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분명 기회는 우리 동네 곳곳을 어슬렁거리지만 모든 집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아예 우리와 사는 동네가 다른 사람들은 제외해야 한다). 기회가 나의 집에만 찾아오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슬퍼하고 있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길 바란다.
먼저, 기회라는 녀석은 매우 굶주렸지만 취향까지 있는 살짝 까다로운 손님이다. 배가 고프다고 눈에 보이는 모든 집을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보면 쉽다. 내가 배고픈 손님이라면 어느 집의 문을 두드릴까? 찾아갔는데 먹을 것이 없는 집은 당연히 헛걸음일 테니 패스! 대개 이런 집들의 주인들은 자신 있게 이를 다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문지기처럼 문 앞에 기대서서 기회가 지나가기만 하면 카드 판매원처럼 기회를 잡아 끌어당긴다. 기회는 어쩔 줄 모르고 얼굴만 일그러뜨리는 일을 여러 차례 겪은 후로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난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기회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여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당신은 분명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소문을 믿고, 기회가 찾아갔을 때 출구를 막고 서서 “나가지마, 나가지마. 내가 너를 위해 다 준비했어. 다 먹고 나가.”라고 외치며 초조한 마음에 손바닥이 다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기회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쉰다. 맛이 없을 거라는 것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이미 아는 것이다. 당신은 기회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그 많은 음식을 정신없이 준비하며 하나하나 잔뜩 힘을 줬고, 그러다 보니 이미 찬 음식도 반 이상이다. 무엇보다 수고는 들어있지만 기쁨이 들어있지 않다. 기회는 기쁨을 가장 좋아하는 데 말이다 (기회가 왜 기쁨을 좋아하는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기회는 서둘러 그 자리를 뜨고 싶어 한다. 설령 당신이 차린 그 음식을 다 먹었더라도 기회는 분명 배탈이 날 것이다. 토해낼지도 모른다. 우리도 한 번 배탈이 난 식당은 다시 찾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기회는 고통을 짜내며 완벽하게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 온갖 것을 준비한 이들을 잘 찾아가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회는 어떤 집에 고민도 없이 달려 들어갈까? 기회의 엄마의 이름은 기쁨이다. 기회는 늘 엄마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기회는 빼꼼하게 열린 문틈 사이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집을 찾아 문을 두드린다. 결코 후회로 무너져가거나 불평, 불만의 곰팡이가 피어 있거나, 변명으로 지은 상상의 이층 집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안달복달 초조해하는 집주인도 부담스러워 찾아가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그 자신을 아낌없이 기쁘게 하고 있는 집주인을 찾아간다. 기회가 문을 두드렸을 때 “왔어? 어서 와. 사과파이를 굽고 있었어. 냄새가 좋지? 한입 먹고 갈래?”라고 가볍게 말을 건네는 집주인을 찾아간다. 기회가 다시 찾아올 것이고, 입소문에 기회의 친구들도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 이번에 꼭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견디며 온갖 요리를 억지로 하는 대신,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가장 먼저 나를 찾자. 나의 기쁨을 먼저 찾자. 반드시 기회가 당신의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릴 것이다. 열린 문 앞에서 24시간 내내 서서 손님맞이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문은 살짝 열어두고 나의 일을 계속하자. 기회는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당신의 노래를 듣고, 바람에 실려오는 달콤한 향기를 맡고 반드시 당신을 찾아올 테니 불안해하지 말고.
룸룸파룸 룸파룸!
찾아오지 않는 기회를 원망하고, 놓쳐버린 기회에 두고두고 마음이 저미는 나를 위해 이 글을 쓰고 나서 얼마 뒤, 우연히 아라이 료지의 ‘버스를 타고’를 만나게 되었다. 무릎을 탁 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버스를 타고> 아라이 료지 지음 , 김난주 옮김 / 보림
사막 한가운데 정류장에서 한 소년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커다란 트럭도 지나가고, 말을 탄 사람도 지나가고, 자전거 탄 사람도 지나가는데 소년이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어느새 날이 저문다. 까만 하늘에 박힌 별빛을 이불 삼아 까무룩 잠이 든 소년. 아침이 되자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드디어! 흙먼지를 풀썩풀썩 날리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 하지만 만원 버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팍팍한 이 세상에서 날 목적지로 빨리 데려다줄 수 있는 버스의 이름은 기회다. 난 금수저가 아니라 트럭도 말도 자전거도 없고,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이 놈의 버스는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고, 마침내 찾아온 버스는 내 한 몸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꽉 찼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도 지치는데 드문드문 찾아오는 버스마저 놓쳐버렸다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절망할 법도 하지만 소년은 라디오를 틀고 ‘룸룸파룸 룸파룸’ 노래를 부르며 버스를 기다린다.
내 버스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도, ‘쌩’하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도, 생은 흐르고 있다. 버스에 집착할 때, 시간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생도 놓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문득, 소년은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타박타박 두발로 걷기로 한다. 과연 걸어서 소년이 원하는 대로 멀리멀리 갈 수 있었을까. 난 분명 소년이 흥겹게 노래 부르며 길을 걷다가 또 다른 기회를 만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탔을 수도 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소년의 노래이다. 5살 아이는 작은 입술을 모으고 ‘룸룸’ 할 때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깔깔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