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교회의 승리 - 13세기
동유럽에서 미술 양식들이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던 것과 달리 서유럽의 미술은 새로운 해결책과 새로운 이념을 찾아 한시도 쉬지 않았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12세기를 넘기지 못하였다. 미술가들이 교회에 궁륭 천장을 만들어 새롭고 장엄한 방식으로 그들의 조각상을 배치하는 데 성공하자마자 또 다른 참신한 이념이 노르만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을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새로운 이념은 프랑스 북부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고딕(Gothic) 양식이었다. 서로 교차하는 아치를 이용하여 교회의 둥근 천장을 만드는 방법은 노르만 건축가들이 꿈꾸었던 것 이상으로 일관성 있고 보다 훌륭한 건축의 실현을 가능케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건물 전체를 떠받치는 일종의 돌의 골조(骨組)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필요한 것은 가느다란 기둥과 좁다란 늑재(助材, rib) 정도였다. 그 사이에 있는 것들은 다 없애도 상관없었다. 육중한 돌로 벽을 쌓을 필요가 없어지고 그 대신 큰 창문을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돌과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이것이 바로 12세기 후반 북부 프랑스에서 발전된 고딕식 대성당 건축의 중심 원리였다.
물론 '늑재'를 서로 교차해서 사용하는 원리만 가지고는 이 같은 혁명적인 양식의 고딕 건축을 세우기에는 불충분했다. 이러한 기적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기술적인 혁신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로마네스크 식의 둥근 아치들은 고딕식 건축가들의 목적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두 기둥 사이를 반원형 아치를 가지고 메울 경우, 그것을 해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궁륭 천장은 항상 일정한 정점(頂點)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높지도 더 낮지 도 않다. 만일 그 높이를 더 올리고 싶다면 아치의 경사를 더 가파르게 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 최선의 방법은 둥근 아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활 모양의 늑재를 접합시키는 것이었다. 첨형(尖形) 아치는 이런 발상에서 나왔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건축물의 요구에 따라서 평평하게 만들 수도, 좀 더 뾰족하게 만들어 높이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궁륭을 만드는 무거운 돌들은 아래쪽으로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를 당긴 활처럼 양 옆으로도 압력을 주게 된다. 따라서 건물 전체가 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주 강한 버팀목이 필요했다. 궁륭 천장을 가진 측랑 부분에서는 어려운 문제가 없었다.. 밖에 부벽(扶壁, buttress)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높은 신랑(身廊)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경우에는 측랑의 지붕을 가로질러 외부에서 지탱해주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건축가들은 고딕 궁륭의 뼈대를 완성시켜주는 '공중 부벽(空中扶壁, Hying buttress)'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딕 성당의 내부에 들어서서 보면 아찔할 정도로 높은 궁륭형 천장을 지탱시켜주는, 서로 밀고 당기는 복잡한 힘의 상호 작용을 이해하게 된다. 거기에는 빈 벽이나 육중한 기둥 같은 것은 없다. 내부 전체는 가느다란 기둥과 늑재로 짜여진 것같이 보인다. 그 망(網)이 천장을 덮고, 주랑의 벽을 타고 내려와 가느다란 돌 가지들을 묶어놓은 것같이 한 데 모여 합쳐진다. 창문들조차도 트레이서리(tracery)라고 알려진 엮어 짜여진 선으로 덮여있다.
이 성당들의 벽은 루비나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졌다. 기둥과 늑재, 창의 트레이서리 장식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육중하고 세속적이고 단조로운 것은 모두 다 제거되었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데 넋을 잃은 신자들은 물질세계를 초월한 천국의 신비를 이해하게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좀 더 아름다운 예배 장소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이렇게 다양한 건축 형태를 실험하게 하는 듯하다.
이 고딕식 교회들은 아주 멀리서 보아도 하늘의 영광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건물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것으로는 파리의 노트르담 (Notre-Dame) 대성당의 정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현관과 창문의 배열은 매우 명료하고, 회랑의 트레이서리 장식도 아주 우아하기 때문에 무거운 돌더미의 무게를 잊게 되며, 마치 건물 전체가 신기루처럼 우리 눈 앞에 떠오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천상의 주인처럼 현관의 좌우에 배치된 조각들도 경쾌하고 중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고딕 양식의 교회에서 한층 세련되어진 그림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성상의 모습과 표정이 섬세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조각된 아브라함, 모세, 멜기세덱을 가리키면서 신도들에게 저들의 가르침을 이해시켰을 장면을 상상해본다.
성인들을 마주 대한 듯 묵상하며 경건의 도를 닦기 위해 교회에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웅장한 살아있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진리만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 '진한 감동'을 주고자 하는 당시 미술가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하나의 형상을 실감 나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자연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성경의 이야기를 한층 더 감동적으로, 그리고 신빙성 있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작품을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신자들이 그것으로부터 위안과 교화를 받게 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근육을 기술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죽어가는 성모를 쳐다보는 그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했음에 틀림없다.
즉 각 인물들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 것이었다.
이탈리아 미술은 피렌체의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 1267-1337)에서 확인된다.
미술사 책에서는 대개 조토와 더불어 새로운 장(章)을 시작하는 것이 통례이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위대한 화가의 출현으로 완전히 새로운 미술의 기원이 시작되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토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벽화, 즉 프레스코들이다(프레스코라는 명칭은 벽에 바른 석고가 채 마르지 않은, 즉 젖어(fresh) 있을 때에 그림을 그린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1302년에서 1305년 사이에 북부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에 있는 작은 성당의 벽에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그 밑에 북유럽의 대성당들 현관에 가끔 설치되어 있는 것과 같은 선과 악의 화신(化身)들도 그렸다.
이 프레스코화는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다른 손에는 두루마리를 든 여인상으로 '신앙'의 화신이다. 우리는 이 고상한 인물상이 고딕 조각가들의 작품들과 흡사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각이 아니다. 이것은 환조 같은 느낌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그림이다. 우리는 팔의 표현에서 단축법을, 얼굴과 목에서는 입체적 표현법을, 그리고 의상의 흐르는 듯한 주름에서 깊은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조토는 평평한 평면에서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을 재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술로 성경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눈 앞에서 전개되는 것과 같은 환영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 그는 성경이나 성자들의 전설을 읽으면서 당시의 사건과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냈던 것이다.
어떤 자세로 서 있었을까? 어떻게 움직였을까? 등등...
다음의 두 그림을 비교해보자.
왼쪽의 세밀화에서 슬퍼하는 성 요한의 판에 박은 듯한 제스처와 조토의 그림에서 두 팔을 옆으로 벌린 채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있는 성 요한의 열정적인 움직임을 비교해보라.
조토의 그림에서 전면에 움츠리고 있는 인물들과 성 요한 사이의 거리를 상상해볼 경우, 우리는 즉각 그들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또 그들 모두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전면에 그려진 인물들은 모든 점에서 조토의 그림이 얼마나 완벽하게 새로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초기 기독교 미술이 이야기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모습이 완전히 보여져야 한다는 , 고대 오리엔트의 미술 개념으로 되돌아가 거의 이집트 식 미술에 가까워진 것을 기억한다. 조토는 그러한 미술 개념들을 다 무시했다. 그는 그 같은 단순한 표현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얼굴이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움츠리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똑같이 슬퍼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각 인물들이 이 비극적인 장면의 슬픔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마치 무대 위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제 사건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조토의 명성은 널리 세상에 퍼져서 피렌체 사람들은 그를 자랑으로 여겼다. 그들은 그의 생애에 흥미를 가졌으며 그의 기지와 재주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했다. 이것 역시 상당히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 전에는 그러한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물론 널리 존경을 받고 한 수도원에서 다른 수도원으로, 그리고 한 주교로부터 다른 주교에게 천거를 받는 거장들은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미술가들의 이름을 후세에까지 알려지도록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미술가들을 마치 우리가 훌륭한 가구를 만든 사람이나 재단사를 생각하듯이 생각했다. 미술가 자신들조차도 명성이나 평판을 얻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 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작품에 서명조차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우리는 샤르트르 대성당이나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나움부르크 대성당의 조각 작품들을 만든 거장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이들이 그 당대에 충분히 평가받았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그러한 명예는 그들이 봉사했던 대성당으로 돌렸다. 이러한 점에서도 피렌체의 화가 조토는 미술의 역사상 완전히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의 시대 이후로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뒤이어 다른 나라에서도 미술사(美術史)란 위대한 미술가들의 역사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미술가의 일생을 바친 거룩한 열정적 연구가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업적으로 남았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낀다. 책을 읽어서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되니 그동안 교회에서 보았던 수많은 작품들에 의미가 담겨진다.
이제 다시 유럽의 중세 교회들을 방문하게 된다면 부조물 하나하나에 담긴 그 수고들을 곱씹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