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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Jul 11. 2020

북한산 최고의 조망,비봉능선(향로봉,비봉, 사모바위)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5화 북한산 ㅡ7

오늘은 북한산에 20번째 오르는 날이다.

공식적으로는 20번째이지만 그냥 가볍게 오른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훨씬 많을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오르지 못한 봉우리도 있고 모르는 등산로가 수두룩하다.

북한산의 등산로는 보편적인 등산로만 세어도 80여개가 넘는다고 하니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등산로 중에서 오늘 내가 택한 코스는 진관사에서 출발하는 비봉능선 종주다.

비봉능선은 비봉과 사모바위등...능선상에도 많은 비경이 산재해 있지만 비봉능선 종주의 백미는 북한산의 또다른 이름 삼각산을 말 그대로 삼각산으로 볼 수 있다는데 있다.



오전 10시 반에  오늘의 산행기점인 진관사에 도착했다.

진관사(津寬寺)는 

서울 근교의 4대 명찰(名刹)로 손꼽힌 이름난 사찰로,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국력을 수호한 고려 제8대 현종(顯宗)이 1011년(顯宗 2년)에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해 창건했으며, 6.25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복구된 고찰로 전해진다. 




진관사 전경

일화에 의하면 현종이 어렸을때 천추태후가 자신의 사생아를 왕위에 올리려고 정쟁을 벌이자 진관대사가 불상밑에 땅굴을 파고 숨겨 화를 면했으며 3년뒤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진관대사에게 이곳에 불사를 이르키도록 했다고 전한다.

또한 진관대사의 이름을 따서 절이름도 진관사라 했다고.....

그런데 그보다도 진관사를 요근래에 더 유명하게 한 사건이 있다.

일명 진관사 태극기다.

2009년 사찰내의 칠성각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불상과 벽사이에 독립운동에 쓰였던 태극기와 독립신문등이 보관되어 있던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서울 근교에서는 보기드문 고즈넉함을 간직하고 있는 진관사를 잠시 둘러보고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섰다.

계곡과 나란히 하는 산길엔 응달이라서 눈이 제법 쌓여있다.

그래서인지 일요일인데도 산객이 거의 없다. 

일찌감치 아이젠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삭막한 겨울 산길을 터벅터벅 혼자 오른다. 



아이젠까지 했는데도 쉽지않은 빙판길은 계속되고 쇠난간을 붙잡고 올라야 하는 난코스의 연속이다.

진관사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겨울 산행으로는 적합하지 않는것 같다.



그렇게 위험구간을 1시간쯤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어느새 능선길에 올라섰다.

힘들게 올라선 능선상에서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는건 비봉능선 너머 삼각봉을 이루는 백운대,인수봉,만경대를 비롯한 장쾌한 봉우리들의 위용이었다.



향로봉에서 본 비봉

능선길에만 접어들면 시셋말로 고생끝 행복 시작이다.

북한산의 온갖 봉우리들을 책을 읽듯 감상하면서 거의 평지 수준의 암봉길을 10여분 걷다보니 오늘 산행의 첫번째 목적지인 향로봉이 나왔다.

산행 시작후 2시간만이다.

향로봉은 높이가 535m로 멀리서 보면 향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락위험지역으로 지정되어서 출입을 제한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심해서 오르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난이도다.



향로봉에서 비봉 구간도 호젓한 오솔길을 방불케하는 능선길이다.

그 능선상에서 보는 북한산의 전체 산그리메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맨 오른쪽 비봉을 필두로 보현봉,문수봉,나한봉,나월봉,만경대,노적봉,인수봉,백운대,염초봉,의상봉,원효봉까지 크고 작은 북한산의 주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마치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이라도 되는듯 했다.




그중에서도 북한산의 또다른 이름 '삼각산'이라고 부르게 된 북한산 심장부의 겨울 풍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진경산수화였다.


그렇게 그림같은 풍경을 마주하며 다시 10여분 걷다보면 뒷모습이 마치 아이들의 예쁜 똥 모양의 암봉이 나온다.

그 유명한 비봉이다.



비봉은 높이가 560m로 국보 3호로 지정된 신라진흥왕 순수척경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 조각을 쌓아 놓은 듯한 암봉위에 세워져 있는 현재의 비는 훼손을 막기위한 모조품이다.



문화재청 홈피에서 가져옴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신라영토로 편입한 뒤 이지역을 방문한 기념으로 세웠다고 하는데 논란도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했다고 알려진 진품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봉의 코뿔소 바위.

그 뒤로 사모바위와 문수봉,나한봉등이 늘어서 있다.



비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아찔한 바위타기가 필요하다.

오르기는 그나마 괜찮은데 내려올때가 더 힘든 구간을 앞서간 분들이  밀어주고 잡아주며 오르고 있다.

나는 쌓인 눈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지만 지난번 두번쯤 오른곳이기도 해서 이곳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오늘 계획한 마지막 목적지 사모바위를 향해서 간다.

비봉에서 사모바위 역시 거의 평지 수준의 10여분 거리에 있다.



사모바위는

조선시대의 관모인 사모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모바위 밑 동굴에서 옛날 김신조 일당이 은신했다고 해서 김신조 바위로도 불리기도 한다.



또다른 일설에 의하면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와보니 사랑하는 여인이 적들에게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다,기다리다,결국 바위가 되어서도 기다리는 가슴 짠한 영원한 기다림의 바위인 셈이다.





사모바위 밑 동굴.

김신조 일당이 숨었다는 곳으로 그때 당시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1.21사태라고 부르는 김신조 일당 침투 사건은 1968년 1월21일 북한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다.

무려 31명이나 되는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 턱밑까지 침투한 사건으로 우리나라 예비군 창설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하산은 승가사쪽를 택했다.

승가사는 북한산 비봉 아래 자리잡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756년 수태(秀台)가 창건했으며 보물 215호와 1000호가 있는 대사찰이다.

당나라때의 고승 승가를 사모하는 뜻에서 승가사라 했다고 전한다.



보물제 1000호 석조승가대사좌상과 보물 제 215호 마애석가여래좌상




승가사는 암벽 사이사이에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계단식 절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천천히 둘러보려면 제법 튼튼한 다리가 아니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튼 넓고 고즈넉한 멋은 없으나 암벽과 나름 조화를 이룬 건물과 문화재들이 왠지 모르게 신성해 보였다.



승가사 구경까지 마치고 5시간여만에 구기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시간은 5시간이 걸렸지만 놀며쉬며 보낸 시간이 많아서 큰 의미는 없다.

*산행코스:진관사 ㅡ향로봉 ㅡ비봉 ㅡ사모바위 ㅡ승가사 ㅡ구기계곡 ㅡ구기탐방지원센터




ㅡ2016.1.1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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