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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할머닌데.

그 시간들마저 선물이었을지도

by 연하일휘 Mar 10. 2025

조막만한 손으로 꽉 쥔 자동차를 바닥에 굴리며 여러 단어들을 내뱉는다. 제 손보다 크건만, 야무지게 잡고 장난을 치는 녀석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걸려있다.


"빠빵. 빵빵! 땀쫀! 쌈쫀!"


조카가 부모님 댁에 들렀다는 소식에 남동생은 퇴근길에 급히 마트에서 자동차 두 개를 사 들고 왔다. 자주 보지 못해 낯을 가리다가도 금세 외삼촌을 알아보고는 안아달라는 애교를 부리는 조카를 위한 선물이다. 이후부터 그 장난감을 볼 때마다 조카가 삼촌이라는 단어를 자주 내뱉기 시작했다. 휴일이면 세워져 있는 남동생의 차를 가리키며 '쌈쫀 차!'라며 의기양양하게  외치며 드디어 '삼촌'이란 단어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누가 사준 것인지 또렷이 기억을 하는 조카의 모습에 할머니들 지갑이 더 활짝 열려버렸다. 어머니도, 그리고 여동생의 시어머니도 장난감이나 옷을 볼 때면 눈이 반짝인다.


"와- 이거 누가 사줬어?"


현관 앞에 털썩, 주저앉은 조카의 발에 새 신발을 신겨주며 질문을 건넨다. 겨울새 쑥 커버린 조카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자동차가 그려진 운동화다. 


"아빠! 아빠! 엄마!!!!"


"아빠랑 엄마가 사줬어?"


고개를 끄덕이는 조카의 뒤로 어머님(여동생의 시어머니)이 조금은 속상하다는 듯 말을 꺼낸다.


"할머니가 사줬어요."


그 말을 듣더니만 조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닌데. 아빠랑 엄마가 사준 건데. 마치 그 의문이 얼굴에 떠 있는 듯하다. 여동생과 조카, 그리고 이모가 함께 드라이브를 나서는 길. 여동생은 그 이야기를 듣자 이해가 된다는 듯 말을 꺼낸다.


"신발은 우리가 이것저것 꺼내서 보여주다 애가 선택한 건데. 어머님은 같이 구경하다 계산하신 거라 그래."


아아, 그제야 납득이 된다. 누가 사준 선물인지 그리도 잘 알던 녀석이지만, 함께 고르는 과정이 더 중요했던 까닭이다. 물론 "구입하다"라는 개념을 모르기도 했겠지만 말이다.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와 여러 신발을 구경하고, 신어보고, 고르는 그 시간들마저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PixabayPixabay


선물을 고르는 시간은 즐겁다. 무엇을 좋아할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두근거림은 선물을 주고난 이후에도 이어진다. 시일이 지난 이후, 내가 준 선물을 다시 발견하였을 때의 기쁨이란. 한때는 선물이란 비밀스러워야 한다는 작은 편견에 갇혀 있었다. 이제는 함께 고민하는 그 시간들마저 선물처럼 남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함께 선물을 고르는 시간도 즐겁다. 여러 물건들을 들었다 내려놓고, 함께 비교하면서 살피는 그 시간은 온전히 서로의 얼굴과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시간이다.


할머니가 사 준 선물이라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조카에게 작은 섭섭함을 내비쳤지만, 어머님은 아이가 신발을 신고 한껏 신이 난 모습에 미소를 짓는다. 나였다면, 몰라주는 조카가 섭섭해 "아냐. 이모가 사준 거야." 라며 여러 번 강조를 했을지도 모른다. 알아주지 않더라도 기뻐하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어머님은 하나의 선물처럼 받아들인다. 이모보다는 더 넓고 큰 할머니의 사랑 덕분일지도 모른다.


조카가 제 손에 든 과자를 이모 손에 건네주고선, 아- 입을 벌리고 서 있는다. 먹여달라는 어리광이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도 행복을 전해주는 네게 어떤 선물을 해 줄까. 네게 선물을 주며, 이모도 그 시간을 선물로 받는, 그 순간들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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