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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Oct 19. 2023

시간을 소비한다.

“얼른 씻고 밥 먹어!!”


J를 깨우는 엄마의 우렁찬 목소리가 오늘도 어김없이 집안을 가득 메운다.


등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엄마도 마음이 바쁘다.

오늘 고객과 아침 일찍 미팅이 잡혀 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출근해서 계약 성사를 위한 준비를 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다.




“엄마.. 조금만 더 자구…”

“그럼, 엄마는 모른다. 엄마 지금 나갈거야. 늦던지 말던지 알아서 가!!”

오늘도 엄마와 J는 아침부터 시간 태격전을 벌였고, 결국 엄마는 J깨우기를 포기한 채 집을 나선다.


그러다가,,

“야! 너 진짜 지각 할거야? 얼른 일어나!!”

집을 나서다 말고, 다시 한 번 J방을 들른 엄마.


“아이 참, 진짜 1분만 더 있다가 일어난다고!!..”

“몰라. 엄마 진짜 나간다!”



현관문이 요란하게 닫히는 ‘쿵’소리에 J는 눈을 비비고 그제서야 일어난다.


“도대체 지금 몇 시인데 저러는 거야?”

흘긋 현관문을 째려본다.


오전 8시 20분.

적어도 10분 뒤에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야 지각을 모면할 수 있겠다.

대충 씻는듯 마는 듯 하고, 식탁에 올려진 샌드위치 한 입을 크게 베어 먹고는 책가방을 메고 부리나케 뛰쳐 나간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참 가관이다.

어제 밤에 감은 머리는 제대로 말리지 않고 곧바로 잔 탓에 붕 떠 있고, 제대로 세수를 안한 얼굴엔 눈곱이 갑갑하게 끼어져 있었으며, 방금 크게 베어먹은 샌드위치 때문인지 입 주변은 빵부스러기와 소스로 얼룩져 있었다.


‘이런..’

J는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에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삽시간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거울에 의지한 채, 머리를 매만지며, 눈곱을 떼고, 입가를 훔쳤다.



“그래. 이정도면 완벽해!!”

1층 도착과 함께 거울을 보고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 한다.


학교로 가는 길.

아파트 이 동 저 동에서 아이들이 하나 둘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빨리 준비하고 갈 수 있는 건데,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왜이리 호들갑 떨면서 시끄럽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지?’

여러 명의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끼어 함께 가는 자신을 보며, 큰 소리로 깨운 엄마가 괜히 원망스럽다.


“어?! J야~”

바로 앞에서 친구 Y가 보인다. 항상 웃으며 쾌활하게 말 붙이는 아이.

그런데, J는 반갑기는커녕 괜히 그 아이가 아는 척 하는 게 달갑지 않다.

‘오늘은 또 무슨 자랑을 하시려고?’



J의 친구 Y.

Y의 부모는 같은 병원의 의사이다.

개학 첫 날부터 앞뒤 자리에 앉게 된 J과 Y는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고, 같은 아파트 단지의 옆 동에 살다 보니, 등하굣길에 자주 만난다.


J가 Y와 처음 친해지며, 호구조사를 하게 되었던 날,

Y는 처음 한 말이 자신의 부모가 모두 의사라 했다. 보통은 부모의 직업이 자연스레 알게 되면 아는 거지만, 이리 첫 만남부터 당돌하게 자랑하는 듯한 말투가 J를 거슬리게 했다.

하지만, 쾌활하고 상냥한 Y는 J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고, 그러한 Y가 J는 싫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면 늘상 J의 옆에 와서 이것저것 물어봐 주고, 손을 잡아주는 Y가 있어 학기초 적응이 보다 빨랐다는 점은 인정한다.


“나, 오늘 아침엔 밥 먹구 엄마랑 AI관련 과학기사를 함께 보며 얘기 했는데, 생각보다 굉장 하더라. 앞으로 우리의 미래가 말이지. 너도 AI관련 본 적 있어?”

“당연하지! 우리 오빠가 AI관련 전공이잖아!! 늦겠다. 얼른 학교나 가자.”

J는 오빠 전공 얘기로 더 이상 Y의 자랑을 받아주고 싶지 않아 대화를 싹둑 자르며 마무리 짓는다.


사실 J의 오빠는 해외 교육을 받은 유학파로 AI관련 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간 수재이다.

어린 시절, 아빠의 주재원 발령으로 양질의 해외 교육을 받고 자신의 관심분야인 AI과를 선택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에 1년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였다.

J와 J의 오빠 양은 나이차이가 10살이나 난다.

늦둥이로 태어난 J는 오빠처럼 해외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게다가 꼼꼼하고 소심한 성격에 확실히 알지 않으면 내뱉지 않는 성향이라 영어 단계를 올리는 데에도 여간 쉽지가 않다.


AI.

오빠인 양이 공부하는 전공이라고는 하지만, J는 도통 관심도 없었던 분야였다.

얼렁뚱땅 Y의 자랑을 막으려 둘러 댔지만, J는 순간 오빠가 다니는 과 정도는 알아두는 것이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이 드는 찰나이기도 했다.



“J야~~!!”

멀리서 대지와 아지가 손짓한다.

“어, 어~~.”

J가 응답하며, 달려간다.

뒤를 따라 Y도 따라 달린다.


네 명의 아이들이 교문 안을 들어간다.


“제페토 선물 받기 했어?”

“응, 고마워. 근데 그 옷 아이템 구찌 그것도 갖고 싶더라”

“으이구,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

“아마 우리 엄마는 안 사줄거야!”

대지가 게임 아이템을 선물해 주어 J가 무척 즐겁다. 하지만, 또 다른 아이템이 갖고 싶다. 요즘은 명품 옷 아이템이 유행이다.

엄마에게 졸라 봤자, 사주지 않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J는 젬이 많은 대지가 부럽기만 하다.


“난 어제도 편의점 기프트 카드로 젬 구매!!”

대지가 우쭐거리며 말한다.

편의점에서 군것질 할 거라며 기프트 카드를 구매하여 그 카드로 게임 젬을 산다는 대지.

꽤나 영리한 방법을 알아냈다며 친구들에게 으쓱 된다.

J는 한편으론 한심스럽기도 했으며, 다른 편으론 부럽기도 한 눈빛으로 대지를 응시한다.



“조용들 하고!!”

1교시 시작이다. 또 리더로 착각하며 J, 아지, 깜이를 제자리로 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대지.

아이들은 순하게 얼른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어제 선생님이 내준 수학 학습지는 모두 풀어 왔지? 반장이 거둬 오도록 하고. 수업 시작한다.”


‘아!! 어쩌지? 어제 안하고 잤는데..’

J는 어젯밤 5분만 이따가 하자면서 미뤘던 숙제가 생각났다.


“ J! 너는?”

“..음… 난 집에 두고 왔는걸…”


얼떨결에 J는 반장에게 거짓말을 했다. 끝나는 수업시간 종이 울렸고, 선생님께선 숙제를 안했거나 안가져온 사람은 다음 시간까지 꼭 제출하라고 말씀하시며, 나가셨다.


하아.. 다행이다.’


앞자리 대각선에 앉아있던 Y는 아까부터 상황을 목격하고는 쉬는 시간에 J의 자리로 온다.


“J야! 너 학습지 또 안 가져왔어? 안한건 아니구?”

“야! 또라니.. 이번에 처음으로 안가져온건데..”

“너 지난 번에도 안가져왔다고 했었잖아. 5월이었던가?”



참으로 쓸데 없는 기억력이다. 아니 오지랖이라고 해야 맞나.

사사건건 참견하고 J를 체크하는 Y가 오늘따라 더 얄밉다. 물론, 나쁜 의도나 맘으로 J를 옭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저리 자신의 일에 일거수 일투족 관찰하며 확인하는 Y가 꼴보기가 싫다.


5교시가 끝이 나고, 삼삼오오 아이들이 무리 지어 학교를 나선다.




“J야! 오늘 뭐해?”

“응, 성장 검사 땜에 병원 가기로 했어. 왜?”

“시간되면 좀 놀다 가자고!”

대지와 아지, 그리고 깜이가 J에게 말한다.


반일 휴가를 낸 엄마와 만나서 학교가 끝나자 마자 병원에 가기로 했던 약속.

J는 잠시 망설였지만, 쿨하게 말한다.


“그래. 잠깐 놀다 가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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