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고 Oct 20. 2023

나는 야. 퐈이터(Fighter)!


“싫어. 안해. 왜 맨날 엄마 마음대로 하는 건데?”


“아, 이 가시나가!! 너 여기 대치동으로 내가 왜 이사 온 건데? 엉? 아빠 병원도 지금 적자라 힘든데, 학원비가 도대체 얼마인지나 아나. 내가 학원 전기세, 관리비 내 줄라고 그 비싼 돈 쳐들이는지 아나. 정신 차려야한데이. 이따 끝나고 영어학원 레벨테스트 늦지 말고 가! 알겄나?!!”


대지.

아침부터 엄마와 난투극이다. 요즘은 매일 매일이 싸움의 연속이다.

아빠도 옆에서 거든다.


“아빠도 우리나라 최고 대학 치대 나와서 이렇게 의사를 하고 있는 게 쉽게 된 줄 아나. 치열하게 공부하고 여기까지 올라 온 거래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이가. 니 학원비 댈라고 이 아빠가 빡시게 돈 번 데이. 알았나.”



엄마와 아빠는 늘상 대지 공부가 최대 관심사다.

대지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부모님이 갑갑하기만 하다. 아빠는 주말에만 대적하면 되지만, 엄마와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전투를 해야한다. 늦게 아이를 낳은 대지 엄마는 대지의 교육을 위해 대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 두고, 이 곳 대치동으로 이사 왔다.

열혈 대치맘이 되고자 대지를 압박하지만, 쉽질 않다.

게다가 갱년기까지 찾아온 대지 엄마는 사춘기 딸과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


“좀 그만 좀 하자고!! 이게 가족이야?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건데?”

현관문을 ‘쾅’닫고 나간다.


“저놈의 가시나가!! 내가 못산다 못살어.”




대지는 집을 부리나케 도망치듯 나와 학교로 향했다.

정말 아침부터 상한 기분 때문에 울고만 싶다. 전부 때려 치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요즘은 순간순간 든다.

공부도 하기 싫다. 엄마에게 반항 하고만 싶다. 자신의 기분을 계속 망치는 엄마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엄마를 괴롭게 하는 방법은 무얼까 생각해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니, 벌써 교문 앞에 다다른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아지와 깜이가 교문 앞에 서 있다. 아무래도 대지를 기다린 모양이다.

그나마 친구들이 보이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교문 앞 횡단보도에 서 있는 J와 Y도 눈에 들어온다.


 “얘들아, 나 아침에 또 엄마랑 싸웠다. 미치겠어!!”

“나두 어제 엄마랑 싸웠어. 진짜 다들 왜 그래?”

아지가 거든다.


“넌 그래도 엄마랑 공부 때문에 싸우진 않잖아. 난 공부 땜에 미치겠어. 너무 간섭해.”

“그렇지. 나는 공부를 너무 방임해서 문제지. 우리 엄마는 나보고 동생들 안 본다고 난리야!!”

“진짜 짜증난다. 어른들 왜 그래?”

혼자만 가만 있기 뭐한 깜이가 소심하게 한마디 한다.


파란 불이 켜지자 마자 J가 달려온다. 뒤따르는 Y도 합류 한다.


어제 대지가 엄마 몰래 구매한 게임 젬을 J에게 선물했고, 그 얘기를 나누며 가느라 대지는 상했던 기분이 좀 풀린 듯 하다.

친구들과의 수다가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는 최고라고 다시 한 번 확신한다.


“아.. 내가 너희들 없었으면 어쩔 뻔..”

대지가 깜이, 아지, J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수업시간에도 대지는 도통 집중이 안된다.

하교 후, 영어 학원에 가서 정기적으로 보는 레벨테스트를 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번 레벨테스트로 한 단계 윗반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원장선생님 반에 못 들어갈 테고, 그러면 또 다시 엄마와의 전투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지는 왠지 엄마를 골탕먹이고 싶다.

만약 엄마가 원하는 대로 척척 레벨 업 되어서 원장선생님반에 들어간다면, 엄마는 분명 보란 듯이 의기양양해 질 것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배아파서 눈뜨고 보고 싶진 않았다.


오늘 레벨테스트만 건너 뛴다면, 엄마가 자신에 대해 포기하고 항복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해 본다.

이런 저런 생각에 좀처럼 수업 내용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영어 숙제도 어젯밤 엄마와 싸우는 바람에 하질 못했다.

분명, 하원이 늦어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수업 시간에 몰래 학원 교재를 펼쳐놓고, 선생님 눈치를 봐가며 숙제 하는 데 여념이 없다.


쉬는 시간.

대지는 또다시 깜이, 아지, J와 함께 어제 게임 젬 얘기를 계속 한다.


“어제도 엄마 몰래 편의점 기프트 카드로 젬 결제 했어. 3만원이나..”

엄마에 대한 반항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 게임 아이템 쇼핑만큼 만족스러운 것이 없다.

 

“요즘 이게 내 최고의 ‘낙’이야!”

친구들은 부러움 반, 걱정 반으로 대지를 쳐다본다.


“야, 근데 그 방법 좀 전수해 줘봐. 나도 한 번 시도해 보자!”

궁금한 건 못 참는 J가 묻는다.


“맨입으로? 내가 가르쳐 주면, 니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그 캐릭터 그림 그려줘! 그러면, 알려 줄게~”


“알겠어. 까짓 거! 그려 줄게!!”

역시, 늘상 맨 입으로 해 주는 대지가 아니다.

집에 가서 아이패드로 캐릭터 그리고 색칠하는 데에 1~2시간은 훌쩍 걸릴 테고, 엄마의 눈치를 이겨내야 하지만, 대지가 사들이고 있는 그 요상스런 방법만 알아 낸다면, 앞으로 젬을 엄마 허락 없이도 마구 사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J는 엉덩이가 들썩거려진다.


“쟤는 또 뭐냐? 쉬는 시간에 독서?? 아주 범생이셔. 모범생. 재수 없어.”

대지의 시선이 Y를 가리킨다.

엄마가 늘 대지와 비교하는 대상인 Y가 오늘따라 더 얄밉다.


친구들이 쉬는 시간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듯, Y는 책 읽기에 삼매경이다.

책을 보며, 혼자 심각했다가 낄낄대고 웃다가 생각 하다를 반복한다.

그런 Y를 보며, 대지는 또다시 기분이 가라앉으며, 학원 문제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지는 오늘 영어 레벨테스트를 안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결론을 내린다.

대치동에서 알아 주는 이 영어 학원의 원장님 반은 악명이 높기로 유명하다.

과제량이 많은 것도 한 몫하지만, 매 시간마다 계속 테스트를 봐야한다.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면, 재시험을 계속 보며 확실히 알고 넘어갈 때까지 하원은 꿈도 못 꾼다.

게다가 월말에는 시험 본 성적이 1등부터 꼴찌까지 게시판에 붙여진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버틸 용기도 없고, 자신도 없다.

엄마를 골탕 먹이려 하는 것은 둘째 치고, 대지 자신의 캡파를 벗어나는 것임엔 분명해 보였다.




“얘들아! 오늘 끝나고, 잠깐 놀자. 다이소랑 올리브영 가서 오랜만에 쇼핑하자. 편의점가서 내가 기프트 카드 금액 남은 걸로 간식 사줄게.”

“아. 나 오늘 병원 가야 해서 힘들어. 엄마랑 만나기로 했어...”

“에이. 조금만 놀다가 금방 들어가. 나도 오래 있진 못해.”

“그러자. J야! 너가 빠지면, 우리 4공주 의미 없다.”

대지, 아지, 깜이가 차례로 J를 설득한다.

순간, J는 갈등한다.

친구들과 하교 후에 조금만 더 놀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병원 예약 때문에 반차까지 쓰고 일찍 퇴근 할 엄마가 영 마음에 쓰이기도 한다.


‘오래 놀 것도 아니고, 딱 30분만 놀고 갈건데. 뭐. 그정도야 껌이지..’

자기식대로 해석하고는,


“알겠어. 조금만 놀다 가야겠다!”

후련하다. 나름 합리적인 결정을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뿌듯해 한다.


대지, 아지, 깜이, J는 먼저 다이소로 향했다.

새로 나온 인형과 문구류를 보느라 정신이 빠져 있다.

J는 새로 나온 캐릭터 인형을 보며, 이리저리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가도 흩어졌던 네명이 또 모이면 깔깔거리며 웃고 수다를 떤다.


시간이 어찌 가고 있는지 생각이 없어 뵌다.














이전 02화 시간을 저축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