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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Oct 20. 2023

바바이~ 코리아!

깜이는 외동딸이다.


깜이의 아빠는 우리 나라 최고의 대학교인 S대 의대를 수석 졸업했고, 탑 종합병원 외과 전문의이다.  

엄마는 뼛속부터 로얄패밀리로 명문대를 나와 현재 자신의 모교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사교육의 1번지 대치동에서 유명하다는 학원을 모두 거치며 공부하여 유명 8학군 여고에서 전교 탑권 안에 들었던 수재이기도 했다.


깜이의 엄마와 아빠는 중매 결혼을 했다.

조건을 보고 서로 나쁘지만 않다면 혼기에 찬 남녀가 결혼한다는 중매 결혼.

그래서 깜이는 '중매 결혼'에 대한 나쁜 편견이 있다.

항상 싸늘한 기운의 부모님을 보면서 싹 터 온 생각이다.


깜이의 엄마는 자신이 커 왔던 공부 환경에 진절머리가 나온 터라, 자신의 딸만큼은 자신처럼 이과 머리가 아니라면 해외에서 공부를 시키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싶다.

그래서, 중학교 들어가기 전엔 미국으로 보낼 요량으로 미국 동부쪽 유명 사립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남편 해외논문으로 이미 영주권은 준비해 놨다.

아이 교육을 빌미로 자신 또한 안식년을 써서 딸과 함께 출국할 계획이다. 남편과 떨어질 요량으로 말이다.




깜이는 곧 대치동을 떠나 넓은 해외에서 공부할 것이라는 계획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영어 학원을 빼고는 별로 공부에 열심이지 않다. 영어 만큼은 다른 친구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다.


“깜이야! 새벽부터 뭐하니?”

“영어 숙제. 조금 남은 게 있어서..”

“지금 몇신 줄 알아? 새벽 6시야. 조금 더 자다가 이따가 해라. 피곤하겠다.”

“아니야. 잠도 깼어. 지금 해야 등교전까지 마칠 수 있어.”


대치동 학원 숙제는 만만한 양이 결코 아니다.

깜이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 시간에 집중이 잘 된다.


“봐봐. 쟨 확실히 너를 닮진 않았지? 내가 학교 다닐 때 저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끈질기게 공부했다.”

깜이 아빠가 아침부터 걸어오는 시비에 무응답으로 응수하는 깜이의 엄마.



그랬다.

깜이 아빠는 새벽형 인간이었고, 깜이 엄마는 올빼미형 스타일이었다.

완벽한 이과형 아빠와 완벽한 문과형 엄마가 만나 치열하게 다투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봐 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외동이었던 깜이는 늘 외로웠다.


물론,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엄마와 아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깜이는 안다.

온갖 물질적인 풍요를 부족함 없이 주었고, 자신의 일이라면 두발 벗고 나서는 부모님에 대해 불만은 없다.

하지만, 끈끈한 가족애를 갈구했던 깜이에게는 늘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로 외로웠다.



'떠나고 싶다. 이 나라를, 그리고 이 가정을..'

깜이는 어린 나이에도 홀로 조기 유학 가기를 갈망했다. 그래서 영어는 그 누구보다 잘 하고 싶었다.


"엄마! 엄마가 함께 못가더라도 난 괜찮아. 그리고 참고로 난 영국으로 가고 싶어!!"

"무슨 소리!! 미국으로 가야지. 그리고 어린 너 혼자 보낼 수는 없다."


늘 딱딱하게 말하지만, 깜이는 안다.

엄마가 아빠와 떨어지고 싶은 마음을, 그리고 깜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이다.



주말 새벽,

현관을 빠져 나가려는 깜이 아빠.

오늘도 대학 동창들과 골프 약속이 있다.

같은 회원권을 갖고 있기에 특별한 기상특보가 없으면, 으레 주말 양일은 모두 골프로 한 주의 스트레스를 푼다.


다른 방에서 문 기척에 잠을 깨고 만 예민한 깜이 엄마,

나가서 반갑기도 하고, 주말을 가사 노동 없이 즐기는 남편이 아니꼽기도 하다.


'좀 조용히 나가면 안되나?'

주말 아침부터 확 짜증이 몰려온다.


아침을 먹고, 깜이와 엄마도 집밖을 나선다.

깜이를 주말 학원에 라이드해 주고 틈이 날 때마다 백화점 쇼핑을 잊지 않는다. 깜이 엄마의 유일한 엔돌핀이 나오는 창구는 쇼핑.

늘 가는 명품 매장에 들러 새로 나온 신상을 둘러 본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하아~'

얼마 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입고 왔던 스웨터에 눈이 집중적으로 간다.

다른 컬러로 픽하고, 카드를 내민다.


깜이를 학원에서 픽업하여 집으로 들어오는 깜이 엄마의 양손에는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산 음식들로 가득 들리어져 있다.

깜이와 함께 사 온 음식들을 풀어 주말 점심을 조용하게 그리고 푸짐하게 먹어치운다.


저녁 늦게 깜이 아빠는 술에 얼큰이 취한 얼굴로 들어온다.

적당히 벌건 얼굴에 사우나에서 바른 바디로션 향이 솔솔 난다.



"우리 애기 어딨니? 아빠가 우리 애기 좋아하는 초코케이크 사왔다~~"

"아니, 딸을 돼지로 만들거야? 왜 맨날 그 설탕 덩어리를 사오는 건데?"

"너는 조용히 있어. 우리 애기는 어딨는 거야?"


밖에서 또다시 싸늘해지는 분위기가 두려운 깜이는 방에서 나가기 꺼려진다.

초코케잌이 침샘을 자극하지만, 선뜻 나가기 애매한 상황.


"얼른 들어가서 손이나 닦아! 아니, 밖에서 들어오면 바로 손을 닦아야지. 왜 왔다갔다 하는 거야??"

"넌 좀 다다다다 잔소리 좀 하지 말고, 조용히나 있으라고! 저놈의 결벽증부터 고쳐야돼!!"


예민하고 깐깐한 엄마의 하이톤과 중저음의 음성량이 풍부한 아빠의 목소리가 또다시 맞붙는다.

깜이가 들어도 도통 소통의 여지가 보이질 않는다.



하아.

깜이는 그냥 방밖으로 나가는 걸 포기한다.

주말 밤이 아무래도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럴 때 깜이의 유일한 소통구는 친구들과의 게임 뿐이다.

다시 핸드폰을 연다.

다행히 친구들이 접속해 있다.

깜이도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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