자가 발이 아픈지 팔을 휘적거리면서 걸었다. 이곳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겠다. 너는 그렇게 말하였다. 강물에 몸을 맡기고 물살에 떠밀려가듯이 너는 그렇게 혼자서 먼 길을 떠났다. 그동안의 전화는 없었다. 정말로 혼자임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과 같은 이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너는 지켰다. 만나서 즐겁다는 것은 결국 내심 다른 이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는 뜻이라고 했던가. 내가 아는 한 너는 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다.


네가 그러했고 너의 말이 그러했고 나 또한 그러했듯 강렬한 자극 속에서 살았다.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천천히, 그리고 오롯이 차오르는 만족감을 즐기는 것. 그러한 일이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 어떤 일을 즐기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 같다. 너 또한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마 길거리 벤치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을까. 그건 어떤 즐거움인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을 향해 닳고 닳아지는 것이다. 비단 남녀의 문제뿐만 아니라, 관계는 그러한 원리로 작동된다. 너는 닳는 일에 잠깐 지쳤던 모양이다. 줄어드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닐 테지만, 아직은 내 말이 너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조금 더 기다린다. 닳지 않으면 날카로워서 다가가기 쉽지 않다.


연락 없는 너는 가끔씩 내 기억 속에서 울려 퍼진다. 오늘 밤 내가 사는 곳에선 눈이 아닌 별이 나린다. 다른 세상에서 너는 혼자 사랑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곳으로 나도 떠나야 할까. 나는 좀처럼 판단할 수 없다. 판단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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