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전투적인 교회 - 12세기
이런 미술사 책을 읽으면서 꽉 막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바로 건축 양식에 관한 명칭이나 세부구조에 대한 설명이다. 답답하다.
로마네스크 양식(영국에서는 노르만 양식이라 호칭)의 바실리카(대성당을 말하는 것이라 지난 회에 언급했었다) 내부 구조의 특징을 이야기하는데...
직접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명확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물론 인터넷 검색해가며 사진 대조해 파고들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듯하여 생략하기로 한다.
그것보다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기억하고자 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당시의 교회 모습을 보라! 과연 그 중후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소박한 마을에 열 지어 우뚝 솟아있는 십자가 첨탑의 외양은 가히 전투적인 기상을 세워주는 듯하다.
"이교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 막 기독교로 개종한 농민과 전사의 땅에 세워진 이 강력하고 도전적인 석조건물들은 '전투적인 교회' 즉 이 지상에서 최후의 심판 날 승리의 여명이 밝을 때까지 암흑의 세력과 싸우는 것이 교회의 의무라는 관념을 표현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173쪽
남프랑스의 아를(Arles)에 있는 12세기 말의 성 트로핌(Trophime) 대성당의 현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장 완전한 예 중의 하나이다. 이 형태는 로마의 개선문의 원칙을 상기시켜준다. 팀파눔 (tympanum)이라고 불리는 현관의 상인방(上引, lintel) 윗부분에서 우리는 네 복음서 저자들의 상징인 사자, 천사, 독수리, 황소에 둘러싸여 있는 영광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이 네 개의 상징들, 즉 사자는 성 마르코, 천사는 성 마태오, 독수리는 성 요한, 황소는 성 루가로 이것은 성서에서 유래한 것이다. 구약 성경에는 에스겔의 환상(에스겔 1장 4-12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에스겔은 인간과 사자와 황소와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네 가지 동물들이 운반하는 하나님의 왕좌를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 구절이 네 사람의 복음서 저자를 의미하고 그러한 환상이 교회의 입구에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상인방에는 열두 제자들의 좌상(坐像)이 새겨져 있고, 그리스도의 왼쪽 아래로 쇠사슬에 얽매인 벌거벗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이들은 지옥으로 끌려가는 길 잃은 영혼들임을 알 수 있으며 오른편 아래로는 영원한 기쁨 속에 얼굴을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천국에 올라간 사람들이 일렬로 새겨져 있다. 그 밑에 성인들의 엄격한 모습들이 보이는데 각 상은 그의 독특한 상징으로 표시되어 있어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이 최후의 심판자 앞에 섰을 때 중재해줄 수 있는 성인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지상에서의 우리들의 삶의 최종적인 목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이 교회의 현관에 새겨진 조각들 속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조각은 설교자의 설교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았다.
중세 말의 프랑스 시인 프랑수아 비용(Francois Villon)이 그의 어머니에게 바친 시에서 이 효과가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
저는 가난하고 늙은 여자입니다. 아주 무식해서 읽을 줄도 모릅니다.
그들은 우리 마을 교회에서
하프가 울려 퍼지는 천국과
저주받은 영혼들을 끓는 물에 튀기는 지옥의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는 나에게 기쁨을 주지만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줍니다
다음의 사진을 보면서 이해해보도록 하자.
괴물과 용들의 서로 꼬인 모양의 이 금 촛대를 보자. 촛대의 맨 윗부분에 새겨진 라틴어 명문은 대충 이러한 의미이다. “이 빛을 담는 그릇은 미덕의 산물로 빛을 발함으로써 그 빛이 인간으로 하여금 악에 눈이 멀지 않도록 교리를 설교한다." 실제로 이 괴상한 동물들이 뒤엉켜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서도 교리를 표시하는 복음서 저자들의 상징들(불쑥 나온 중간 부분)뿐만 아니라 벌거벗은 인간 상들도 볼 수 있다.
즉 '어둠 속을 비치는 빛'이 그들로 하여금 악의 세력을 누르고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의 리에주(Liege)에 있는 한 성당의 놋쇠로 만든 이 세례반(洗禮盤, 1113년경)은 중앙 부분에 그리스도의 세례가 양각(陽刻)으로 새겨져 있다. 거기에는 모든 인물들의 의미를 설명하는 라틴어 명문이 함께 새겨져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를 맞이 하기 위해서 요단강 강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의 머리 위에 구원의 천사들(Angelis ministrantes)'이라는 명문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세례반은 바다를 상징한다. 이 세례반을 떠받치고 있는 황소들조차도 모두 의미를 담고 있다.
구약 성경 역대기하에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 내부 제단의 장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다.
그다음 그는 바다 모형을 둥글게 만들었다. 한 가장자리에서 다른 가장자리에까지 직경이 십 척,... 바다는 이 열두 마리의 소 등에 얹혀 있었는데, 세 마 리는 북쪽을 바라보고 세 마리는 서쪽을 바라보고 세 마리는 남쪽을 바라보고, 세 마리는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 소들은 모두 궁둥이를 안쪽으로 하고 등으로 바다를 떠받치고 있었다. (역대하 4:4)
바로 이러한 말씀들에 근거하여 리에주의 미술가가 2000년 전 솔로몬의 성전을 그대로 재현해낸 것이다.
즉 성경의 말씀이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회화는 그림을 통해 말씀을 읽는 형식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다음의 끔찍한 그림을 보자.
이 달력을 그린 화가는 머리가 잘려 우물 속에 던져진 성 게레온 (Gereon)과 그의 동료들을 우리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 머리가 없는 몸체들을 중앙의 우물 주위에 가지런히 배치했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를 따르던 일만 일천 명의 처녀들과 같이 이교도들에게 학살당했다고 하는 성 우르술라(Ursula)는 그녀의 추종자들에게 빽빽이 빙 둘러싸여 왕좌에 앉아 있다. 활과 화살을 가진 추한 야만인과 칼을 휘두르는 남자 한 사람이 그림의 틀 밖에서 성인을 겨냥하고 있다. 우리는 억지로 이 그림을 머리에 떠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중세의 미술가들은 보다 단순화된 표현 방법을 보다 복잡한 형식의 구성으로 담아냈다.
즉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는 새로운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표현 형식들이 없었다면 당시 교회의 가르침은 결코 가시적인 형상으로 전수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성모의 수태 고지(受胎告知)를 묘사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이집트의 부조처럼 딱딱하고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성모는 정면을 향해 놀란 듯이 두 손을 들고 있으며 성령(聖靈)의 표상인 비둘기 한 마리가 높은 데서 날아와 성모 위에 내려앉는다. 천사는 반쯤 옆모습을 보이며 오른손을 위로 뻗고 있는데 중세 미술에서는 이는 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이런 그림을 보면서 실제 장면의 생생한 묘사를 기대한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 화가는 자연 형태의 모방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태 고지의 신비를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또한 색채 선택에 있어서도 기존 개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금세공 작품들의 빛나는 황금색과 맑은 푸른색, 필사본의 삽화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색깔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의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과 짙은 초록색들은 당시 미술가들이 얻은 '자유'를 잘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계를 곧이곧대로 모방할 필요가 없어진 작가들의 그 자유함으로!
초자연적인 영적 세계의 관념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를의 성 트로핌 성당은 재작년 여름 단체여행 중 밤에 잠깐 들른 기억이 나지만... 그때는 별 감흥 없이 지나쳤었다.
도로 사정으로 예정 스케줄이 어긋나 저녁 식사 후 밤에 스치듯 잠깐 들렀으니 말이다.
어떤 장소나 건물이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건, 그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그때 오늘 살펴본 내용들을 알았더라면, 성당 정면 입구의 부조물이라도 꼼꼼히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저 건너편의 고대 원형경기장 유적지 앞에서(밤이라 내부도 못 들어가니ㅠㅠ) 사진 몇 장만 찍을 뿐이었다.
주변 골목길 따라 늘어선 밤의 카페 앞에서 고흐의 흔적만 살펴댔었다...
미술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들은 참 다채롭고 신비하다.
엄격한 통제로 구속되었을 때도
설익은 자유로 해방되었을 때도
'인간의 미술'은 멈춰지지 않는다.
옛날 옛적에 저들이 남겨놓은 미술품을 공부하는 지금의 내게
여전히 전달되는 저들의 영혼과 감성...
이러한 나의 몸짓도 '미술'이라고
문득 외치고 싶다!
아~~ 끝이 없는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