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오오오 골!” 전속력으로 경기장을 한번 가로질러 뛴 다음, 뭐든 부술 기세로 허공에 주먹을 높이 내리꽂아야만 할 것 같았다. 1등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치른 두 번째 시험이었다. 첫 번째 시험은 11등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앞의 1을 지울 수 있을지 궁금했다. 1등이라니! 지금이라면 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소리를 질렀겠지만, 스마트폰이 없었던 그때는 말할 사람이 없었다. 소리 없이 모양 없이, 격렬한 춤을 추며 교실로 들어갔다. 쉬는 시간이라 교실은 떠들썩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실 뒤 편으로 창을 통해 깊숙하게 해가 들어와 반짝였다. 솟구치는 기쁨에 그때까지도 입꼬리가 들썩거렸다. 아마 바로 수업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히죽대는 내 얼굴을 보고 친구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난 유리성의 꼭대기에 있었다.
그 뒤로 1이라는 숫자는 더 이상 톡 쏘는 맛을 주지 못했다. 1학년 1반 11번, 너는 어쩌면 학번도 다 1이냐며 호들갑을 떨던 친구들도 곧 당연한 일이라 여겼고, 엄마 아빠도 간혹 2라는 숫자를 보면 조금 아쉬워할 뿐이었다. 그러다 20년 교육의 결과를 보여준다는 수능 날, 1교시의 성과가 직감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일찌감치 재수를 결심했다. 유리성이 무너졌다. 인생의 첫 실패였다. 아빠는 재수를 반대했고, 난 가출했다. 공부만 했던 내가 씩씩거린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겨우 반나절 동안 동네를 걷다가 집으로 돌아간 것이 다였다. 가족 누구도 내가 가출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을 포기한 그 순간부터 내 안에 이상한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불만과 원망과 자학의 싹. 한 번 자라난 싹은 잡초처럼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모든 것을 뒤덮었다. IMF를 겪고 겨우 일어선 데다가 동생도 대학을 가야 했기 때문에 재수라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었음을 잘 알면서도 아빠 카드를 가져다 흥청망청 썼다. 아무 하고도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수업 도중, 강의실을 뛰쳐나가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하고, 문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험을 치르지 않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헤매긴 마찬가지였다.
유리성의 깨진 유리조각은 연약한 살을 무자비하게 찔러 대며 생채기를 냈다. ‘중요한 시험을 망쳤다고? 한심하다. 그 뒤로도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네? 이제 늦었는데 실패한 인생이라고 봐야지. 그럭저럭 지금에 만족하고 살아.’ 친구들을 만나면 더욱 입안이 썼다.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정색을 하며 “야, 그만해. 쓸데없어.”라고 말한 뒤에야, 나는 그들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과거의 나를 불편하게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그렇게 후회와 자책에 빠져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쳤고, 비겁한 변명은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유리성 꼭대기에 섰던 그때처럼 아찔한 맛을 줄 수 있는 뭔가 대단한 일만을 찾았기 때문에 난 늘 나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던 일은 해냈다고 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난 과거라는 밧줄에 매어 안간힘을 쓰는 염소처럼 매애애 울었다.
과거를 떼어내야 했다. 옷이 비에 젖어 살갗에 달라붙은 정도가 아니라 옷이 불길에 녹아 살갗에 눌어붙었기 때문에 살점을 도려내야 했다. 수차례, 과거 없이 오늘 나의 맨 몸을 그대로 보는 시도를 했지만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단하기 일쑤였다. 드높게 쌓은 유리성의 꼭대기에 우뚝 서야만 하는 줄 알았던 과거를 버려야 한다. 실패 후, 이것을 배우기까지 15년이 걸렸다. 드디어 피 묻은 유리조각을 뺀다.
괜찮다. 그래도 나는 특별하다. 소중하다.
유준재의 ‘파란파도’는 내가 좋아하는 말의 이야기인 데다가 이미 쨍한 파랑의 독보적인 느낌과 거침없는 표현방식에 매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엔딩이 불편하여 일부러 외면했던 작품이다. 때로는 불편한 작품이 내게 더 의미 있는 법이다. 또 보고 또 봤다.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선, 악, 이상을 상징하는 백, 흑, 청 3가지 색으로 만들어 낸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하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오마주한 파란파도의 전쟁 장면을 비롯하여 작가의 고심 끝에 탄생한 색채, 구조가 어우러진 한 장면, 한 장면은 감동을 몇 배로 깊게 해 준다.
<파란파도> 글 그림 유준재 / 문학동네
실패한 우리는 못난 것일까.
파란 말은 온몸이 파랗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군주에게 바쳐져 앞만 보고 달리는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파란 말의 다리는 강철처럼 단단해졌고, 두 눈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갈기가 파도처럼 휘날리는 모습에 사람들은 파란 말을 ‘파란파도’라고 부르며 환호한다. 군주의 욕심대로, 사람들의 기대대로, 파란파도는 적진으로 돌진하고, 군주의 땅은 점점 넓어진다. 하지만 계속되는 승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병사들이 죽고 다치면서 사람들은 파란파도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전투 도중, 파란파도는 꼭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차갑게 눈을 빛내는 어린 병사를 마주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순간, 화살에 맞은 파란파도는 군주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파란파도는 처형될 위기에 처한다. 파란파도를 훈련시켰던 노병은 파란파도를 가엾이 여겨 파란파도의 몸에 숯가루를 묻혀 함께 탈출을 시도하지만 휘날리는 눈송이에 숯가루가 녹아내려 병사들에게 쫓기고 만다. 여기저기 화살이 꽂혀 몸이 온통 검붉게 물든 파란파도는 강물을 한 모금 마시다가 작은 울음소리를 듣는다.
파란파도가 아이를 업은 여인과 노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 목을 낮출 때,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그러지 마. 그러지 마.’ 하지만 파란파도는 노인과 아이를 업고 강물로 걸어 들어갔다. 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몸을 스쳐 지나가도 파란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한참 뒤, 가족은 강 건너편에 다다랐지만, 파란파도는 차디찬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진짜 파란파도가 되었다. 그곳이 파란파도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자신의 몸을 내던질만한 의미가 있는 쓰임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짙푸른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또 흘렀어.’는 문장이 자꾸 ‘짙푸른 강물은 소리 없이 울고 또 울었어.’라고 읽혔다. 슬프다 못해 화가 났다. 어느새 파란파도가 되어있었던 나는 파란파도가 자유의 몸으로 어딘가에서 평화로운 삶을 누리기를 나도 모르게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군주는 사회, 노병은 부모, 파란파도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남들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뽐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사방에서 외치는 세상에 살면서 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길을 네 의지대로 선택하라고 자신 있게 지지해 줄 부모는 많지 않다. 노병 또한 전쟁에서 팔을 잃었지만 파란 말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처럼 부모들도 세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자식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자식들은 의심 없이 그 가치에 몸을 던진다. 낙오자들은 망신창이가 된다.
어떤 존재로 성장할 것인가.
반면, 파란파도는 하늘의 이름을 빌어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결국 벗어던졌다. 군주의 최고의 가치, ‘침략을 통한 영토 확장’을 따랐을 때 파란파도의 고개는 왼쪽을 향하지만 더 이상 그 가치를 추구하지도, 그 가치의 성취 여부로 판정된 실패로 괴로워하지 않는 파란파도의 고개는 모두 오른쪽을 향한다. 파란파도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바로 이거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내 한 몸 바치는 것. 그 가치가 비록 세상이 말하는 최고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더라도 끝까지 멈추지 않는 것. 그래서 스스로 더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
작가는 ‘저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숨 쉬는 파란 말을 깨우길’ 바란다고 이야기의 끝에 말을 남겼다. 이 한마디 말은 바깥에서 나를 두드리며 자꾸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게는 아직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파란파도는 군주의 병기일 뿐이었으나 스스로 뛰어넘어 자신이 생각하는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썼지만, 나는 상처 받았다는 이유로, 실패했다는 이유로 도망치다가 겨우 이제야 멈췄기 때문이다. 난 앞으로도 자주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읽을 것이고, 또 용기를 내어 딸에게도 읽어줄 것이다. 우리가 내 안의 위대한 나로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