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권력과 영광의 예술 1 - 17세기 후반과 18세기 : 이탈리아
16세기 후반 델라 포르타가 설계한 예수회 교단의 교회에서 시작된 바로크 양식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화려한 장식으로 인상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그 기법에 끌려서 오히려 점점 더 복잡하고 과감한 아이디어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크 - '일그러진 진주'처럼 기괴스럽다고 비하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길로 나아가는 심리는 무엇아었던 걸까?
"흉보면서 따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 속성인 듯하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서는 건물과 장식에 대해 더욱 새롭게 반짝이는 구상들이 하나하나 축적되어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바로크 양식이 완전히 발전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다음은 당시 유명한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그의 조수들과 건립한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의 교회이다.
이 교회당의 기본 틀은 르네상스 형태이다. 보로미니는 중앙 입구를 고대 신전의 정면 형태로 만들고 양쪽으로 벽기둥의 수를 배로 늘렸다. 거대한 둥근 지붕을 만들고 그 양쪽에 두 개의 탑과 정면을 세움으로 해서 서로 다른 형태들을 한데 모아 교회를 구성했다. 두 개의 탑 아래층은 사각형이고 위층은 원형이며 이 두 개의 층이 이상하게 파괴된 엔타블레이처로 연결되어 있다. 중앙 현관 양 옆에 있는 문틀은 더욱 놀랍다. 입구 위의 페디먼트(pediment)가 타원형 창문틀을 만들기 위해서 장식되어 있는 방법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바로크 양식의 소용돌이 장식과 곡선이 건물의 전반적인 설계와 장식적인 세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는 교회가 축제 장소처럼 흥겹게 보이고 화려함과 운동감이 가득한 건물이 되기를 원했다. 아름다운 빛과 화려한 구경거리로 가득 찬 세계에 관한 환영으로 관중들을 즐겁게 만드는 극장처럼, 교회도 성도들에게 천상을 연상시키는 보다 으리으리하고 영광스러운 곳이 되길 바랬던 것이다.
교회 내부는 더욱 화려하다. 온통 황금빛으로 치장되어있고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되어있다.
“가톨릭 세계는 중세 초기 미술에 부여했던 단순한 임무, 즉 글을 못 읽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역할 이상으로 미술이 종교에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술은 글을 못 읽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너무 많이 읽은 사람들까지도 설득해서 개종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많은 건축가, 화가, 조각가들이 교회를 변형시켜 그 찬란함과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를 거의 압도해 버리는 거대한 장식물로 만들기 위해서 소집되었다. 교회당 내부에서 중시되는 것은 세부가 아니라 교회 전체가 주는 전반적인 효과이다.”
이렇게 웅대하고 화려한 교회 제단 위에 촛불이 켜져 있고, 분향의 향기가 교회 내부에 감도는 가운데 오르간과 성가대의 선율이 흐르는 장엄한 미사에 참석한다면... 누구라도 그 효과를 실감할 수 있을 듯하다.
베르니니는 다방면으로 뛰어난 아티스트였다.
다음 도판은 한 젊은 여자의 흉상으로 베르니니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다음은 곰브리치가 이 작품을 직접 보고 난 감상을 적은 글이다.
내가 피렌체의 한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 한 줄기 햇살이 이 흉상 언저리를 비추고 있었는데, 마치 그 여인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베르니니는 그 여인의 가장 특징적인 순간의 표정을 포착했음에 틀림없다. 얼굴 표정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아마도 베르니니를 능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렘브란트가 인간의 행동에 관한 그의 심오한 지식을 이용했듯이 베르니니는 얼굴 표정의 묘사를 활용하여 그의 종교적 체험에 시각적인 형태를 부여하고 있다.
실제로 보지 못한 나로서는 위 내용이 그렇게 실감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여인이 누구일까?" 궁금해져서 찾아보았더니
콘스탄차는 바로 베르니니가 사랑했던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지된 사랑! 그녀는 제자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극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베르니니의 동생이 이 여인과 밀회하며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이 발각되고... 분노한 베르니니는 동생에게 폭행을 저지르고, 부하집사를 시켜 콘스탄차의 고운 얼굴에 칼로 생채기를 내게 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법정에 선 베르니니는 당시 그의 든든한 후원자 교황 덕분에 풀려나긴 하였지만...
평생 '간통한 자'라는 낙인이 찍혀져 살아갔을 것이다.
끔찍한 막장 드라마같은 이야기...
이를 알고나니 베르니니의 작품들에 담겨있는 광기어린 표정이나 역동적 움직임의 뿌리를 알것 같다.ㅠㅠ
위 도판은 로마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의 부속 예배실을 장식하기 위해 베르니니가 만든 제단이다. 이 제단은 스페인의 성 테레사에게 봉헌된 것이다.
성 테레사는 16세기의 수녀로 그녀가 본 신비스러운 환영을 쓴 유명한 책을 남겼다. 테레사는 책에서 "주님의 한 천사가 황금으로 된 뜨거운 화살로 자기 심장을 꿰뚫자 아픔과 함께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로 충만됨을 느꼈다."라고 기술했다. 베르니니는 바로 이 황홀한 순간의 광경을 조각과 장식으로 담아낸 것이다.
우리는 그 성녀가 구름을 타고 황금빛 햇살의 형태로 위로부터 쏟아지는 빛줄기를 향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광경을 본다. 천사가 공손하게 그녀에게 다가서고 있으며 성녀는 기절한 채 황홀감 속에 빠져 있다.
이 조각상에서 특이한 점은 옷 주름 처리 방법이다. 이전의 흘러내리는 듯한 옷 주름이 아니고 몸부림치듯 펄펄 날리게 표현했다. 아주 강렬한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베르니니는 고대 신화를 소재로 한 조각상도 다수 제작했다.
위 도판에서 보듯 각 인물의 섬세한 표정 묘사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신화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극작가이기도 한 베르니니 다운 상상력으로 이렇게 드라마틱한 조각상을 연출 제작할 수 있었으리라!
정말 감탄스럽다!!
바로크의 극적인 미술 양식은 교회 천장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위 도판은 바티스타 가울리가 제작한 로마의 일 예수회 교회의 천장 장식이다. 조각과 회화가 하나의 그림을 이루어, 한 세기 전 코레조가 창안한 열린 천장의 착시 효과를 더욱 극적으로 연출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한 회화와 조각의 콜라보레이션은 당대 바로크 양식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 천장화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을 찬미하는 것으로서 예수의 이름이 교회의 중앙에 금빛 찬란한 글자로 새겨져 있다. 그 주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천사(智天使), 천사, 성인들이 황홀경 속에서 빛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악마와 타락한 천사들의 무리가 낙심천만한 몸짓으로 천국에서 내쫓기고 있다. 이 혼잡한 장면은 천장의 틀을 부수고 튀어나올 듯이 보인다. 천장에는 성인들과 죄인들을 교회로 실어내려 올 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
18세기 이탈리아 미술가들은 대부분 뛰어난 실내 장식가들이었으며, 치장 회반죽 세공과 대형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는 기술에 있어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날렸다. 그들은 어떠한 성이나 수도원의 홀도 멋진 장관을 연출할 무대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거장들 가운데 제일 유명한 사람은 베네치아 출신의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인데, 그는 이탈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활약했다.
이 프레스코화는 티에폴로가 1750년경에 그린 베네치아의 한 궁전 장식의 일부이다. 화려한 색채와 호화스러운 의상 묘사가 특징이다.
이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위해서 사치스러운 향연을 베푸는 장면이다. 값비싼 산해진미의 요리들이 쉴 새 없이 들어오지만 클레오파트라는 감명을 받지 않았다. 그녀는 자부심이 강한 주인 안토니우스에게 자기는 그가 지금까지 제공한 어떤 음식보다도 더 값비싼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그녀의 귀걸이에서 그 유명한 진주를 떼어내어 그것을 식초에 녹여 마셨다고 한다. 그녀가 안토니우스에게 그 진주를 보여주는데 한 흑인 하인이 그녀에게 유리잔을 내밀고 있다.
18세기 초 이탈리아 미술은 단 한 가지의 특수한 분야에서만 새로운 이념들을 창조해냈다.
그것은 풍경을 묘사한 유화와 동판화였다.
과거 이탈리아로 모여드는 여행객들은 돌아갈 때 갖고 갈 기념품을 원했다. 특히 경치가 화가를 매혹시킨 베네치아에서는 이러한 여행객들의 수요를 만족시켜주는 한 유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위 도판은 이들 중의 한 화가인 프란체스코 구아르디가 그린 풍경화다. 티에폴로의 프레스코화처럼 이 풍경화도 베네치아 미술 특유의 화려함과 빛과 색채의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다. 역동적 움직임과 대담한 효과를 좋아하는 바로크의 정신이 단순한 한 도시의 풍경화 속에서도 여실히 나타나 있다.
구아르디는 화가가 일단 한 장면의 일반적인 인상만 제공해주면, 나머지 사소한 세부들은 보는 사람들이 상상을 통해 메꾸고 보충하려 한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었다.
작품 속의 곤돌라 사공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능숙하게 배치된 몇 점의 색채들로 단순하게 그려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면 그 환영은 놀랍게도 완벽한 효과를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후기 이탈리아 미술의 결실 속에 살아 있는 바로크 양식의 전통은 후대에 가서 새로운 중요성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