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드러나는 대로'

2장)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크레타

by 아이얼

2장의 제목은 <영원을 위한 미술>이다.

이집트 미술을 관통하는 제목이다.


2 이집트 여행을 갔었다.

기원전 250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피라미드의 장대함 앞에 압도당했었다.

찬란한 문화유산이 남아있을 있는 가장 이유는 재료(화강암) 견고함과 건조한 사막지대의 기후에 있음을 체감할 있었다. 오랜 기간 모래무덤에 쌓여 보존된, 바로 최근에 제작한 생생하게 드러난 유적들을 보고 어찌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있겠는가!


이집트 여행의 기억을 안고 설레는 맘으로 책을 펼친다.




영원불멸에 대한 염원


'영원'

이 단어에 내포되어있는 인간의 두려움, 갈망.. 그에 따라 자연스레 생성된 신앙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이 무리 지어 사는 곳에 나타나는 계급의 질서, 그 꼭대기를 차지한 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자신들이 누리는 권세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권력자들의 영원을 향한 무모한 도전!

그 허황된 망상을 뒷받침해주는 하부 계급자들의 노역을 통해 '피라미드'가 세워졌다.


왕의 영원에 대한 염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에 대한 투혼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미이라'와 그를 에워싼 조각, 부조와 벽화들이 이제껏 남아 그들이 꿈꾸었던 영원의 세계를 상상하도록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제작한 '영원의 세계'는 끝내 그들을 위한 것이 되지 못했다.


'영원불멸함' 그들의 '육체와 영혼' 아닌 그들이 남긴 '작품(미술)' 통해 전승되고 있는 중이다.


"이집트인들은 육체의 보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왕과 닮은 형상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왕이 계속해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이중으로 갖게 되었 다. 그래서 그들은 조각가들로 하여금 단단하고 영원불멸하는 화강암에 왕의 두상을 조각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볼 수 없는 무덤 속에 넣어 거기서 마술의 힘으로 왕의 영혼이 그 형상 안에, 그리고 그 형상을 통해서 영원히 살아가게 도와주도록 했다. 실제로 조각가를 가리키는 이집트 말 중의 하나는 '계속 살아 있도록 하는 자(He-who-keeps-alive)'였다." -58쪽



죽음 앞에서 거르고 또 걸러낸 본질의 미술품 석회석 두상 - 본질적인 것만 남겨놓고 사소한 세부는 과감히 생략한 이 두상에서 시대를 초월한 예술 미학을 느끼게 된다. 인간 두상의 기본적인 형태에 엄격하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득하고 영원한 인상을 주고 있다.


순장의 관습을 대치해준 미술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이집트에서 세력자가 죽으면 그의 하인과 노예들을 함께 무덤에 생매장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한국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도 이러한 순장의 사례가 전해지고 있다)

당시 저들은 그런 끔찍하고 잔인한 행태를 대신해줄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제작하게 된 그림과 인형 - 그것들이 진짜 하인과 노예들을 대신해 저들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즉 미술이 저들의 구원자가 되어준 것이었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제작되어 망자 곁을 지켜준 수많은 미술품들...

망자가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한 그 작품들이 오늘에 이르러 '감상하기 위한' 것들로 뒤바뀌어진 결과를 낳은 것이다.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드러나는 대로'


한 미술가에게 과제가 주어진다.

"죽은 자의 환생을 위한 그림을 그려내라!"

그렇다면.. 사진 찍듯 대상을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할까? 아님 대상의 특징이 드러나게 그려야 할까?

이 질문에 맞는 대답을 찾았다면...

이집트 무덤 내부에 그려진 동화 같은 벽화의 모양새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화가의 방법이 아니라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린 이유를!

여행자가 지도 보고 길을 찾아가듯 망자가 그림을 보고 환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들의 생김새와 특징은 측면에서 보아야만 명확할 것이고 연못의 형태는 위에서 보아야만 분명해질 것이다... 반면 연못 속에 있는 물고기와 새들은 위에서 본 대로 그린다면 쉽게 알아볼 수 없으므로 옆모습으로 그렸다... 대부분의 어린이들도 이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한다." -61쪽


"원근법으로 단축되거나 잘려나간 팔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죽은 사람에게 필요한 제물을 받거나 또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61쪽


"이집트 미술은 미술가가 주어진 한 순간에 무엇을 볼 수 있었느냐 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나 장면에 대해 그가 알고 있었던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61쪽


"영어에서 우두머리를 big boss라고 하듯이 이집트 미술가는 우두머리를 그의 하인이나 아내보다 더 크게 그렸다." - 62쪽


또한 그들은 자연의 세부들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관찰해냈다.

"모든 종류의 새와 물고기들을 어찌나 충실하게 그렸던지 지금도 동물학자들은 그들의 종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64쪽



잠깐의 변화, 끝없는 도돌이표


이집트 미술에는 특별한 양식 - style 이 존재한다. 독창적인 것을 허락하지 않는 추종적인 이 규칙을 3천 년 이상이나 변함없이 지켜왔던 것이다.


한때, 이 철칙을 뒤흔들어놓은 자가 있었다. 신왕국으로 알려진 제18왕조시대의 아멘호테프 4세 왕이었다.


그는 아크나톤이라는 새 이름을 가지고 그동안의 다신 숭배 전통을 깨트리고 유일신 아톤만을 숭배했다.

당시의 그림에서 아톤 신은 태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전의 엄숙함과 딱딱함 대신, 태양의 신 아톤의 축복을 받으며 아내 네페르티티와 함께 자녀들을 사랑스럽게 껴안고 있는 모습이다.



"제18왕조 시대에 왕이 이러한 개혁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이집트 미술가들의 작품보다 훨씬 덜 엄격하고 굳어 있지 않은 외국의 작품들에 주의를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섬나라인 크레타(Creta)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곳의 미술가들은 빠른 운동감을 표현하는 데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왕궁이 19세기 말에 크노소스(Knossos)에서 발굴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원전 2천 년 전에 그렇게 자유스럽고 우아한 양식이 개발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양식의 작품들은 그리스 본토에서도 발견되었다. 미케네(Mycenae)에서 발굴된 사자 사냥용 단검은 운동감과 유연한 선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작품들이 당시 신성한 규범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었던 이집트의 장인들을 감동시켰음이 틀림없다." -68쪽


<단검> 기원전1600년경.미케네 출토

그러나 이집트 미술의 이러한 변화가 오랫동안 계속되지는 못했다. 다음 왕 투탕카멘의 통치 시대에 옛 종교가 다시 부활되었고 외부 세계로 열린 창문은 다시 닫혀 버리고 말았다. 그의 시대 이전에 천 년 이상이나 계속되었던 이집트 양식이 그 뒤로도 다시 천 년 이상 계속되었다.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이집트 여행 시의 기억과 함께 이 장을 읽어 내려갔다.

사실 처음에 당시의 이 여행의 기억을 주욱~ 끝까지 이어서 썼었다.

그런데... 마지막 퇴고를 하면서 뒤의 글을 떼어냈다.

그리고 글을 마감하는 이 자리에 다시 부쳐놓는다.

뭔가 석연치 않은 이 마음...

영원을 향한 인간의 도전이 또 어떤 형태의 미술품으로 나타나게 될지 모르지만...

다시는 현재와 미래를 담보해놓지 않았으면 한다.


"지구 어디에나 어떤 형태로든 미술은 존재한다." -55쪽




나일강을 따라 수없이 늘어선 고대 왕들의 무덤들을 차례차례 순회하면서 감탄으로 입이 쩍쩍 벌어졌었다.

그런데.. 차츰 그 입에서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루함이 몰려왔던 것이다.


강렬한 뙤약볕 황량한 사막 아래 외로이 서있는 왕가의 무덤.. 그 모습은 지구 밖 외계인의 땅을 보는 듯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내부 벽화와 겹겹이 세워진 크고 작은 동상들.. 제한된 공간에 우겨놓은 듯 박혀있는 무덤 내부와 외부 언저리의 수많은 미술품들을 짧은 시간 내에 감상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이렇게 '영원'만을 과도하게 추구하다가 현재를 낭비하고 미래를 저당 잡히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유적지의 관광객들 주변을 배회하면서 조잡한 복제 미술 잡동사니들을 들고 구매를 애원하는 이집트 어린이들의 모습은 묘한 슬픔에 젖게 했다.

그 초롱초롱한 눈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파라오의 그림이 그려진 주머니 지갑 몇 장을 샀지만..

귀국 조잡한 그것들을 기념품이라고 지인에게 차마 건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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