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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Oct 20. 2023

모두가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교실 안.


“나 엄마 땜에 진짜 너무 스트레스 받아. 오늘 아침에도 한 판하고 나왔어!”

걸걸한 목소리의 대지가 먼저 말을 꺼낸다.


“나도 싸웠는데.. 진짜 해도해도 너무해. 내가 무슨 종도 아니고. 맨날 나만 시켜!!”

자신도 모르게 속상했던 순간이 튀어져 나오는 아지가 거든다.


“그래도 넌, 학원 공부 이런 스트레스는 없잖아. 난 진짜 돌아버리겠다.”

자신이 더 힘들다고 주장하고 싶은 대지가 아지에게 말한다.


“야!  난 너무 안해서 문제지. 아니, 우리 엄마 아빤 나한테 관심도 없어.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학원도 안보내잖아! 정말 생각할수록 너무해!!”

“하긴.. 진짜 너 영어, 수학 어떡할 건데.. 심각하긴 하다.”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아지의 주요과목 진도를 말하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대지의 말은 사실이었고, 이런 말을 한 두번 들은 아지가 아니다.

처음 애들 앞에서 아지를 걱정한답시고 하는 말을 그냥 지나쳐줬더니, 계속해서 틈만 나면 같은 말로 걱정해 주는 척 하는 대지가 오늘따라 아지는 더 못마땅하다.

그렇다고 대지에게 선뜻 자신의 못마땅함을 말할 수 있는 성격도 못된다.

괜스레 대지가 삐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더 난처해 질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영어 수업시간.


“자자자.. 그만 자리로 돌아가자!”

그룹리더처럼 행동하는 대지가 아이들에게 손짓한다.


“책상에 있는 것들 모두 치우고, 지난 시간에 말했던 것처럼 오늘은 수행평가 볼 준비합시다.”

영어 선생님께서 시험지를 앞줄에 앉아 있는 친구들에게 돌린다.


시험이 시작된다.

지난 시간에 배웠던 대화와 단어 시험을 시험지에 적어내는 수행 평가이다.


학년 교과 과정은 식은죽 먹기라는 이 곳의 아이들은 몇 분 채 안되어 모두 풀어내고는 교탁에 시험지를 제출하고 잠시 복도로 나간다.

한 명, 한 명 시험지를 내고 나가는 아이들이 늘어날 때마다 아지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아지는 영어의 알파벳도 겨우겨우 읽는 수준이다.

학원을 다니느냐 마느냐와는 별개로 그 학년의 영어 과정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수학 역시 이제야 3학년 과정을 마무리 지었다.


그 역시 대지가 시켜서 시작했다.

대지는 아지를 진정으로 걱정한다. 학년 공부를 제때에 마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단지 표현하는 방식이 상대를 배려하지 못할 뿐, 아지의 학습 상태를 늘 체크하고 염두에 두고 있다. 이를 모르는 아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잠깐씩 망신을 주는 것에 대해 크게 노하질 못한다.



“김아지 보래요~~ 아직도 못쓴데요!! 하하하하하..”

시험지를 다풀고 복도로 나간 개구쟁이 남자 아이들이 아지를 보고 밖에서 놀려댄다.



아지는 울고만 싶다.

눈물이 눈에 고인다.


‘나도 잘 하고 싶다고!! 잘해보고 싶다고!!!’

마음 속에서 메아리 친다.

괜스레 학원도 안보내고 자신을 방임하는 엄마가 미워진다.



“김아지!. 아직 다 못했니? 지난 시간 배운 거 복습 안했구나.. 일단, 지금 푼 대로 제출해라.”


선생님의 독촉이 더 가슴 떨려왔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의 백지 상태인 시험지를 선생님께 제출하고 교실문을 열고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휴지로 닦는다.


‘하아… 난 도대체 왜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자학 하는 말들로 가득하다.



“아지 어디갔어?”

“그러게 말야. 아까 화장실로 가는 거 같던데.. 혹시 우는 거 아냐?”

대지와 J가 아지를 걱정하며 화장실로 뛰어 간다.


화장실에서 나온 아지는 눈이 약간 충혈되어 있다. 아이들이 괜찮냐며 양쪽에서 아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괜찮다고 말하는 아지.

사실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차라리 이렇게 찐따 취급을 당할 바엔 이 곳 대치동을 떠나고 싶기만 하다.

어디론가 시골에 가서 혼자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순간 엄마 아빠가 더더욱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수업 시간 내내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아지는 일진이 안좋다고 결론 내렸다. 우울한 마음이 금새 되돌아 오지 않는다.

자신이 너무 싫어지는 마음에 견딜 수가 없다.

갑자기 뒤쪽 대각선에 앉아 있던 대지가 수업시간에 쪽지를 건넨다.


-아지야! 오늘 학교 끝나고 기분도 풀 겸 다같이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놀자!


아지는 대각선 뒤로 앉은 대지를 슬며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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