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1세기~4세기: 로마, 불교, 유태교 및 기독교 미술
5장은 기원후 1세기부터 4세기까지를 이야기한다.
4장에서 언급한 그리스 헬레니즘 미술의 영향력은 대로마 제국을 건설하는 시기에도 이어진다.
로마제국에서 작업했던 미술가들은 대부분이 그리스인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로마제국 건설의 최우선 과제는 도로, 수로, 경기장, 공중목욕탕 등의 공공시설을 만드는 것이었다.
대 제국을 건설하는 그들에게 당연히 따라오는 실용적 요구였다.
이에 따라 토목 건축공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어디를 정복하든 길을 닦고, 물길을 트고, 필요한 시설을 만들어 세웠다.
당시 가장 중요한 건축의 특징은 '아치의 사용'이다.
그리스 신전의 모습과 달리 아치 벽돌을 이어 아치문을 만들고 돔 천정을 만들고...
아치형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견고함까지 더해졌으니 당대 최고 혁신 기술이었음이 틀림없다.
또 다른 특징은 '실물을 꼭 닮은 초상(肖像)' 제작이었다.
실물을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기를 원하는 심정은 아마도 영혼 보존에 대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로마제국 최대 판도를 자랑하는 트라야누스 황제 기념비에는 당시 전쟁과 승리의 모습을 담은 연대기적 그림이 새겨져 있다.
당시 로마인들은 대단히 현실적이었기에 공상적인 것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따라서 예술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전쟁의 내용을 정확히 보고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흔히 이 무렵에 고대 미술이 쇠퇴했다고 말한다지만...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로마제국을 세워나갔던 당시의 상황에서 당연한 현상이었던 듯하다.
이렇게 이야기가 담긴 그림 그리기는 인도 간다라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타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설명하는 <출가하는 석가모니> 조각, 깊은 사색에 잠겨있는 표정을 한 불상 등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전하는 데 이미지만큼 효과적인 게 또 있을까?
언어 이상의 것을 전해줄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시각 이미지'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로마 황제들은 전쟁 이야기를, 유태교인들은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 전해야 했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되도록 명확하고 단순하게 그렸다.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이 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쌓여가는 그 이야기들을 각종 이미지로 담아내고자 열심히 손놀림을 했던 당시 미술가들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이 그림 좀 보세요!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예요. 왼쪽이 바울이고요~ 오른쪽이 베드로예요. 이 두 제자가 예수께 들은 이야기가 이 두루마리에 담겨있어요! 그분은 온 땅 위에 가장 높고 뛰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세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가 하늘로 다시 올라가셨어요. 거기서 계속 우리를 지켜보고계세요!"
"우리의 황제가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 다키아 전투에서 승리했어요! 용감하게 전투만 한 게 아니라~ 이것 봐요! 이렇게 곡초도 베고 있어요. 싸우며 일하는 저들! 얼마나 훌륭합니까!!"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쳤더니... 생명수! 바로 물이 터져 나와 타는 갈증을 해결해주었어요! 이것 보세요~ 각 집으로 이렇게 줄줄 흘러들어 가고 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징표예요!!"
"바벨론의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아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진 유다 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좀 보세요! 옷깃 하나 타지 않고 멀쩡했어요! 저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셔 보호해주신 거라구요! 결국 각종 우상을 섬기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우리 하나님을 인정했어요!!"
어떤가? 마치 그림동화를 본 듯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