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인가 위압인가

6장) 5세기에서 13세기까지 : 로마와 비잔티움

by 아이얼

6. 기로에 선 미술 - 5세기에서 13세기까지 : 로마와 비잔티움


유럽 여행 가서 제일 많이 찾아가는 데가 어디일까?

관광지 베스트 101을 꼽으라면?

가는 곳마다 보게 되는 건축물은?


그것은~~~~

바로~~~~~~

교회!


각 도시마다 우뚝! 웅장함과 위엄의 자태를 두르고 서있는 대형교회 바실리카.

이 교회들을 빼고 어찌 유럽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31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한 이후, 기독교는 유럽을 형성하는 하나의 커다란 기본 축이 되었다. 이제 기독교는 이전의 작은 회당에서 나와 커다란 장소에서 유일신 하나님을 함께 경배해야 했다.

'바실리카' 크고 웅장한 대형 교회가 곳곳에 지어졌다.

사람들은 그곳에 함께 모여 거룩한 예배 의식을 치르면서 일체감을 확인받아야 했던 것이다.

<몬레알레 대성당의 후진> 모자이크화. 1190년경. 시칠리아



교회는 어떻게 꾸며져야 했을까?


"거의 모든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당에 어떠한 조상(彫像)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했다. 조상은 성경이 매도하고 있는 우상이나 이교도들의 신상과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제단 위에 신이나 성인들의 조상을 안치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인 듯했다. "-135쪽


이집트의 수많은 신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동상이나 조상을 대치하는 다른 장식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미지를 본 따 만들어진 인간이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보고 느낄 수 있는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회화다!


그림은 그들이 받아들인 하느님의 가르침을 회중에게 상기시켜 주고 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6세기 말 지금처럼 전염병으로 허덕이는 로마인들 앞에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난 대교황 그레고리우스!

그는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회화적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회유했다.


"많은 신도들이 글을 읽거나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교화(敎化)시키려면 이러한 형상들이 마치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들처럼 유용하다. 그림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책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이처럼 막강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 회화를 옹호하고 나섰다는 사실은 미술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의 가치관에 힘입어 교회 미술- 동로마 비잔틴 미술의 물꼬가 터지고 발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 당시 교회(비잔틴) 미술의 특징은 어떠했는가.


성경의 이야기는 될 수 있는 한 명확하고 단순해야 했다. 또한 주되고 성스러운 목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배제시켜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난 장에서 언급했듯이 설명조의 이야기 방식을 취하다 점차 엄격하게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태리 라벤나 바실리카 성당의 모자이크화를 보자.

무언가 권위적이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딱딱하다. 모든 인물들이 엄격하게 정면을 향하도록 배치한 그림은 어린아이들의 그림처럼 단순하다. 오랜 과거 이집트의 미술 관념이 되살아난 듯하다. 목적과 지향점에 따라 이렇게 돌고도는 미술 형태를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빵과 물고기의 기적) 520년경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바실리카의 모자이크, 라벤나,


당시 동로마는 교회가 하나로 단합되지 못하고 사분오열하였다. 녹색파, 청색파로 나뉘어 각 편의 교리를 내세워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그 사이에 정치가 개입되고..

어쩜 그래서 당시 더욱 엄격한 권위와 제재가 요구됐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동로마교회는 미술가들이 그들의 상상을 따라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결코 허용할 없었다.

그래서 나오게 된 정형화된 그림이 바로 '이콘'이었다.

<옥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예수), 1280년경. 제단화,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됨. 목판에 템페라. 815x49 cm. 워싱턴


극도의 제한성, 엄격성 아래 유형화된 성모와 성자 및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입이 다물어진다. 번쩍번쩍한 금빛 배경 앞에 엄숙한 모습으로 저 먼 곳을 응시하는 성인들! 그들 아래 한없이 작게 여겨지는 나의 존재감!

글쎄... 내게 이것은 경건함이라기보다 위압감인 것 같다.



온 마을을 두루 돌며 병자들을 고치시고~

작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어린아이를 안으시고는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하셨던~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소박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고향집에 간 듯 편안하게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 교회 건물이다.


그나저나 지금은 COVID로 발이 묶여 그 어떤 곳도 찾아갈 수가 없으니....


오! 주여~~~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우릴 pass over 하게 하소서!

재앙이 넘어가게 했던 그 피!

그 구원의 피가 되어준 어린양 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믿습니다!

아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 6)


** 그 구원은 ‘코비드에서 벗어남’ 만을 뜻하는 기복적인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