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8화 운악산
산행하기 좋은 가을이면 항상하는 행복한 고민...
단풍 산행을 할까?
억새 산행을 할까?
바위 산행을 할까?...
즐거운 고민 끝에 단풍산행으로 낙점하고 운악산을 선택했다.
여러 봉우리가 구름을 뚫을듯 솟아있는 산이라는 뜻의 운악산은 현등사가 있어서 현등산이라고도 부르는 산이다.
행복한 고민 덕분에 모처럼 즉흥적인 산행이 아닌 계획 산행을 한다.
그래서 비교적 이른 시간인 아침 7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역시 이른 시간에 출발하면 여러가지로 좋다.
차가 막히지 않아서 좋고,따가운 햇볕에 운전하지 않아서 좋고,이른 아침의 조용한 풍광을 즐길 수 있어서 좋고,무엇보다도 시간에 쫒기지 않은 산행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렇다.
산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러가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운악산의 등산로는 다른 산에 비해서 비교적 단순하다.
물론 몇가지 코스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는 단순한 두가지 방법이 있다.
가평쪽에서 오르는 코스와 포천쪽에서 오르는 코스다.
오늘은 가평쪽 현등사를 날머리로 하기 위해서 눈섭바위길을 들머리로 삼았다.
산행시작 후 20여분만에 만나는 그 눈섭바위에는 선녀와 나뭇꾼이야기와 비슷한 전설이 있다.
"옛날에 한 총각이 계곡에서 목욕하는 선녀들을 발견하고 치마를 하나 훔쳤다.
이윽고 총각은 치마가 없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를 집으로 데려가려 한다.
그러자 선녀가 '치마를 입지 않아서 따라갈 수 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총각은 덜컥 치마를 내어주고 만다.
치마를 입은 선녀는 곧 돌아오겠다며 하늘로 올라가고 총각은 그 선녀의 말만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눈썹바위가 되었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그럴싸한 전설들도 모아 놓으면 그리스 신화 못지 않을것 같다.
운악산은 사계절 산행하기 좋은 산이지만 그중에 가을 단풍산행지로 정평이 나 있다.
오늘 단풍산행 최적기에 그 운악산을 만나게 된 듯 하다.
점입가경,금상첨화라는 말이 생각났다.
등산로 초입에서부터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고도를 더해 갈 수록 그 색감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 병풍바위에 이르러서는 바위만으로도 감탄사가 연이를 풍경에 울긋불긋 색단장까지 해 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실제로 화려한 꽃그림을 수놓은 영락없는 병풍 같았다.
전국에 많은 산들에 병풍바위라는 이름의 바위가 있지만 이만큼 더 병풍같은 병풍바위가 또 있을까 싶다.
병풍바위의 또다른 이름은 '인도 승을 내친 바위'다.
옛날 신라 법흥왕때 인도에서 온 스님인 마라하마가 이곳 병풍바위와 맞딱뜨렸는데 정신이 헛갈리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부처님의 뜻이라 여기며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으나 자꾸만 미끄러졌다.
마치 바위가 오르지 말라고 내치는 듯 했다.
그래서 결국 마라하마는 바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고행을 하다가 죽었다고 하여 '인도 승을 내친 바위'라는 별명을 얻었단다.
인도 스님은 오르지 못해서 고행 하다가 죽었다지만 지금은 계단도 설치되어 있고 쇠줄도 설치되어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수도가 뭐 별거일까?
산에 오르는것 이상의 수도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산행시작 2시간 30분만에 운악산 최고의 풍경 앞에 섰다.
병풍바위와 함께 운악산을 대표하는 미륵바위 앞에 선 것이다.
이곳 조망점에서는 미륵바위를 가장 미륵바위답게 볼 수 있으며 그 뒤로 펼쳐진 산 그리메가 배경이 되어주어서 더욱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그리고 다시 눈을 왼쪽으로 돌리면 아름다운 자태의 병풍바위도 볼 수 있는 조망점이다.
말 그대로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과 한 참을 노닌다.
다른 계절에도 아름다웠을 풍경인데 울긋불긋 단풍과 어우러졌으니 ...
아무튼 원래 지니고 있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적당한 단풍,그리고 날씨까지도 최상의 조건을 선사하고 있었다.
운악산은 경기의 금강,그리고 화악산,관악산,감악산,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으로 불리며 그중에 가장 수려한 산으로 알려진 이유가 이 한 장에 들어있는듯 하다.
병풍바위와 미륵바위를 한 컷에 담아보는것을 끝으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서 길을 나선다.
아쉬움에 병풍바위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그때 어디선가 해맑은 찬송가 합창소리가 들렸다.
산상에서 듣는 의외의 소리는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착각 할 정도였다.
그래서 호젓함을 깨는 소리였지만 워낙 청아하고 예쁜 소리여서 싫지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5명의 앳띈 수녀님들이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찬송가를 부르는듯 했다.
덕분에 내가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만경대를 향하고 있는 등산로는 철계단과 일명 '호치키스'계단으로 이루어져있는 암벽등로다.
뒤에서는 연신 까르르 거리는 수녀님들의 수다 산행이 이어지고, 앞으로는 더욱 짙어진 정상부의 단풍이 눈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만경대 구간은 아름다운 절경 만큼이나 험난한 등로가 이어진다.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듯이 어느 산이든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위해서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그것 또한 세상 이치리라.
정상을 향한 마지막 구간은 언제나 힘들게 마련이다.
체력이 고갈되어갈 시점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정상이고,그래야 정상인 것이다.
아무튼 멀어져가는 미륵바위와 병풍바위를 다시 한 번 감상하면서 힘을 낸다.
그렇게 절경에 취해서 오르다보니 어느새 만경대 정상이다.
만경대,망경대...많은 산들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다.
만가지 풍경을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만경대,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망경대...
비슷한 이름으로 쓰이고 있는 이름인데 운악산의 서봉에는 망경대가 있고,이쪽 동봉에는 만경대가 있다.
만경대에서는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같은 산그리메, 그 사이사이 말 그대로 황금색 논밭 풍경...이 한장의 그림이 만경대가 왜 만경대인지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는듯 했다.
이름만큼이나 조망이 좋은 만경대는 높이로는 정상이 아니지만 조망으로는 사실상의 정상이나 다름없다.
이제 정상인 동봉은 140m쯤 남았다.
3시간여만에 정상에 섰다.
사진촬영등의 시간을 뺀다면 2시간여면 오를 수 있는 난이도다.
그러나 운악산 정상에 서면 감탄사보다 실망감이 더 크다.
워낙 올라오는 동안에 여러 비경을 보고 올라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망도, 별다른 볼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리 크지 않은 바위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동봉으로도 불리는 정상의 정식 이름은 비로봉이며 937.5m로 운악산의 최고봉이다.
정상에서 간단하게 싸 온 점심을 먹고 하산길에 들었다.
하산은 반대방향인 절고개와 코끼리바위를 지나 현등사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정상에서 절고개까지는 남근바위를 빼면 별다른 볼거리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오솔길 수준의 등산로기 때문에 쉬엄쉬엄 걷기에 참 좋다.
더군다나 마침 화려한 단풍길이어서 더욱 좋았다.
그러나 절고개에서 코끼리 바위 구간은 제법 거친 난코스다.
하산시작 1시간여만에 현등사에 도착했다.
사실상의 하산 완료지점이지만 주차장까지는 아직도 1km남짓 더 내려가야 한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인 현등사는 운악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등불의 인도로 절터를 찾게되었다고해서 현등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비교적 좁은 절터지만 입체감을 살려서 다양한 전각과 탑을 세워서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절마당은 명찰로서 손색이 없었다.
가을 명산 운악산 ㅡ
만추의 단풍은 아니었지만 이제 한 창 물들기 시작한 단풍과 기암괴석의 어우러짐이 좋았던 산행이었다.
나는 사실 완전한 만추의 단풍보다 이제 물들기 시작한 단풍을 더 좋아한다.
연두빛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완전한 단풍보다 더 다양한 색감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특히 오늘 금강산을 방불케하는 병풍바위의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여러색감의 어울림은 한마디로 환상적이었다.
산행코스:매표소 ㅡ눈섭바위 ㅡ미륵바위 ㅡ병풍바위 ㅡ철사다리 ㅡ만경대 ㅡ정상 ㅡ절고개 ㅡ코끼리바위 ㅡ현등사 ㅡ주차장(천천히 4시간 30분)
ㅡ2006.10.16.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