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10화 무등산 ㅡ1
무등산(無等山)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이 높고 그 등급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높다는 의미의 이름이란다.
그래서 무등산은 산이 많지 않고 비교적 너른 평지에 형성된 호남의 제1도시인 광주의 심장이요, 이곳 광주사람들에게는 자존심같은 산이다.
그때문인지 광주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항상 무등산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배어있다.
광주에서 학창시절의 일부를 보낸 나 또한 무등산에 대한 그 애정과 향수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 무등산을 100대명산 10번째 산행지로 정했다.
물론 뒷산처럼 꽤 많이 올랐지만 오늘 산행은 산행기를 위한 산행인 셈이다.
산행은 원효사에서 시작했다.
무등산의 산행기점은 증심사 기점과 원효사 기점,그리고 화순방향에서 오르는 크게 3개의 기점으로 나뉜다.
그중에 주로 많이 오르는 산행 기점이 증심사와 원효사 기점이다.
또 두 기점 중에서도 무등산장에서 오르는 원효사 기점이 해발 400 여m에서 오르기 시작하기 때문에 비교적 완만해서 가장 많이 이용한다.
뿐만아니라 시내버스 운행으로 교통도 편리하다.
산행 시작 후 20분쯤이 지났을 무렵, 완만한 경사의 소나무 숲길을 걷다가 사위와 장인이 함께 왔다는 보기 좋은 산객을 만났다.
얼마동안 비슷한 걸음걸이로 오르다가 동화사터 쉼터에서 쉬는 동안 미쳐 간식거리를 마련해오지 못한 나에게 바나나 두쪽과 물 한모금을 건네주셨다.
그렇게 시작된 동행...
사실 산행하면서 낯선 사람과 대화하면서 산행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무등산이라는 분위기는 왠지 낯선 사람과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온화한 산세처럼 사람들의 성품이 온화한 때문인지, 아니면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광주의 정서에 나의 정서가 녹아들어있기 때문인지 아뭏튼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동행을 하는 행운을 얻었다.
무등산 이야기와 광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걷는데 또 한분의 산객이 "무등산이 명산은 명산이어라우 ㅡ"하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등산 박사라고 해야 할 정도로 무등산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분이었다.
덕분에 내가 몰랐던 무등산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본의아니게 일행이 된 4명이 무등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중봉에 올라섰다.
중봉에서 잠깐 휴식을 하고 세사람은 정상을 향해서 떠나고 사진놀이를 해야하는 나 혼자 남겨졌다.
원효사에서 중봉까지는 거리는 3km쯤이지만 완만하고 걷기좋아서 1시간 30분쯤이면 오를 수 있으며 높이가 915m인 중봉에서는 서석대와 천왕봉을 비롯한 무등산의 정상부를 감상 할 수 있다.
특히 옛 군부대자리에 조성된 초원같은 억새길 조망이 일품이었다.
여기까지 동행했던 세분의 일행도 어느새 그 그림 속의 일부가 되었다.
무등산은 홀로 우뚝 솟아있는 형국이기때문에 광주시내 어느곳에서든 우러러보이는 신성스러운 모습이기도 하지만 정상부에 오르면 반대로 사방이 발아래 있는 느낌이 들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거기에다 마침 오늘은 운해까지 깔려서 더욱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가야할 그림같은 억새길.
9월 중순의 억새길이 마치 초원같다.
이런 길에서는 실제 걷는 기분보다 오히려 걷기 전에 이렇게 내려다 보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을 할때가 훨씬 더 설래고 아름다운것 같다.
이제 나도 사진 놀이을 마치고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림같은 9월의 억새길을 건너 이제 서석대를 향해서 간다.
중봉에서 600m쯤의 초원같은 억새길은 내리막과 평지로 이루워져 있고 그 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다시 오르막이 시작 된다.
그 오르막이 시작되는 계단 양 옆으로 초가을 들꽃이 만발했다.
물봉선,여뀌,벌개미취,억새꽃등이 어우러진 천상의 꽃길을 방불케하는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마냥 경쾌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등산 옛길 구간을 지나자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조망점이 나왔다.
조금 전에 걸어가야 할 환상적인 길을 보면선 마음이 설렜다면 지금은 걸어온 길을 보면서 그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한다.
문득 인생에서도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았을때 이렇게 아름다운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조망점에서 뒤돌아서자 이번에는 무등산을 대표하는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앞을 막아선다.
자연 현상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의 정교한 돌기둥이다.
마치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대리석 건축물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정도로 정교한 돌기둥이다.
아마도 그 시대의 그들이라면 이 돌기둥을 가져다 건축재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좀 생뚱맞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조금 더 오르면 나오는 서석대다.
입석대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 465호로 지정되어 있는 서석대(瑞石臺)는 수정병풍처럼 둘러쳐진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이란다.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큰 주상절리대로 알려진 서석대는 무등산 정상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광주의 상징이자 무등산의 상징이다.
그래서 광주광역시에는 서석초등학교,서석동등 서석이라는 이름의 지명과 학교 이름, 그리고 상호등이 많다.
서석대 조망대를 나와 이제 서석대 정상을 향해서 간다.
무등산의 산세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문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육산인듯 하면서도 거친 너덜지대가 많고, 순한듯 하면서도 거친 변화무상한 산세다.
그런 범상찮은 산세 만큼이나 얽힌 이야기도 많다.
그중에 하나가 충장공 김덕령 이야기다.
역모에 엮여서 최후를 맞은 비운의 영웅 김덕령은 무등산자락에서 태어나 무등산에서 말타기와 칼쓰기등 무예를 익혔다고 한다.
이후 문무를 겸비한 김덕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크고 작은 전공을 세웠으나 충무공 이순신이 그랬던것처럼 이몽학의 난때 역모에 가담했다는 탐관오리의 무고로 29세의 젊은 나이로 억울하게 옥사하고 만다.
이후 60여년이 지난 후에서야 누명을 벗고 관직이 복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광주광역시에는 서석이라는 이름과 함께 충장이라는 이름도 많다.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가 '충장로'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산행 시작 3시간여만에 서석대 정상에 섰다.
서석대 정상은 높이가 1,100m로 정상인 1,186m의 천왕봉이 군부대로 통제되어 있기때문에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실질적인 정상이다.
절벽을 이루고 있는 서석대와 달리 정상과 서석대 반대면은 완만한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어서 해발 1,100m가 넘는 산정이라는 느낌 보다는 낮은 구릉지대의 초원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위압적인 다른 1000m급 정상과 달리 산객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소풍이라도 온 듯한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하산은 입석대 방향으로 한다.
무등산은 품이 넓은 산 아랫쪽과는 달리 정상부는 단순하다.
등산이 통제되어 있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으로 명명된 실제 정상부를 빼면 서석대에서 입석대로 이어지는 길이 거의 유일한 보편적 산행코스다.
서석대에서 입석대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천상의 길처럼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길이다.
넓게 펼처져있는 초원 사이사이에 마치 조각공원처럼 솟아있는 주상절리의 윗부분을 감상하며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완만한 길인데 그 길이 마치 일부러 돌을 박아서 만든 로마시대의 옛길 같다.
서석대에서 입석대 가는 중간에 있는 승천암이다.
역시 주상절리의 일종인데 마치 용처럼 생겼다.
이 바위가 승천암이라는 이름을 얻게된 전설은 이렇다.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줬다.
그런데 어느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그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어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그러자 이무기는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된다'
서석대에서 500m쯤 내려오면 무등산의 또하나의 명물 입석대가 나온다.
서석대가 잔 기둥이 넓고 높게 형성된 병풍모양의 암벽형이라면 입석대는 보다 더 정형화된 5각형에서 6각형 돌기둥이 마치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물처럼 우뚝 무리지어 서 있는 모양이다.
입석대 윗부분에서는 마치 연필묶음 모양의 5~6각형 주상절리 단면을 볼 수 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을때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중에서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각형 형태의 기둥모양을 말한다고 한다.
이곳 무등산의 주상절리는 약 7천만년 전에 형성된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중에 입석대와 규봉등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며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단다.
드디어 입석대에 도착했다.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대단하다.
마치 일부러 깎아 세워 놓은듯한 모습이 신비스럽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되지않는 풍경이다.
입석대(立石臺)는 서석대보다 100여m 낮은 1,000m에 위치해 있다.
한 면이 1~2m인 5~8각형 돌기둥 30여개가 수직으로 솟아있는 모습이며 높이는 40여m에 이른고 한다.
반듯하게 서있는 바위와 쓰러져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폐허가된 서양의 고대 유적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아래에 누군가 묘를 써 놓았다.
대단한 명당자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참 낯 두꺼운 후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수가 없다.
아무튼 불가사의한 자연 현상을 뒤로하고 다시 하산길에 든다.
입석대에서 하산코스는 400여m 거리에 있는 장불재 단일 코스뿐이다.
장불재에서 본 서석대와 입석대 전경.
입석대에서 장불재 내려서는 길은 약간의 너덜길이 있지만 거의 평지 수준으로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다.
사실상의 무등산 정상부의 핵심 산행이 끝나는 지점이다.
그리고 무등산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며 화순과 광주의 경계를 이루는 재이기도 하다.
장불재에서 증심사 방향으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차가 있는 원효사까지 다시 이동해야하는 불편때문에 원효사로 다시 원점 회귀를 했다.
무등산 정상 산행은 나무 그늘이 없어서 여름 산행지로는 조금 적합하지 않다.
물론 9월 중순이라서 제법 가을 느낌의 기온이지만 정상부에서의 뙤약볕은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막 피기 시작한 푸른 초원느낌의 억새밭길과 정상부의 이국적인 풍경앞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않은 멋진 산행이었다.
산행코스:원효분소 ㅡ늦재삼거리 ㅡ동화사터 ㅡ중봉 ㅡ목교 ㅡ서석대 ㅡ입석대 ㅡ장불재 ㅡ중봉 ㅡ얼음바위 ㅡ원효분소(왕복11km 천천히 6시간)
ㅡ2006.09.13.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