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BC 7세기~ BC 5세기: 그리스
오늘은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비롯된 기원전 7세기부터 5세기까지의 그리스 미술을 살펴보는 시간이다.
각 단원의 제목 만으로도 당시 그리스 미술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그리스인들의 각성의 배경과 변화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더해졌다.
막연히 느끼던 것들이 나의 관광경험과 아우러져서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
물론 이 곰브리치의 미술사는 각 장의 주제들을 깊숙이 다루고 있지는 않다. 서문에 밝혔듯이 10대 중학생들을 타깃 삼아 쓴 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 같은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미술을 개괄적으로 이해하기에 참 유익한 미술 입문서가 되어주는 것이다.
새삼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위대한 글쓰기'
만일 내가 곰브리치에 대한 글을 쓴다면 이 제목을 부칠 것이다. ㅎㅎ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서 도시를 굽어보는 듯 세워진 파르테논, 에레크테이온, 제우스 신전 앞에 섰을 때의 감흥은..
이집트의 신전이나 피라미드, 왕가의 계곡 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규모와 크기에 압도당하는 듯했던 이집트 관광과는 달리..
안온하고 낭만적 신비감에 취하여 긴 머플러 자락을 흩날려가며 멋지게 춤사위를 펼치고 싶은 유혹에 젖기도 하였다.
왜 그랬던 걸까?
오늘 책을 읽으며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책의 서문에 정의를 내렸듯이 미술은 미술작업을 하는 인간의 행위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각 미술품에는 그것을 제작한 인간의 영혼이 깃들게 되는 것이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가슴속 이야기... 그것들을 발산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을 느낌으로 알아차린 것이었다. 수천 년이 지나도 전해질 수 있는 이 설명 불가 느낌의 미학!
아! 또 한 번 깨닫는다.
최첨단 인공지능 로봇을 주르륵 그 앞에 도열시켜 보게 한들!
"니들이 이 느낌을 알아? 아냐고~~~~" ㅎㅎ
"그리스 미술가들이 사소한 옷 주름을 이용하여 인체의 중요한 부분들을 표현했던 방법은 그들도 형태에 관한 지식을 중요시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리스 미술이 이제껏 찬양을 받은 것은 규칙의 준수와 규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87쪽
다음은 젊은 경기자가 무거운 원반을 막 던지려는 순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더 큰 힘으로 던지기 위해서 몸을 굽히고 팔을 뒤로 젖히고 있다. 다음 순간 그는 몸을 돌려 원반을 던질 것이며 몸의 회전으로 던지는 힘에 가속을 주어 원반을 날릴 것이다...
이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미론은 주로 고대의 미술 방법을 새로운 방법으로 원용해서 놀랄만한 운동 효과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조각상의 앞에 서서 그 윤곽선만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것이 이집트의 미술 전통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미론은 이집트의 화가들처럼 몸통은 앞모습으로, 다리와 팔은 옆모습으로 표현했고, 또 그들과 같이 신체 각 부분의 가장 특징적인 면을 종합해서 한 사람의 신체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손을 통해서 이 오래되고 진부한 공식이 무엇인가 전혀 다른 것으로 변모되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실감 나지 않는 딱딱한 자세로 종합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델에게 비슷한 자세를 취하게 하여 움직이는 신체의 신빙성 있는 표현으로 만들었다.
현재 전해 내려 오는 그리스의 원작품들 중에서 파르테논 신전에서 나온 조각 작품들이 이 새로운 자유를 가장 경이적인 방법으로 반영하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올림피아의 신전이 완성된 지 약 20년 뒤에 완성되었는데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미술가들은 신빙성 있는 재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자유로움과 능란한 솜씨를 습득했다.
"우리는 남아있는 흔적들만을 가지고도 그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이고, 그들의 근육이 얼마나 명확하게 표현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방패를 들고 있는 팔은 아주 자유롭게 그려져 있으며 펄럭이는 투구의 깃털 장식과 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말들과 사람이 생생하고 활기에 차 보이지만 신전의 벽을 따라서 펼쳐지는 엄숙한 행렬의 배치에 잘 어울린다. 이 미술가는 그리스 미술이 이집트인들로부터 배운, 그리고 '위대한 각성'의 시기 이전의 기하학적인 패턴의 훈련을 통해 얻은 구성에 대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 -94쪽
이 위대한 시기의 모든 그리스 작품들은 인물들을 배치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지혜와 기술을 보여주고 있지만 당시에 그리스 인들이 그보다 더 중요시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즉 인체를 어떤 자세나 운동 상태로 재현할 때 쓰이는 새로 발견된 자유를 인물의 내적인 삶을 반영하는 데 이용하는 것이었다.
조각가로 훈련을 받은 바 있는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이것을 미술가들에게 강조했다는 말을 그의 제자들로부터 전해 듣는다. 미술가들은 '감정이 육체의 움직임에 미치는' 과정을 정확하게 관찰함으로써 '영혼의 활동'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 화병의 그림은 율리시스에 나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전설에 나오는 영웅 율리시스는 19년 만에 거지로 변장을 하고 지팡이를 짚고 보따리와 탁발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늙은 유모가 그의 발을 씻어주면서 발에 있는 눈에 익은 상처를 보고 그를 알아본다.
이 화가는 우리가 아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이야기와는 약간 다른 이야기로 이 장면을 그린 것 같다(호메로스에 나오는 유모의 이름은 이 화병에 새겨진 것과는 다른 이름이며 거기에는 돼지 사육사 오이마이오스도 나오지 않는다.)
화가는 아마도 무대에 상연된 연극 장면을 보고 이것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스 극작가들이 연극 예술을 만들어낸 것도 바로 이 시대였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극적이고 감동적인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위해서 정확한 대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림에서 유모와 영웅이 교환하는 시선이 말 이상의 것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 미술가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다음 왼쪽 부조에서 단순한 묘비를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만든 것은 육체의 자세 속에 있는 '영혼의 활동'을 표현한 바로 그 능력이다. 이는 이 묘석 밑에 묻혀 있는 헤게소(Hegeso)의 생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하녀가 그녀 앞에 서서 보석함을 건네주고 있으며 그녀는 보석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 조용한 정경은 왕좌에 앉아 있는 투탕카멘과 그의 옷깃을 바로 잡아주고 있는 왕비를 표현한 이집트 작품(아래 우측 사진)과 비교해볼 수 있다.
이집트의 작품도 그 윤곽은 대단히 명료한데 이집트 미술의 황금기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딱딱하고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왼쪽 그리스의 부조는 모든 성가신 제한들을 떨쳐버렸으나 아직도 배열의 명료성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으며, 더 이상 기하학적이거나 모가 나지 않고 자연스럽다. 두 여인의 팔의 곡선미로 상반부를 형성하고, 이 선들이 의자의 곡선에 반향(反響)을 일으키는 방법, 헤게소의 아름다운 손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단순한 방법, 몸의 형태에 따라서 고요함을 나타내는 옷 주름의 흐름...
이런 것들이 모두 합해져서 그리스 미술에 나타난 조화미를 발견하게 된다.
(94~97쪽 내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