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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찡이 이모

자존심 대신, 같은 눈높이로

by 연하일휘 Jan 31. 2025

잉잉- 할머니와 놀던 조카가 침대에 머리를 꿍하고 박아버렸다. 혹여 애가 다쳤을까 노심초사하는 할머니의 마음과 달리 작은 칭얼거림의 소리가 점점 커진다.



"엄마한테 호-해달라 하자. 호-"



조카를 품에 안고 토닥여준다. 바로 큰 울음이 터지지 않은 것을 보면 다행히 살짝 부딪힌 모양이다. 평소라면 아야 했다며 어리광을 부렸을 텐데,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칭얼거림으로 이어진다. 조카는 엄마의 걱정 어린 쓰다듬에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억지 울음을 시도한다. 아팠던 것에 비해 눈물이 나지 않으니 더 억울했던 모양이다.



"많이 아팠어? 이모도 호-"



달래는 말을 하지만 눈물을 짜내려는 그 표정에 목소리엔 웃음이 묻어나고 만다. 조카도 그 웃음에 전염되었는지 배시시 웃으며 가슴팍에 얼굴을 부빈다. 어리광도 칭얼거림도 눈물도 다 예쁜 걸 보면 나도 중증이다. 역시 가장 예쁜 건 웃음이지만.


적은 수면 시간과 바빴던 학원 일정에 축 늘어지다 보니, 조금 느긋이 조카를 보러 가려던 날이었다. 하지만 여동생이 걸어온 영상통화에서 제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리는 조카의 모습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애가 밥도 안 먹겠다면서 울기만 해."



수족구에 걸려도, 중이염으로 열이 올랐을 때에도 밥만은 잘 먹어 걱정을 덜어 주었던 조카다. 그랬던 애가 밥을 거부하다니. 여동생네 집에 들어서자 조카가 달려와 품으로 안겨든다. 뺨에는 눈물 몇 방울이 맺혀있다.


"모. 모. 입! 입!"


내 얼굴을 보더니 손바닥으로 제 입을 가린다. 감기로 한동안 마스크를 끼고 조카를 만나다 오랜만에 맨얼굴을 마주하니 색다른가 보다. 이모 무릎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책을 보는 조카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 맘마- 소리만 해도 대성통곡을 했다던데, 한 번 물어봐?


"찡찡이. 맘마 먹었어? 맘마."


"암! 암!"


맘마 소리에 음식을 먹는 시늉을 한다. 맘마 먹을까? 무릎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모 손가락을 잡고 부엌으로 향한다. 아기 의자에 조카를 앉히고 여동생과 함께 밥을 먹이며 과장된 행동과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와! 맘마 잘 먹네! 너무 예쁘다!

우리 찡찡이 멋있다!

아고! 너무너무 귀여워! 최고야!

우와! 입도 크게 잘 벌리네! 잘한다!


조카가 얼마나 알아들을지는 모르지만, 밥을 먹는 내내 칭찬을 연신 이어간다. 언제 또 기분이 상해 밥을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딱 두 숟가락 정도의 양을 남기고 조카의 요란스러운 식사가 끝이 났다.


피곤한 것인지, 어디 아프려고 하는 건지. 평소보다 조카의 어리광과 칭얼거림이 심한 날이다. 조카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준다. 예전에는 그림에서 아는 것들을 찾았다면, 이젠 내용을 꽤 알아듣는 듯 이모의 목소리에 집중을 한다. 재미없는 사람인 내가 어설픈 연극과 성대모사를 섞어가며 책을 읽어준다. 처음에는 사돈어른 앞이라 민망하기도 했었다만, 이제는 조카의 뒤통수에만 집중하게 된다.


어디서 보았더라.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자존심이나 체면도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이제 갓 세상에 태어난 아가의 눈높이에 맞춰 동물이 되었다가. 아기가 되었다가. 그렇게 '나'를 내려놓고 '아기'의 시점에서 함께 해야 된다는 말.


여동생과 제부가 아기를 키우며 호들갑에 가까운 반응들을 보일 때마다 그 내용이 떠오르곤 한다. 아직 사람이라기에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존재이니 그렇게 눈높이를 맞춰야 아이가 한 움큼씩 행복하게 성장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새 나도 조카의 시선에서 함께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것인지, 늘 조카의 옆에서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카가 쓰는 언어가 그대로 입에 밴 것도 그 때문일까. 맘마. 까까. 쉬야.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이 단어들 때문에 종종 곤욕을 치른다. 그냥 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도 같지만.


이모의 품에서 놀다가도 종종거리며 엄마에게 가 품에 한 번씩 폭 안긴다. 할머니 방으로 가 할머니와 장난을 치다가 이모의 무릎에 앉아 다시 책을 읽는 것을 반복한다. 예전에는 이모에게만 집착하더니, 이제는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애정을 나눠준다. 이 조그마한 녀석이 자신이 받아 온 사랑을 그렇게 또 베푼다.


찡찡이랑 애칭에 걸맞게 오늘은 잔뜩 찡찡이 모드였던 우리 조카. 찡찡이든 떼떼(떼쟁이)든 조금 피곤하지만 그래도 귀엽다. 이쯤 되면 슬슬 이모집착조카가 아니라 조카집착이모가 될지도 모르겠네. 괜찮아. 뭐든 다 받아줄 테니 아프지만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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