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냐 복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8장) 혼돈기의 서양 미술 - 6세기부터 11세기까지 : 유럽

by 아이얼

8. 혼돈기의 서양 미술 - 6세기부터 11세기까지 : 유럽


서로마 제국 붕괴 이후의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암흑시대'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중세 암흑시대'는 로마 가톨릭의 부패로 교회가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 500~1500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검색해보면 그레고리우스가 로마 교황권을 확립한 590년부터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기까지의 기간이라고 설명되어있다.

'영의 세계는 빛을 잃고 로마 가톨릭의 교권과 부패가 만연했던 시대'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곰브리치의 책 목차를 주욱 훑어보니 8장부터 17장까지 소위 말하는 '중세 유럽 암흑기의 미술'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당연히 당대의 작품에서 기독교의 사상과 윤리, 생활상 등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메이저가 있으면 마이너가 있다.


당시 교회를 이끌어나가는 교황과 정치세력의 직접적 그늘에서 벗어난 자들의 집합장소가 되어준 수도원과 수녀원들을 새삼 주목해보게 된다. 그곳에서 은둔하면서 성서를 탐구하고, 관련 미술품을 제작하고 보급하고자 했던 마이너 성직자들의 미술 행위를 연상해보게 된다. 메이저 세력이 현장에서 저들의 권위와 세력을 세우느라 피 튀기는 각축전을 치르는 동안 말이다.


오늘 보는 8장에서는 11세기까지의 '암흑기 초기'를 살펴보고 있다.



- 성경 필사본 제작 -


당대의 미술가들이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필사본의 삽화에 그려놓은 다음의 인물상을 보면 놀랍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같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형상으로 만든 이상한 문양같이 보인다.


우리는 미술가가 옛날 성경에서 찾아낸 어떤 표본을 사용해서 그것을 그의 취향에 맞게끔 변형시켰음을 있다. 그는 서로 엉킨 리본처럼 옷의 주름을 변경하고 심지어는 머리카락과 귀까지도 소용돌이무늬로 변형시켜서 전체의 얼굴을 경직된 가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필사본에 그려진 이러한 복음서 저자들과 성인들의 형상은 원시인들의 우상처럼 딱딱하고 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림들을 단지 조잡하다고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성 루가>, 750년경. 필사본 복음서의 한 페이지, 성 갈렌 수도원 도서실


미술가들은 그들의 전통으로 훈련받은 눈과 손으로 필사본 위에 아름다운 문양을 그릴 있었으며, 이로써 서유럽 미술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시킬 있었다. 영향이 없었다면 서유럽 미술은 비잔틴 미술과 같은 그런 방향으로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가지 전통, 고전적인 전통과 토착 미술가들의 취향이 서로 충돌하는 바람에 무엇인가 다양한 문양이 서로에게 엄격하게 대응하며 디자인과 색채의 복잡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있다.


이런 복잡한 구성을 어떻게 감히 생각해낼 있었으며 이것을 완성시킨 끈기와 인내는 얼마나 대단한가. 이는 고유의 토착적인 전통을 몸에 익힌 미술가들의 솜씨와 테크닉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린디스판 복음서의 한 페이지> 698년경. 런던 대영 박물관



왼쪽 : <성 마태오>, 800년경. 필사본 복음서의 한 페이지, 빈 미술사 박물관 / 오른쪽 : <성 마태오>, 830년경.에페르네 시립 도서관.



- '예술 창조' 보다는 '복음 전달'이 우선 -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책이 해주는 역할을, 그림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다”

전 장에서 언급되었던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이 가르침을 기억한다.


이처럼 '성경 속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도구'로써의 그림이기에 보편성이 요구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정형화된 표본이 세워져야 했고, 그 표본에 따라 복음의 내용을 설명해가면서 일반인의 신앙을 다질 수 있었다.

이러한 뚜렷한 목적 아래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해주는 화법이 개발되었을 것이다.

예술이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효과적 복음 전달의 수단이 되려면 절대 어려우면 안 되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식자도, 무식자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고 명료한 그림이나 부조, 태피스트리...

그런 미술품을 제작하는 이들의 손길이 지금의 영상물 제작자들의 수고와 다를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 뒤에 사도들의 발을 씻겨주는 요한복음(13장 8-9절)에 나오는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사도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리스도>1000년경. 《오토 3세의 복음서)의 한 페이지. 뮌헨 바이에른 국립 도서관

베드로가 “안됩니다.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라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라고 하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주님,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베드로의 간청하는 몸짓과 예수의 조용히 꾸짖는 모습, 오른쪽에서 제자 한 사람이 신을 벗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대야를 가져오고, 또 그 밖의 사람들은 베드로의 뒤에 모여 서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화면의 중앙에 고정되어 있어서 무엇인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대야가 정확한 원형이 아니라든가, 또는 발을 분명히 물속에 넣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베드로의 다리가 비틀렸다든가, 무릎이 다소 정면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겸허한 가르침 뿐이었고 또 그는 이것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타락한 아담과 이브>,1015년경. 힐데스하임 대성당의 청동문 부조 부분


이 도판은 1000년 직후에 독일의 힐데스 하임(Hidesheim) 대성당을 위해서 제작한 청동제 문의 일부분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과 이브에게 다가가 꾸짖는 장면이다.


이 부조에도 성경의 이야기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의미를 갖는 사물들만을 강조해서 인물상들이 단순한 배경으로부터 한층 더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제스처가 의미하는 바를 금방 읽어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을 가리키고, 아담은 이브를, 이브는 땅 위의 뱀을 가리키고 있다.


죄의 전가와 악의 근원이 너무나도 힘차고 명확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인물들의 비례가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고 아담과 이브의 육체가 우리의 기준으로 보아서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것도 간과하게 된다.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에게충성을 맹세하는 해롤드 왕과 그 후 영국으로 돌아가는 그의 귀향 장면>, 1080년경.바이외 태피스트리의 부분,바이외 태피스트리 미술관


이 태피스트리는 전쟁과 승전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쓰인 명문(銘文)이 말해주듯이 해롤드 왕이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에게 어떻게 충성을 맹세했고(왼쪽 도판) 또 그가 어떻게 영국으로 돌아왔는지를 볼 수 있다(우측 도판).


좌측은 윌리엄 공이 왕좌에 앉아서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서 성스러운 유물에 손을 올려놓고 있는 해롤드 왕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윌리엄 공이 영국에 관한 그의 권리를 주장하는 구실로 이용한 것이 바로 이 맹세였다.


우측 장면에 나오는 발코니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보라! 그는 손을 눈 위에 얹고 멀리서 도착하는 해롤드의 배를 망보고 있다. 사실 그의 팔과 손가락들은 상당히 이상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아시리아나 로마의 연대기를 그린 화가들의 그림과 달리 작고 이상한 마네킹 같은 모습들이다.


이 시기의 중세 화가는 모사한 모델이 없었을 것이므로 마치 아이들처럼 그렸다. 그는 이렇게 간결하게,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된 것만을 중점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한 편의 서사시(敍事詩)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 결과는 아마도 오늘날의 뉴스나 텔레비전의 사실적인 보도보다 훨씬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렇게 중세 암흑기 전반부의 미술을 둘러보았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가 고심하는 중에

예술적 감흥까지 얹힐 여유가 생겼더라면...

한층 위대한 예술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제도적, 사회적 관습에 무조건 따르는 예술 행위는
표본과 원칙을 벗어나
'창조의 날개'를 달기가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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