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의 마지막, 신에서 인간으로

11장) 귀족과 시민 - 14세기

by 아이얼

'장식적 양식(Decorated Style)'의 등장


14세기 - 거대한 대성당의 시대가 지나가려 하고 있다.

변화가 일게 된 것이다.

도시가 발전함으로써 상업이 번성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농부들 중심의 봉건 영주에서 벗어나 사치가 있는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이제 천편일률적인 생활에서 벗어나게 된다.

(14세기의 기사, 시골 유지, 수도승 및 장인들이 등장하는 영국 작가 초서의 서사시 <캔터베리 이야기>에 당시의 다양한 생활상이 잘 그려져있다고 하니 이참에 꼭 읽어봐야겠다.)


그래서 고딕 양식의 교회도 기존의 화려하고 장대함에서 발전하여 조금씩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게 된다. 무언가 다듬어지고 정교한, 세련된 미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장식적 양식(Decorated Style)'이 등장하게 된다.

영국의 엑서터 대성당의 서쪽 창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엑서터 대성당의 서쪽 정면> 1350-1400년경,

교회 외관 창문의 트레이서리 장식, 출입구를 중심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 부조상의 배치 등..

무언가 다르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처럼~

같은 고딕 양식의 교회인데도 느낌이 다르다. 특히 벽 전체를 부조상으로 장식한 외양은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마냥 자연스럽다. 교회를 드나드는 마음이 훨씬 더 경쾌해지지 않았을까 상상이 된다.




또한 건축의 용도가 확장되었다. 날로 발전하는 도시에서는 교회 이외의 공공건물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청 청사, 대학, 궁전, 다리와 성문 등등... 다양한 건물들이 건축되었다.

이 중 대표적 건물이 베네치아에 있는 도제 궁(두칼레 궁전)이다.

베네치아를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곤돌라를 타고 이 도제 궁 앞의 다리 밑을 지나가며 감상했을 터이다.


<베네치아의 도제 궁(두칼레 궁전)> 1309년 착공



고딕 장인 - 귀족과 부자들을 위한 장식품을 만들다


14세기의 가장 특징적인 작품들은 당시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조각, 귀금속이나 상아로 만든 소품(小品)들이었다. 이는 기존 교회에서만 필요한 작품들이 아니었다. 이제 일반 귀족이나 신흥 부자들의 집에도 , 관공서에서도 다양한 장식품들이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성모와 아기 예수, 1324-39년경. 1339년, 금도금한 은과 에나멜 및 보석류, 높이 69 cm, 파리 루브르

이 조각상은 프랑스의 한 금세공사가 은에 금도금을 하여 만든 작은 성모상이다.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은 공중(公衆)의 예배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 대저택의 예배실에 안치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대성당의 조각품들처럼 엄숙한 초연함 속에서 진리를 펴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로움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들어졌을 것이다.


파리의 이 금세공사는 성모를 진짜 어머니로, 그리고 예수를 어머니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는 실제의 어린아이로 표현했다. 성모는 아기 예수를 안기 위해서 팔을 엉덩이에 받치고 머리는 아기 예수 쪽으로 약간 숙이고 있다. 이렇게 해서 몸 전체가 S자형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딱딱하고 엄숙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정교하게 처리된 모든 세부 묘사 - 성모 손의 아름다움, 오른손 위로 흘러내리는 옷 주름, 아기 예수 팔에 있는 작은 주름살, 금도금한 은과 에나멜의 놀라운 표면 처리, 또한 길고 가느다란 성모의 몸에 얹힌 두상의 정확한 비례...

이 모든 것에서 작가의 세심한 미의 탐구와 지극한 정성을 엿보며 감탄하게 된다.

위대한 고딕 장인들의 이런 작품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다


미술가들이 성경 이야기를 담은 그림에 식상해질 무렵, 개인의 이야기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메인은 아니지만 실생활을 그려 넣는데 훨씬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엄격함이 슬슬 풀리기 시작하면서 그림도 차츰 변화했다.


시인들이 등장한다. 영국에서 초서가 <캔터베리 이야기>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단테가 <신곡>을 노래한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성경의 인물들 못지않은 상상력과 관찰력이 담겨있다.


사고가 확장되면 표현도 다양해지는 것이다. 미술가의 그림이나 조각들, 장식품들이 전형에서 벗어나 제각기의 개성을 발휘하게 되었다.


<성전에서의 그리스도; 매사냥 놀이>, 1310년경. (메리 여왕의 기도서)의 한 페이지, 런던 대영 박물관


이 그림의 아래 부분은 당시의 일상생활에서 따온 소재로서, 매를 이용해서 오리를 잡는 장면이다.

매 한 마리가 오리 한 마리를 덮치고 있고, 다른 두 마리는 날아서 도망치고 있다. 이를 보고 말을 타고 있는 남녀와 그 앞에 있는 소년(어린 예수)이 기뻐하고 있다.


이 화가는 윗부분의 그림을 그릴 때는 열두 살 먹은 소년을 직접 보고 그리지 않았겠지만, 아래 그림을 그릴 때는 매와 오리를 실제로 보고 관찰해서 그렸던 것 같다. 아마 그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누가복음 2장- 12세의 예수가 성전에서 성경말씀을 당시 랍비들과 나누었던 일화)를 너무 경외한 나머지 그의 사실적인 관찰에 대한 것을 위의 그림에는 도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 두 가지 장면을 별도의 것으로 분리시키려 했다. 즉 위의 그림에서는 번잡한 세부 묘사를 없애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제스처로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한편, 아래에서는 이것이 초서(Chaucer)가 살았던 시대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실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우아한 설명과 충실한 관찰이라는 두 요소들이 점차 하나로 융합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14세기 미술에 끼친 '조토'의 영향력


이 책의 저자 곰브리치는 이 시대의 미술에 끼친 '조토'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에서는 조토의 미술이 회화의 모든 개념에 변화를 일으켰다. 고대 비잔틴 양식이 갑자기 딱딱하고 구식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탈리아 미술이 유럽의 나머지 지역과 갑자기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와는 반대로 조토의 개념은 알프스 이북의 여러 나라에서 영향력을 넓혀갔으며 반면에 북쪽의 고딕 화가들은 남유럽의 거장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조토 미술의 영향이 없었다면 14세기 생활 묘사의 풍조가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모네 마르티니와 리포 멤미, <수태 고지>1333년.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 , 목판에 템페라, 피렌체 우피치


토스카나 마을 시에나의 시모네 마르티니와 리포 멤미가 그린 이 그림은 대천사 가브리엘이 하늘에서 내려와 성모 마리아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가브리엘이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Ave gratia plena)"라는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그의 입 주위에 그 말을 직접 써놓았다. 그의 왼손에는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가 들려있고, 무슨 말을 시작하려는 듯 오른손을 들고 있다. 성모는 책을 읽고 있던 중 천사의 출현으로 매우 놀라고 있다. 그녀는 두려움에 젖은 몸짓으로 움츠리면서 하늘에서 온 사자(使者)를 주시하고 있다. 둘 사이에는 처녀성의 상징인 흰 백합이 꽂힌 꽃병이 놓여 있고, 중앙의 뾰족한 아치 밑에는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가 네 날개를 가진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 거장들도 앞에서 본 프랑스와 영국의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섬세한 형태와 서정적인 감정을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흘러내리는 의상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느다란 몸매의 미묘한 우아함을 즐겨 그렸다. 이 그림은 각 인물들이 황금색 배경을 바탕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하나의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도록 기교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금세공사의 값비싼 작품처럼 보인다. 각 인물들을 패널의 복잡한 형태 속에 조화롭게 배치한 방식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 두 화가들은 이 기술을 중세의 전통에서 습득했다.


앞 장에서 중세 미술가들이 만족스러운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의 상징들을 배열한 방법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러한 효과는 사물의 실제 형상과 비례를 무시하고 공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능했다. 이 시에나 미술가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러한 수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그림의 인물상에서 비스듬하게 째진 눈과 곡선을 이루는 입 등 약간 어색한 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조토의 업적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령 꽃병을 보면 그것은 돌로 된 바닥 위에 놓여 있는 진짜 꽃병이며, 그것이 천사와 성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 배경 속으로 파묻힌 성모가 앉아 있는 의자도 실제의 의자이고 그녀가 들고 있는 책도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페이지 사이에 명암이 들어간 실제의 기도서이다.



<리처드 2세를 아기 예수에게 천거하는 세례자 요한, 참회왕 에드워드 및 성 에드먼드> 윌튼 두폭화, 1395년경. 목판에 템페라, 각각 47.5×29.2 cm, 런던 국립미술관


이 그림은 프랑스의 대가가 영국 왕을 위해 그린 <월튼 두 폭 화>(Wilton Diptych)이다.

이 두폭화는 여러 가지 이유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하나, 실제의 역사적인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둘, 그 대상이 보헤미아 앤 공주의 불행한 남편 리처드 2세라는 것이다.


리처드 2세는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세례 요한과 두 명의 왕실 수호성인들이 그를 성모에게 천거하는 것같이 보인다. 성모는 천국의 꽃으로 덮인 초원에 서서 왕의 표시인 황금뿔을 가진 하얀 수사슴을 가슴에 단 아름다운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아기 예수는 왕에게 축복을 내리거나 환영하듯이 그리고 그의 기도를 들어줄 것을 확약하듯이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있다.

당시 왕은 언제나 성인 같은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거칠고 혼란한 삶 속에서 미술가의 기교를 빌어 만든 자신의 초상을 궁에 걸어두고, 성자나 천사들과 늘 기도드리고 있다는 환상을 갖지 않았을까?

<윌튼 두폭화>가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아름답게 흐르는 선과 우아하고 섬세한 주제를 어떻게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는 쉽게 알 수 있다. 성모가 아기 예수의 발을 만지는 포즈나 길고 가느다란 손을 가진 천사들의 몸짓은 앞에서 본 인물들의 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이 화가가 패널의 오른쪽에 보이는 무릎을 꿇고 있는 천사의 자세에서 어떻게 단축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또 상상의 천국을 장식하는 수많은 꽃에서 그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연구의 결과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술가들의 뛰어난 관찰력으로 묘사되는 주변 세계


당시의 미술가들은 이와 같은 관찰력과 아름답고 섬세한 사물에 대한 그들의 취향을 그들 주변 세계를 묘사하는 데 적용했다. 중세의 달력에는 달마다 바뀌는 일, 즉 씨를 뿌리고 사냥을 하고 추수를 하는 작업 광경을 그리는 것이 관례였다.

부르고뉴의 한 부유한 대공이 랭부르(Limbourg) 형제의 공방에 주문해서 만든 기도서에 붙은 달력의 세밀화는 귀족들의 연례행사인 봄 축제를 보여주고 있다.


랭부르 형제(폴과 장). <오월> 1410년경. <베리 공작의 기도서-매우 행복한 시절> 중에서, 샹티이 콩데 미술관

그림 속 인물들은 꽃과 나뭇잎을 휘감은 채 화려한 옷차림으로 말을 타고 숲을 지나고 있다. 우리는 이 화가가 당시에 유행하던 옷을 입은 귀여운 아가씨들의 광경을 얼마나 즐겁게 그렸는지, 그리고 전체의 화려한 광경을 한 페이지에 담는 데 대해 얼마나 기쁨을 누렸는지를 느낄 수 있다. 팡파르를 울리며 숲 속을 지나가는 이들의 몸짓과 우아한 차림새, 말과 강아지들의 경쾌한 동작들이 유쾌한 봄날의 신나는 풍경을 한껏 전달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기법은 이전의 화가들이 사용했던 상징적인 방법을 통한 이야기 전달에서는 멀리 벗어나 있다. 인물들이 움직이는 공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었던 대신, 주의 깊은 세부 묘사를 통해서 현실감을 얻어내고 있다. 배경으로 그린 나무도 자연에서 보고 그린 진짜 나무들이 아니라 나란히 서 있는 상징적인 나무일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의 매력적인 인물상의 공식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주변 생활의 화려함과 유쾌함에 대한 그의 관심은 중세 초기의 미술가들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술가들의 관심이 '가장 명료하고도 인상적으로 성경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 무엇인가'에서 '자연의 일면을 가장 충실하게 재현하는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으로 점차 변해갔던 것이다.


미술가들의 역할과 임무는 변했다. 전에는 성경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을 묘사하는 고대의 공식을 배우고, 이러한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기술을 추가로 습득해야 했다.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스케치를 할 수 있어야 했고, 그것을 그의 그림에 옮겨 담을 수 있어야 했다. 이제 미술가들은 스케치북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희귀하고 아름다운 동식물들의 스케치를 비축해두어야 했다.


안토니오 피사로, <원숭이 습작>, 1430년경. 스케치북 중에서, 종이에 은필, 20.6x21.7cm, 파리 루브르


북부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피사넬로(Antonio Pisanello : 1397-1455)가 앞에 소개한 랭부르 형제의 세밀화보다 불과 20년 뒤에 그린 이 같은 소묘는 당시 미술가들이 얼마나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동물을 연구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일반 사람들도 자연을 묘사한 화가의 기교나, 그림 속에 얼마나 많은 양의 뛰어난 세부 묘사가 들어있는가에 따라 미술가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술가들은 자연의 관찰을 통한 꽃이나 동물의 세부 묘사에 숙달된 표현 기술에서 만족하지 않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시각의 법칙을 개척하고, 고대 그리스 미술가들처럼 인체에 대한 탐구를 하면서 충분한 지식을 쌓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새롭게 조각과 그림을 제작하려 하였다.


이렇게 '중세 미술'은 서서히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제 곧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대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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