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세계에 눈을 뜨다

4장) BC 4세기~AD 1세기: 그리스와 그리스의 세계

by 아이얼

4.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 그리스와 그리스의 세계


3장에서 언급한 그리스 미술의 '자유를 향한 미술의 위대한 각성'은 기원전 520년 경부터 420년 경 사이의 백 년 동안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미술가들이 서서히 주목받게 된다.

당시까지 미술가들은 그저 '장인'일뿐이었다. 속물 같은 귀족들은 습관에 따라 그들을 멸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그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술의 정치적, 종교적 기능과 별도로 미술품 자체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의 세계에 눈을 뜨다!


인간의 관심이 머무는 곳에 '관찰'이 일어난다.

각 도시국가 미술가들의 작품을 비교하고 대조 분석해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철학과 변론의 장소 그리스에서 어찌 이 미술품에 대해 토론하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비교와 경쟁은 자부심 넘치는 미술대가들을 자극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그렸다 지우고, 세웠다 허물기를 반복하면서 다양한 미술 기법들을 창조해내는데 심혈을 기울였을 당시 미술가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천편일률적인 미술품 제작은 싫다! 감히 기본적인 틀을 깨뜨릴 수는 없지만.. 디테일한 부분을 약간씩 변형시킴으로써 '차이'를 느끼게 할 수는 있다. 새롭게 창조한 나의 작품을 보라. 멋지지 않은가!"


이러한 작가의 의지로 새로운 창조적 양식과 미술이 나타나고 세워졌을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단순한 도리아식 원주가 에렉테움 신전의 이오니아식 원주로 변화되고,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제국 건설로 이어진 헬레니즘 미술에서 코린트식 원주로 발전했다.

처음의 딱딱함이 우아함으로, 그리고 화려함으로 진일보했던 것이다.

이는 기능상의 변화가 아닌, 그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변화'였을 뿐이다.


이오니아식 신전 에렉테움. 기원전 420-405년경 / 코린트식 주두. 기원전 300년경


기원전 4세기 아테네 빅토리 신전 난간에 새겨진 <승리의 여신상>을 보자.


<승리의 여신> 기원전 408년. 아테네 빅토리신전


여신은 걸어가다가 느슨해진 샌들의 끈을 조이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있다. 그 멈춰 선 자태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묘사되었으며, 신체 위를 흐르는듯한 옷 주름은 또 얼마나 부드럽고 풍부한가!

이 프리즈에 나타난 부조의 기교적 완숙미가 이 조각가의 위상을 높여주었을 것이다. 이 큰 신전을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미술품의 제작자로서 더 높은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교양 있는 그리스인들은 시와 연극을 논의하던 것처럼 회화와 조각에 대해 토론했으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칭찬하고, 그것들의 형태와 착상을 비판했다. -100쪽


미술가의 위상이 세워지다


프락시텔레스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 기원전 340년경


기원전 4세기 최대의 미술가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에는 딱딱한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헤르메스 신은 매우 편안한 자세로 우리 앞에 서 있지만 그것이 그의 위엄을 손상시키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프락시텔레스가 어떻게 그런 효과를 이룩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때까지도 고대 미술의 가르침이 잊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프락시텔레스 역시 신체의 연결 고리들을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으며 그 움직임을 될 수 있는 한 분명하게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작품이 경직되거나 생동감이 결여되게 하지 않으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을 표현해낼 수 있었다.

그는 근육과 뼈가 부드러운 피부 아래서 부풀어 오르고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할 수 있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가진 살아 있는 육체와 같은 인상을 줄 수 있게 되었다.


프락시텔레스와 그리스의 다른 미술가들은 연구한 지식을 통해서 이런 아름다움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조각상들처럼 균형 잡히고 잘 생기고 살아 있는 듯한 육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 미술가들은 많은 모델들을 관찰하면서, 인물의 완벽한 인체 미학에 부합되지 않는 불규칙성이나 특징들을 빼버리고, 실제 외모를 조심스럽게 모사하면서 인체를 미화시켰다.




프락시텔레스 다음 세대인 기원전 4세기 말에 와서 미술가들은 아름다움을 파괴하지 않고도 얼굴의 표정을 살리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개개인 영혼의 활동을 포착하는 방법과 인상의 개인적 특징을 포착하는 법을 배웠으며,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의미의 초상을 만드는 것도 터득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두상> 기원전 325~300년경. 리시포스의 알렉산더 초상을 본뜬 대리석 모조품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새로운 초상화법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대왕 자신도 왕실 조각가인 리시포스(Lysippus)가 자신의 초상을 조각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당시의 가장 유명한 조각가였던 리시포스의 놀라운 사실적 표현은 동시대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가 만든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은 다음의 복제품에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데 이 작품은 델포이의〈전차 경주자> 시대 이후로 미술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차 경주자> 부분. 기원전 475년경. 델포이 출토



1506년에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이라는 군상이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비극적인 군상의 효과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이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로데스의 하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기원전 175~50년경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Laocoön)은 그의 동포들에게 그리스 군인들이 숨어 있는 목마(木馬)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트로이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이 좌절되는 것을 본 신들은 바다로부터 두 마리의 거대한 뱀을 보내어 라오콘과 그의 불행한 두 아들들을 칭칭 감아 질식시켜버렸다.


이것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무력한 인간들에게 행하는 무정하고 잔인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가망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저들의 몸통과 두 팔의 근육, 사제의 얼굴에 새겨진 고통의 표정, 괴로워하는 두 소년의 몸부림... 이 끔찍한 움직임을 하나의 영원한 군상으로 응결시키는 수법 등이 오랜 세월 동안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이 그림에 대해 저자 곰브리치는 이렇게 의심한다.


"이것은 검투사들의 싸움과 같은 끔찍스러운 장면을 좋아하는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이 미술가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바로 이때쯤, 즉 헬레니즘 시대에 와서는 미술이 오래전부터 유지해왔던 주술적·종교적 연관성을 거의 상실했던 것 같다. 미술가들은 그들의 조각 기술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극적 긴장감을 담고 있는 장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느냐 하는 문제는 한 미술가의 솜씨를 시험하는 가장 적합한 과제였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다



근대의 부자들이 미술 작품들을 수집하고, 원작품을 손에 넣을 수 없으면 유명한 작품을 복제하게 하면서까지..

작품들을 소장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헬레니즘 시대부터였다.

이는 당시에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이 제작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가들은 일상생활의 모습을 담은 회화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이 없으나 폼페이나 헤르클라네움, 스타비아와 같은 도시에서 발견되는 벽화나 모자이크 등을 통해 당대의 회화 기법을 엿볼 수 있다.


<꽃을 꺾고 있는 처녀> 1세기. 스타비아. 벽화 부분


이 그림은 마치 춤을 추듯이 꽃을 꺾고 있는 4계의 여신인 아우어스 중 한 사람을 묘사한 것이다. 우아함을 나타내는 여신의 뒷자태가 너무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또한 복잡한 도시 거주자들을 위해 전원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풍경> 1세기. 벽화, 로마 알바니 별장


특정한 시골집이나 아름다운 장소와 같은 실제적인 모습이 아니라 목가적인 풍경을 구성하는 모든 것, 이를 테면 목동과 소, 소박한 사당(祠堂)과 멀리 보이는 별장과 산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다. 이 그림에는 모든 것들이 매력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우리는 정말 평화스러운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들은 우리가 얼핏 보는 것과는 달리 사실적이지 않다.

우리는 사당과 별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혹은 사당으로부터 다리는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떨어져 있는지 짐작할 수 없다.

당시의 미술가들은 먼 곳에 있는 물건은 작게, 가까운데 있거나 중요한 것은 크게 그렸다. 이집트의 회화 기법 원칙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었다. 개별적 대상의 특징적인 윤곽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가들은 우리가 원근법이라고 부르는 법칙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원근법이 적용되기까지는 천여 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렸다.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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